현덕의 아동문학

원종찬


  1.머리말 

  작가 현덕(1911-6.25 때 월북)은 그가 창조한 인물인 '노마'가 더 유명한 편이다. 현덕을 잘 모르는 이들도, 이제 웬만한 아동물의 총아로까지 떠오른 노마란 이름은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이는 현덕이 무엇보다도 아동 문학에 남긴 발자취 때문이다. 소설 「남생이」(1938)를 비롯하여, 「경칩」(驚蟄, 1938), 「두꺼비가 먹은 돈」(1938) 등에서 천진한 노마의 눈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특이한 작품 구성을 성공시킨 현덕은, 그 자신 아동 문학에도 활발히 관여하면서 노마에게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현덕에 대해선, 앞에 말한 작품 외에, 「골목」(1939), 「잣을 까는 집」(1939), 「녹성좌」(綠星座, 1939), 「군맹」(群盲, 1940) 등 30년대 말에 잠시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전개하다가, 이후로는 아동 문학에만 전념했다는 통설이 지배적이다. 여기엔 그의 작가적 역량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작가의식의 후퇴를 은연중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덕의 작품은 해방 이후부터 동란 중 월북 때까지 소설이건 동화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발표한 「군맹」이 월북 이전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되는 것이다.

  물론, 해방 직후 그가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문화운동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문맹의 출판부장으로 있을 때, 작품집 『집을 나간 소년』(1946), 『포도와 구슬』(1946), 『토끼 삼형제』(1947), 『남생이』(1947) 등을 발간한 것도 그의 연보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발표한 작품들을 묶어낸 것으로, 『남생이』를 빼고는 모두 아동물이다. 구체적으로, 『집을 나간 소년』은 소년소설집이고,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는 동화집일 것이다.

  『남생이』에 실린 작품들이 모두 일제시대에 발표된 것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것이고, 『집을 나간 소년』에 실린 작품들을 보니 그것들도 거의 대부분 1938-40년에 『소년』지를 통해 발표된 것들임이 확인된다. 이제 남은 건 『포도와 구슬』, 그리고 『토끼 삼형제』이다.

  그런데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이 두 동화집은 발견되지 않는다. 『남생이』와 『집을 나간 소년』은 『한국근대단편소설대계·34, 현덕편』(태학사, 1988)에 원본 그대로 영인되어 있고, 최근에 각기 새로 출판되기도 했다.1)  현덕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데에는 그의 아동 문학이 좋은 참고가 되므로, 연구자들은 이것 말고는 1938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펴낸 『조선아동문학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거기엔 현덕의 소년소설 「고구마」와 함께, 동화 「포도와 구슬」, 「물딱총」, 「고양이」가 실려 있다.

  지금까지 현덕 연구는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 현덕이 뒤에는 아동 문학에만 전념했다는 추측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덕이 한국소설사나 아동문학사 어느 한 편에서나마 정확히, 혹은 충분히 평가받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선 그는 월북작가이다. 이것이 그를 온전히 평가하지 못하게 한 주된 원인이 되었을 법한데, 문제는 해금 이후에조차 그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소설사에서는 해금과 동시에 각광을 받은 카프 문인 집단에 그가 속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동문학사에서는 월북문인을 대상으로 한 뚜렷한 연구물이 거의 없는 현실 때문에, 월북작가 현덕은 큰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2)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덕은 한국소설사나 아동문학사 어디에서도 매우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그간 햇빛을 보지 못하던 그의 수많은 동화들을 최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급한 대로,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새로운 작품 연보를 학계에 보고하고, 아동 문학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 세계를 간략히 살펴, 현덕 연구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한다.3)

  2.작품 연보
 

   1)소설 

  남생이, 조선일보, 38.1.8-25

  경칩(驚蟄), 조선일보, 38.4.10-23

  층(層), 조선일보, 38.6.16-19

  두꺼비가 먹은 돈, 조광, 38.7

  이놈이 막내올시다(꽁트), 조광, 39.1

  골목, 조광, 39.3

  잣을 까는 집, 여성, 39.4

  녹성좌(綠星座), 조선일보, 39.6.16-7.26

  군맹(群盲), 매일신보, 40.2.24-3.29

   꽁트 「이놈이 막내올시다」는 이번에 새로 발견하였다. 이것과 「층」, 「녹성좌」를 제외한 나머지는 작품집 『남생이』(1947)에 모두 실려 있다. 「층」과 「녹성좌」는 『한국근대단편소설대계·34, 현덕편』에 영인되어 있다. 이 중 「녹성좌」는 중편 분량인데, 현덕의 작가성향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2)소년소설

  하늘은 맑것만, 소년, 38.8

  권구시합(倦球試合), 소년, 38.10

  고구마, 소년, 38.11

  군밤장수, 소년, 39.1

  두포전, 소년, 39.4-5

  집을 나간 소년, 소년, 39.6

  잃엇든 우정, 소년, 39.10

  월사금과 스케-트, 소년, 40.2

  나비를 잡는 아버지(발표지와 연대 미상)

  모자(帽子)(발표지와 연대 미상)

  「두포전」은 김유정이 3회 분량을 쓰고 사망하여 연재가 중단된 것을, 그와 가까운 친구인 현덕이 2회분을 이어 완성시킨 것이다.4)  이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품집 『집을 나간 소년』(1946)에 실려 있다. 이 소년소설집에는, 내용으로 보아 동화의 세계에 속하는 「눈사람」(방송극)과 「꿩과 닭」(방송극)이 함께 실렸다. 

  3)동화 

  고무신, 동아일보, 32.2.10-11

  물딱총, 소년조선일보, 38.5.22

  바람은 알것만, 소년조선일보, 38.5.29

  옥수수과자, 소년조선일보, 38.6.5

  새끼전차, 소년조선일보, 38.6.12

  싸전가개, 소년조선일보, 38.7.10

  맨발 벗고 갑니다, 소년조선일보, 38.7.17

  내가 제일이다, 소년조선일보, 38.7.31

  아버지구두, 소년조선일보, 38.8.14

  과자, 소년조선일보, 38.8.28

  귀뜨람이, 소년조선일보, 38.9.11

  싸움, 소년조선일보, 38.9.18

  포도와 구슬, 소년조선일보, 38.9.25

  여자고무신, 소년조선일보, 38.10.30-11.20

  대장얼굴, 소년조선일보, 38.11.27

  둘이서만 알고, 소년조선일보, 38.12.11

  암만 감어두, 소년조선일보, 38.12.18

  토끼와 자동차, 소년조선일보, 39.1.1

  조고만 어머니, 동아일보, 39.1.16

  바람하고, 소년조선일보, 39.1.29

  기차와 돼지, 소년조선일보, 39.2.5

  뽑내는 거름으로, 소년조선일보, 39.2.12

  너구 안노라, 소년조선일보, 39.2.19

  일허버린 구슬, 소년조선일보, 39.2.26

  의심, 소년조선일보, 39.3.5

  강아지, 동아일보, 39.3.5-12

  삼형제 토끼, 소년, 39.3

  고양이와 쥐, 소년조선일보, 39.3.12

  용기, 소년조선일보, 39.3.19

  실수, 소년조선일보, 39.3.26

  어머니의 힘, 소년조선일보, 39.4.9

  땜가개 하라범, 소년조선일보, 39.4.16

  조고만 발명가, 소년조선일보, 39.4.23

  실망, 소년조선일보, 39.4.30

  동정, 소년조선일보, 39.5.7

  우정, 소년조선일보, 39.5.14

  큰소리, 소년조선일보, 39.5.28

  고양이(발표지와 연대 미상, 1938년 『조선아동문학집』에 수록)

  눈사람(방송극, 발표지와 연대 미상, 1946년 『집을 나간 소년』에 수록)

  꿩과 닭(방송극, 발표지와 연대 미상, 1946년 『집을 나간 소년』에 수록) 

  이것들은 거의 새로 찾은 자료인데, 이 중 「고무신」은 현덕 최초의 것으로,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가작'으로 입선한 작품이다. 당시에 현덕은 「봄」이라는 시를 『신생』(32.4)의 '독자문단'에 투고하기도 했다.

  현덕의 주요 작품 활동기인 1938-9년에는, 『조선일보』 부록으로 일주일 마다 발행되었던 『소년조선일보』에 가장 많은 동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것들이 해방 이후의 작품집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 두 권에 묶여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된다.(참고로, 소년소설집 『집을 나간 소년』이 214면인데 비해, 『포도와 구슬』은 91면이다.)  

  4)수필 

  부엉이, 박문, 39.5

  살구꽃, 문장, 39.6

  장발기(長髮記), 조광, 39.9

  지연(紙鳶), 조선일보, 39.9.15-16

  잊을 수 없는 그대여, 여성, 39.12

  할미꽃, 신세기, 41.6 

  기존의 현덕 연보에 없는 수필 몇 편을 더 찾아내었다. 현덕의 삶과 의식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지만, 작품으로서도 모두 가편(佳篇)들이다. 

  5)작품집 

  집을 나간 소년, 아문각, 1946

  포도와 구슬, 정음사, 1946

  토끼 삼형제, 을유문화사, 1947

  남생이, 아문각, 1947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는 해방 직후의 각종 출판물에서 그 광고문을 발견할 수 있으나, 작품집은 현재 발견되지 않는다. 1946년의 정음사간 '조선아동문고'에 현덕의 소년소설집 『우정』이라는 광고문이 보이나,5)  「우정」(1939)은 동화였다. 좀 이상해서 다른 광고문들을 계속 추적하니, 똑같은 정음사간 '조선아동문고'의 광고에, 뒤에는 『우정』이 없는 대신 『포도와 구슬』이라는 제목이 올라와 있다.6)  앞의 광고는 착오였던 것이다.

  한편, 신경림은 『한국문학대사전』에서, 『광명을 찾아서』(1947)라는 현덕의 소년소설집을 하나 더 소개하고 있다. 만일 이 작품집이 실제로 간행되었다면, 현덕은 일제시대에 발표하지 않은 소년소설들을 새로 창작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필자가 당시의 출판물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더니, 출판 목록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나, 동지사(同志社)에서 지광덕(誌廣德)이란 저자의 이름으로 같은 제목의 장편소년소설을 광고하고 있었다.7)  지씨가 과연 있는지, 아니면 현덕의 필명이었는지, 이 책을 구할 수 없어 의문이 아닐 수 없다.8)  이 작품집의 소재는 앞으로 더 살펴져야 할 것이다. 

  6)기타 

  봄, 독자문단(詩), 신생, 32.4

  자서소전(自敍小傳), 신인단편걸작집, 조선일보사, 1938

  신진작가 좌담회, 조광, 39.1

  내가 영향받은 외국작가-도스토엡흐스키, 조광, 39.3

  소설 간담회, 민성, 제2권 6호, 1946

  고요한 동(쇼-로홉 작), 이홍종(李洪鍾)·현덕 공동번역, 대학출판사, 1949 

  「자서소전」은, 『신인단편걸작집』에 대표작 「남생이」와 함께 실린 작가의 자기소개서로서, 그의 성장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다.

  현덕이 『고요한 동』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번역작업이 지금까지 알려진, 월북 이전 그의 마지막 활동이다.(그는 정부수립 후의 좌익전향자 단체인 '보도연맹'에도 가입하지 않고 지하로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

  『고요한 동』은 제1권만 번역한 것이고 전역은 아니다. 이홍종이 노문학 전공이라 이 역서는 노어 직접역일 것이다.9)  본문을 살피니 토속어와 함께 어우러진 현덕 특유의 깔끔한 문체가 아주 돋보인다. 이로 보아 이홍종이 초역을 하고, 제일고보 중퇴 학력인 현덕은 문장을 다듬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번역문학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7)월북 이후의 작품 

  하늘의 성벽, 1951

  복수, 1951

  첫 전투에서, 1951

  부싱쿠동무, 59.1

  수확의 날, 1960

  싸우는 부두, 61.9 

  모두 단편들이다. 「하늘의 성벽」, 「복수」, 「첫 전투에서」 이상 세 편은 월북과 동시에 종군작가단으로 활동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 「수확의 날」과 함께, 북한 문학비평자료를 통해 찾아낸 작품들이다. 대부분 자연주의 작풍으로 비판되었다.10)

  「부싱쿠동무」와 「싸우는 부두」는 『남북한 문학사 연표, 1945-89년』(한길사, 1990)를 참고하여 찾아내었다. 현덕의 작품이 여기엔 이 두 편뿐이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현덕의 작품 활동이 아동 문학으로 귀결되었다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다. 그는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가작으로 선을 보였으며, 『신생』의 독자문단에 시를 발표한 것으로 보아 이때쯤이면 벌써 문학에 뜻을 두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다가 그가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8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1등 당선한 이후부터라고 하겠는데, 소설과 아동 문학 작품을 함께 발표하다가, 1940년 「군맹」 이후로는 구체적인 작품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해방 직후에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문학부 위원에도 이름이 오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소설부 위원이었고, 대중화위원회의 위원으로도 참여했으며, 문맹의 출판부장으로서 기관지 『문학』의 편집 겸 발행인, 문맹의 서울지부 소설부 위원장까지 지냈다. 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손을 뻗쳐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고요한 동』을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동화집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를 살필 수 없어 한 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실렸을 작품들 모두가 일제시대에 씌어졌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표제작 「포도와 구슬」이 그렇고, 「토끼 삼형제」는 「삼형제 토끼」로 발표된 것이다. 발표지와 시기를 확인하지 못한 소년소설 「나비를 잡는 아버지」와 「모자」, 그리고 방송극 「눈사람」과 「꿩과 닭」은 작품 내용으로 보아 일제시대에 씌어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방송극은, 30년대 중반에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다가 뒤에 『조광』으로 자리를 옮긴 이석훈(李石薰)과의 관련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석훈은 현덕의 문우(文友) 김유정, 안회남과 아주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일제시대 그의 주요 발표 무대가 『조선일보』와 그 출판물들에 거의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일제말을 대표하는 『문장』과 『인문평론』에 그의 소설이 하나도 없는 것은 몹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조선일보사에서 출판한 당시의 모든 매체 곧, 『조선일보』, 『조광』, 『여성』, 『소년조선일보』, 『소년』 들에는 예외없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일보사의 학예부장은 홍기문이었고, 부원에 이원조가 있었다.11)  아마도 현덕은 안회남을 통해 이원조와 연결되었을 것이다. 출판부 윤석중과의 연결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소년조선일보』와 『소년』에는 현덕이 누구보다도 많은 동화와 소년소설을 발표하였다.12)  이로 보아, 『소년』(1937-40)의 자매지인 『유년』(1937년 9월부터 8호까지 간행되었다 함;『조선일보50년사』, 378면)에도 틀림없이 그의 동화 작품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13)

  북한에서의 현덕은 다른 많은 월북작가들에 비해 현저히 작품 활동이 없는 편이다. 그가 월북 이후 활발히 작품활동을 했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월북 이후의 아동 문학 활동에 대해선 알아볼 길이 더욱 묘연한데, 북한의 아동 문학을 포함시킨 최근의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아동 문학 분야에서도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14) 

  3.동화와 소년소설의 세계  

  현덕의 아동 문학은 동화와 소년소설로 구분된다.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동화와 소년소설, 소설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소설은 이 글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의 아동 문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에는 노마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노마란 인물성격이 어떤 특징을 갖느냐에 대해 그의 동화만큼 정확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한편, 그의 소설에 적극적인 모랄의 제시가 없어, 작가 현덕이 자연주의 문학의 한계에 갇혔다는 일부 평가는 당대의 역사적 현실과 함께 그의 소년소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의 소년소설엔 적극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고, 주제와 관련한 작가의식 또한 또렷하다.

  여기서 잠깐 동화, 소년소설, 소설에 대한 그의 장르 의식을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위 세 장르의 구별이 너무도 분명하다는 점은 그냥 예사로운 일이 아니겠기에 말이다.

  그는 한 좌담회에서, "자기의 독자를 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구미에 맞을 작품을 써서 읽지 않는 자를 읽게 하도록요." 하고 말한 적이 있다.15)  이것은 그가 독자를 뚜렷이 겨냥하고 창작 활동에 임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그는, 동화에서는 10세 미만의 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생활 현실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소년소설에서는 보통학교 졸업반 내지는 졸업 직후, 상급학교에 막 진학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생활 현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소설의 세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16)  또한 작가의 그 겨냥하는 작품의 목표와 의도가 장르별로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동 문학에서 특히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도 현덕만큼 이런 점에 충실한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덕의 작품엔 그것이 하나의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동화와 유년기 아동의 생활 현실 

  동화는 바로 노마의 이야기다. 현덕의 동화는 모두 사실동화·생활동화에 속하는 것들로서, 노마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거의 고정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유년기 아동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모두 짤막한 분량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그것들 전체는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요한 인물은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간혹 또래의 친구들과 노마의 어머니, 동네 사람들이 잠깐씩 나온다.

  현덕의 동화는 일단 위에서 말한 네 아이들의 생활 세계이다. 작품에 따라 그들 중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한결같이 산동네의 조그만 골목 안 풍경을 중심으로, 거기 아이들의 꾸밈없는 욕망과 놀이의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아주 생생한 사실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한 마디로 천진한 까닭에 선악의 개념을 곧바로 대입시킨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집안 현실이라든지 아이들 나름의 생활 질서가 충분히 엿보이는 세계이다.

  네 아이 가운데 기동이는 그래도 형편이 좋은 집 아이라 할 수 있고,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잘 어울려 노는 가운데서도, 기동이만은 '각별히' 대하는 경우를 곧잘 연출한다. 그건 기동이가 뭔가 잘 사는 집 아이의 티를 내기 때문이다. 즉 노마, 영이, 똘똘이는 하나같이 기동이의 장난감과 먹을 것을 부러워 하고, 기동이는 돈을 주어야만 손에 쥘 수 있는 그것들을 가지고 늘 혼자서 뽐내는 것이나, 그 탓에 자주 동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덕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계급적 대립이나 증오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동이를 포함해서 이들이 함께 즐겨 노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나온다(「내가 제일이다」, 「바람하고」, 「기차와 돼지」, 「실망」, 「땜가개 하라범」 등). 그것들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마가 어머니의 실 감는 일을 돕느라 방에 갇혀 있을 때, 차례로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동무 가운데에는 의당 기동이도 끼어있다. 노마는 곧 나갈 것이라 응답하고서도, 실감는 일이 끝이 없어 애를 태운다(「암만 감아두」).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큰행길 장난감 가게까지는 "모두 정답게 손목 잡고" 나란히 갈 수 있어도, 기동이는 물건을 사서 앞장서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럴 수 없는 처지인지라, 돌아오는 길에선 아주 섭섭한 얼굴을 하고 기동이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대장 얼굴」). 더욱이 대야에 물을 떠나르는 심부름까지 해주고서도 노마는 기동이가 갖고 뻐기는 물딱총을 만져볼 수 없다(「물딱총」). 영이는 바로 앞에서 기동이가 옥수수과자 먹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앉아 있는 것이나, 기동이는 하나도 주질 않고 혼자만 먹는다(「옥수수과자」). 이 때문에 기동이와의 사이엔 어떤 금이 그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반면에 다른 아이들 사이엔 '나눔'의 세계가 훨씬 지배적이다. 예컨대, 행상을 나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영이 어머니를 동무들이 함께 기다려 주는 내용의 「동정」과, 산에 나물캐러 가는 영이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내용의 「우정」이 그러하다.)

  이들 사이의 금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노마가 앞장을 선 전차놀이에서 기동이는 승차를 거부당한다(「새끼 전차」). 노마와 영이는, 어디를 가느냐는 기동이의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사이좋게 어디론가 간다(「둘이서만 알고」). 똘똘이는 별 대수로운 얘기가 아니라서 기억조차 없는데도, 영이와 자기 흉을 본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 기동이의 시비에 입을 꾹 다문다(「싸움」). 이들이 함께 하는 놀이에서도 역할에 표가 난다. 노마와 영이, 똘똘이는 그림책에서 본 대로 '삼형제 토끼 놀이'를 하던 중 기동이를 만나자 그에겐 늑대 노릇을 시킨다(「삼형제 토끼」). 그림책 이야기대로, 늑대는 삼형제 토끼의 꾀에 넘어가 종국엔 쫓겨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또 '고양이 잡기 놀이'에서는 똘똘이가 쥐가 되고, 기동이는 고양이가 된다(「고양이와 쥐」). 다른 아이들은 이들 사이에서 둥그렇게 원을 치고 손을 맞잡아 고양이가 쥐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놀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모두 쥐편이다. 마침내 쥐가 잡히는 순간 아이들은 모두 쥐가 되어 고양이한테 덤벼들고, 고양이는 꽁무니를 빼버린다.

  작가는, 동심에서만큼은 인물 모두에 공통의 성격을 주었으나(따라서 특별히 누가 미화되거나, 악인이 되는 법는 없다), 주요 인물 하나하나엔 뚜렷한 개성을 부여하였고, 그들의 집안 환경을 곁들임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하였다. 그래서 기동이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는 아주 자연스러운 그들 나름의 생활 질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현덕 동화의 이 '자연스러움'은 어른에겐 물론 '의식적'인 것이다. 아이들 세계에선 동무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도 없다. 그래서 기동이는 집안 형편을 배경삼아 늘 뽐내다가는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로 되고, 동무들과 어울리기 위해 다시 안간힘을 쓰고 하는 역할을 반복한다. 현실의 계급 관계, 곧 빈부의 현실을 무시한 것도 아니지만, 어른들과 다른 아이들의 세계에선 역시 아이들다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해결되도록 작가는 배려한 것이다. 이는 이른바 동심천사주의나 프로 아동 문학의 관념적인 동심 파악에서 한 걸음 나아간 세계라 할 수 있다.

  현덕의 소설 세계와 관련해선, 노마의 인물 성격을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노마는, 그의 동화를 읽노라면 머리에 또렷하게 모습이 새겨질 정도로 아주 개성적인데, 무작정 미화되어 있지도 않으나, 매우 영리하고 용기있는 아이다. 자기가 갖지 못한 기동이의 물건을 부러워하는 데서는 노마도 다른 아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것을 어떻게 자기도 차지할 수 있을까 늘 궁리하는 아이고, 그 궁리는 종종 나름의 해결을 본다.

  「조고만 발명가」와 「강아지」에서 드러나듯이, 노마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접 상자갑으로 만들어서 놀 줄 아는 아이다. 그리고 「용기」에서는, 허리에 찬 칼 때문에 기동이가 대장이 되고, 막대기를 든 노마와 영이, 똘똘이는 병정이 되어 놀다가, 노마는 대장자격이 불공평하다며 용감한 일을 한 사람이 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제의를 한다. 곧, 검정판장집 대문을 한번 두들기고 오는 사람이 대장이라는 것인데, 그 집엔 사나운 개가 있어 대단한 용기가 드는 일이다. 용감한 일에서 늘 앞장서온 노마가 역시 대문을 때리고 오니, 아무리 때묻은 바지 저고리를 입었어도 그야말로 대장자격이 충분하다는 결론이다.

  「토끼와 자동차」에선, 노마의 기지(奇智)가 빛을 발하는 가운데서도, '서민 아동의 승리'가 한결 돋보인다. 눈 오는 날, 노마와 영이, 똘똘이는 눈처럼 하얗게 되고 싶어서 두 팔을 쳐들고 서있다. 그런데 기동이는 두루마기 자락을 들어올려 눈을 피한다. 그리고는 사람이 눈을 맞지 않는 자동차 놀이를 하는 것이다. 노마는 점차 기동이 자동차 앞에 팔을 쳐들고 섰기가 싫어졌다. 자동차가 되고 싶으나 기동이처럼 두루마기가 없다. 영이도 똘똘이도 모두 마찬가지다. 마침내 노마는 좋은 생각을 해낸다. 저고리 소매를 올려 토끼귀처럼 하고는 토끼처럼 뛰어 노는 것이다. 노마, 영이, 똘똘이는 모두 토끼처럼 아주 재미있게 깡충깡충 뛴다. 토끼는 눈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그러나 자동차는 그럴 수 없다. 토끼는 경주도 하고 씨름도 한다. 자동차는 이제 토끼를 부러워한다. 결국 기동이는 두루마기를 벗어 내던지고 토끼들이 노는 사이로 끼어들고 마는 것이다.

  한편, 현덕의 동화는 전래동화의 세계와도 깊이 접맥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17)  그래서 그런지 그의 동화는 국적불명의 이국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전래동화의 개악에 가까운 번안이 아니라면, 외국동화의 번안이거나 마구잡이 짜집기로 말미암아 동화에는 이국취향이 자주 나타나는 폐단이 있다. 그러나 현덕의 동화는 당대 어린이들의 생활 현실을 퍽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면서도 전래동화의 기본 정신 및 구조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 매우 영리한 노마는 전래동화의 꾀많은 약자를 잇는 것이다. 민중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전래동화에서, 선량한 약자가 위기를 꾀와 슬기로 넘기는 구조는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현덕의 동화는 대부분 단순 소박한 내용의 반복 점층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른바 '옛날이야기'의 세계가 거의 그렇거니와, 현덕은 유년기 아동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아동의 심리와 행동 세계를 뛰어난 필치로 펼쳐보이는 데에서 현덕의 창작동화가 갖는 현대적 성과가 있다. 셋째는, 현덕 동화의 서술 구조가 모두 이야기체라는 것이다. 현덕은 동화에서만은 항상 경어체를 쓰고 있는데, 이 경어체가 바로 구화(口話)에 적합한 형식이다. 끝말을 다양하게 변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자가 자연스럽게 개입하는 대목도 구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동이는 막 뻐깁니다. 사실 그럴만도 합니다. 높다란 버드나무 위까지 물은 튀어올라갑니다. 나뭇가지에 한눈을 팔고 앉았던 까치도 깜짝 놀라 푸드득 달아납니다. 게까지 물이 올라갈줄은 까치 그놈도 뜻밖이든 게지요.(「물딱총」에서) 

  아침에 어머니는 광우리에 귤하고 사과하고 배하고 가득이 담아 머리에 이고 거리로 나가셨습니다. 거리로 나가 어머니는 그것을 집집으로 다니며 돈하고 바꾸십니다. 그렇습니다. 둥우리에 가득한 귤, 사과, 배, 그 수효만큼 그만큼 이집 저집으로 다니시느라고 늦는게지요.(「조고만 어머니」에서) 

  노마가 구슬 한 개를 잃어버리었습니다. 파란 유리 구슬입니다. 분명 노랑빛 구슬이 둘, 파랑빛 구슬이 하나, 그렇게 새 개를 가졌었는데요. 먼저부터 그런 것처럼 조끼 주머니에는 노랑구슬만 두 개가 도굴도굴, 암만 뒤져도 노랑구슬만 두 개가 도굴도굴, 파랑 구슬은 간 데가 없습니다.

  노마는 두 개 노랑구슬보다 없어진 한 개 파랑 구슬이 갑절 좋아졌습니다. 두 개 하고 한 개하고 바꾸재도 얼른 바꾸도록 갑절 좋아졌습니다.

  노마는 구슬을 찾아 큰길 우물 앞으로 갑니다. 아까 거기서 노마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고 놀았습니다. 아마 그러다가 구슬을 흘렸든게지요.(「일허버린 구슬」에서) 

  이밖에도 현덕의 모든 작품들에서 돋보이는 것이지만, 대화에서 입말의 생동감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간결하고 산뜻한 맛을 주는 현덕 특유의 문장이 동화 전편에 펼쳐진다.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자. 

  그러다가 노마는 구슬 하나를 내밀고 입을 열었습니다.

  "너 이것하구 바꿀까."

  "뭣하구 말야."

  "포도하구 말야."

  "이런 먹콩 같으니."

  "그럼 구슬 두 개허구."

  "난 일없어."

  "그럼 세 개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까진 먹는 게 존가. 가지고 노는 구슬이 좋지."

  "그래두 난 일없어."(「포도와 구슬」에서) 

  이처럼, 현덕의 동화는 유년기 아동의 생활 세계, 그 심리와 행동 표현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래동화의 전통을 잇는 가운데, 리얼리즘 동화의 확실한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아동의 세계는 관념적으로 파악한 동심주의와 구별된다. 동심주의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아이들의 미화된 세계가 나오기 십상인데, 이는 아동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단지 어른의 취향만을 반영하고 있을 따름이다. 계급을 앞세운 30년대 초의 프로 아동 문학에서도, 동심주의와 지향은 다르나 이런 관념성은 자주 노출되었다. 아동을 '둘러싼' 세계에서 더 나아가, 아동 자체를 계급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이 아닐 수 없다.18)

  그러나 현덕은 아동을 참된 동심의 세계에서 파악했다. 그렇다고 그의 동화에서 아이들의 현실이 배제되었다거나 은폐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현덕의 동화는, 특별한 사건이 없이, 그저 아이들의 생활 현실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동심리 곧 동심 자체를 주제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동심의 세계에선 어떤 허식과 가식도 승리할 수 없음을 그의 동화는 똑똑히 보여주는 것인데, 이로써 그가 소설 세계의 한 축으로 동심 구조를 삽입해 노린 것이 무엇인지 이제 자명해지는 것이다.

  「남생이」나 「경칩」과 같은 그의 소설에서 노마가 대표하는 동심의 세계는 어른 사회의 타락상을 대비적으로 드러내는 현덕 나름의 가치 지향, 곧 30년대 후반의 정신적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19)  어쩌면, 민중 현실의 주체적인 전망이 닫힌 속에서, 현덕은 동심의 세계를 남겨둠으로써 김동인의 「감자」나 김유정의 「소낙비」의 세계를 넘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의 도식이기 쉬웠던, 그러나 그것조차 표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현덕의 동화에서 노마가 형편이 아주 어려운 가난한 집 아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노마를 통해 암울한 당대 현실의 극복 의지라든지 현실의 바람직한 전망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무리겠지만, 어쨌든 노마는 작가 현덕이 바라본 암흑기 민중의 미래상, 그 가능성과 기대감에 연결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노마는 이를테면,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현실을 똑똑히 이해하는 가운데서도 발현되는 '협동심과 용기, 탐구심, 슬기와 지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20) 

  2)소년소설과 도덕적 가치 지향의 세계 

  현덕의 소년소설로 오면 작가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그의 소년소설에는 동화의 세계와는 달리 빈부의 대립과 선악의 대립이 비교적 선명히 나타나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소설 세계와도 달리 올바른 가치에 따른 대립의 해결이 제시된다. 물론 갈등이 어떤 외부의 계기에 의해 통속적인 화해로 해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사건을 이끄는 갈등의 심각성은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이점이 그의 소년소설을 일반 통속물과 구별짓게 하는 요소이다. 아마도 현덕은 본격적인 소년소설의 개척자로서, 아동 문학의 교육성과 예술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화해적 결말을 보이는 작품 가운데에서 예를 들어보자. 「하늘은 맑것만」은 소년의 양심을 다룬 작품이다. 문기는 심부름을 갔다가 가게에서 거스름돈을 본래보다 많이 받고서는, 수만이의 꾐에 빠져 평소에 사고싶은 것을 사는 등 마음껏 쓰고, 결국엔 죄의식에 빠진다. 그는, 수만이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을 거라는 자기 합리화도 경험하고, 돈을 마음껏 쓰는 희열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자기 행동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임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분명히 자각하고 있으며, 동시에 두려움이 교차하기도 하는 등 복잡한 내면심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러다가 자기 처지에 대한 삼촌의 훈계를 듣고는 올바른 판단에 들어서게 되는데, 산 물건들을 길거리에 살며시 떨어뜨린다든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개천에 내던진다든지 하는 대목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매우 통속적인 얘기가 될 터이지만, 남은 돈을 가게집 안에 던져놓고 돌아오는 길에 수만이를 만나게 되어 내적 갈등의 일시적 해소가 다시 외적 갈등과 함께 더욱 심화된다. 결국 문기는 수만이의 압력 때문에 숙모의 돈을 훔치는 두번째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자기 잘못에 대한 누명을 아랫집 심부름하는 아이 점순이가 뒤집어쓰고 만다. 이 시기의 소년소설로서는 매우 튼튼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끝맺음에선 아쉽게도 다시 우연의 요소가 가미된다. 문기는 선생님을 찾아갔다가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고백을 하지 못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길을 걷는 중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한다. 결국 고백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서는 이렇듯 다소 통속적인 데가 있지만, 작품 구성의 튼튼함과 심리 행동 묘사의 사실성은 그런 문제점을 적잖게 극복하게끔 해준다.

  그렇긴 해도, 작품의 교육성과 예술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 현덕은 어째서, 그의 소설세계에서 누구보다 냉정하리만치 적나라하게 펼친 현실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소년소설에서는 화해적 결말, 혹은 긍정적 결말을 고집했을까?  「권구시합」과 짝을 이루는, 양심과 정직에 관한 이 작품의 교육성은 당대의 현실에 비추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 작품이 씌어진 시기는 과거의 내노라는 명사들이 일제와 타협하면서 훼절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이다. 동화와 구별되는 소년소설은 작중인물이 대개 보통학교 고학년에서 이제 막 상급학교에 진학했거나 못한 나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나이엔 현실악에 분명히 물들지 않았으면서도 명확한 사리 판단을 하거나 배우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기는 전날처럼 맑은 하늘 아래서 아무 꺼리낌없이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 떳떳이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이 남을 대할 수 있는 마음이 갖고 싶었다.(「하늘은 맑것만」에서) 

  모든 걸 선생님 앞에 바른 대로 자백할 결심이다. 물론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벌이 내리리라. 그리고 등뒤에서 갑동이가 "말만 하면 가만 안둔다." 하던 말도 엄포만이 아니리라. 그러나 일성이는 부끄럼 없이 기수를 대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그 떳떳한 마음이 갖고 싶었다.(「권구시합」에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모든 직간접의 표현이 막힌 시대에, 그리고 현실의 타락이 엄연한 사실로 드러나는 민족적 수난과 변절의 암흑 시대에, 양심에 대한 진한 감동을 수반한 이런 교훈의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못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

  현덕의 소년소설은 양심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적 결말을 보인 이들 작품 외에, 진학 여부 또는 빈부 대립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적 결말을 보이는 작품들이 많다. 그 가운데 「잃엇든 우정」, 「군밤장수」, 「집을 나간 소년」, 「월사금과 스케-트」와 같은 작품들은 앞의 작품들이 보이는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고, 「고구마」, 「모자」, 「나비를 잡는 아버지」와 같은 작품들은 빈부의 대립과 갈등을 사건 자체의 내적 계기를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보다는 뛰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뒤의 작품들에는 가난한 아이에 대한 부잣집 아이들의 횡포와 폭력이 아주 생생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성이 그만큼 뒷받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빈부에 원천을 둔 강자와 약자의 갈등을 작품의 끝까지 밀어올린 그만큼 결말의 감동도 크게 느껴진다.

  「고구마」에는 가난한 아이를 업신여기고, 가난을 죄로 만드는 현실이 또렷이 반영되어 있다. 학교 농업실습장의 고구마가 없어지는 것을 두고, 아이들은 점심시간 때면 주머니에 뭘 넣고 남몰래 밖으로 나가는 수만이를 의심한다. 아이들은 얄궂게도 수만이를 따라다니며 주머니 속의 물건에 대해 추궁해댄다. 그러나, 수만이가 점심시간마다 밖에서 남몰래 웅크리고 먹고 있는 것이, 실습장에서 훔친 고구마일 거라는 아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의 어머니가 남의 집 부엌일을 해주고 얻어온 누룽지였음이 밝혀지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참담한 현실의 고통과 함께 아이들다운 죄책감을 수반한 화해가 암시된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자와 약자의 빈부 대립이 두드러지면서도, 「모자」와 같은 작품이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비교적 명백한 화해의 결말을 보이는 것은, 어른들과는 다른 아이들 세계에 대한 작가의 통찰과 믿음이 개입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경우엔, 아이들의 문제에서 발단은 되었지만 소작과 마름이라는 계급 대립을 등장시킨 관계로 결말에 이르기까지 계급간의 화해는 암시조차 없다. 대신 마지막에 사건이 반전되면서, 가난한 민중의 형상인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크게 고조시키는 감동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 바우는, 마름집 외아들로서 서울서 학교 다니다가 방학을 맞이해 집에온 경환이와 나비 문제로 말타툼을 한다. 경환이는 표본 숙제를 한다는 것이나 보통학교 때 바우에게 성적을 눌려오던 분풀이로 동네를 휘저으며 뻐기는 것이고, 바우는 그런 경환이에게 심사가 뒤틀려 있는 것이다. 경환이가 나비를 잡는다는 핑게로 바우네 참외밭을 망가뜨리자, 바우는 경환이를 넘어뜨린다. "우리 집 땅 내가 밟았기로 무슨 상관"이냐며 학교서 배운 유도실력으로 덤벼드는 경환이를, 바우는 "그래, 나비가 중하냐, 사람 사는 게 중하냐?"면서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친 것이다.

  이 일로 바우 어머니는 마름집 경환이네로 불려가 호되게 책망을 당하고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렇잖아도 참외밭 문제로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바우에게 어서 나비를 잡아 가지고 가서 빌라면서 등줄기를 한 대 우린다. 마름집 얘기로는, 바우가 나비를 잡아 가지고 와서 경환이에게 빌지 않으면 내년부턴 땅 얻어 부칠 생각을 말라더란 것이다. 그러나 바우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누구에게든 머리를 굽힐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꾸중과 사정 얘기에도 고집을 세우면서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몰라주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야속해 한다. 끝내는 아버지가 야단칠 때 했던 소리대로, 그냥 집을 나와 서울 같은 도회로 가서 고학이라도 해볼까 하는 심란한 생각을 하며 산등성이에서 내려오다가, 바우는 다음과 같은 뜻하지 않은 장면을 목격한다. 

  산 중턱쯤 이르렀다. 건너다보이는 맞은편 언덕을 너머 모밀밭 두덩에 허연 사람의 그림자가 엎드러졌다, 일어섰다, 하며 무엇을 쫓는 모양으로 움직인다.

  '흥! 경환이란 놈이 저이 집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구나.'

하고 바우는 입가에 업신여기는 웃음을 짓는다. 산을 또 좀 내려와 바라볼 때 경환이로 본 그것은 어른이 분명했다.

  '흥! 경환이란 놈이 저이 집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구나.'

  그리고 바우는 또 한 번 같은 웃음을 웃는다.

  바우는 산을 내려와 맞은편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모밀밭을 내려보았을 때 그는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환이 집 머슴으로 본 사람은 남 아닌 바루 자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농잎을 벗어들고 나비를 쫓아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그 똑똑지 못한 걸음으로 밭두덩을 지척지척 돌고 있다. 

  여기에 이르러 바우는 지금까지의 어둔 마음에서 벗어나와 아버지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물의 형상이 굵고 모든 정황과 대화가 아주 토속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처리된 이 작품은, 김유정의 「동백꽃」에 비견되면서 그것보다는 사회성에서 한발 앞서고 있다. 현덕의 소년소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현덕의 소년소설은 대부분 '정의와 양심, 우정과 신의, 그리고 연민'의 세계를 다루는 가운데, 다음 세대에 대한 현덕의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엿보게 해준다. 다소 통속적인 줄거리를 보이는 작품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런 작품에서조차 단순한 설교나 교훈보다는 아이들 세계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과 신뢰가 더많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작품 저변에 흐르는 뚜렷한 작가의식과, 인물의 내밀한 심리와 행동을 하나로 꿰뚫어매는 뛰어난 예술적 기량이 거기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밤장수」에는, "시골 여인이 한 손엔 어린애를 이끌고, 한 손엔 머리에 인 광우리를 잡고 섰는 모양인데, 그 선 하나 점 하나에 힘이 흐르고 움직임이 있고 산 사람을 보는 듯싶다"고 군밤장수하는 친구의 그림을 평한 뒤에, 기수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날카로운 관찰과 깊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는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 종이 위에 옮겨 놓지 못할 것이다. 

  이 대목은 바로 현덕 자신의 예술관이 아니겠는가?  현덕의 작품 역시 기교이기 전에, 체험과 의식과 마음, 그리고 작가적 눈이 더욱 중시되었던 세계인 것이다. 한 예로, 앞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에서는, 참외덩쿨을 망쳐놓은 마름집 아이와 다툰 자식을 나무란 뒤에도, 돌아서서 혼자말로는 "서울 가서 공부한 것이 나비 잡는다고 남의 집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며 중얼중얼 부러진 참외 넝쿨을 이을 호박잎 따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날카로운 관찰이 아니고서는 오히려 도달할 수 없는, 평범한 듯 우직한 민중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가감없는 형상력과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30년대 후반의 아동문학사에서 현덕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는 바로 이런 데에서 찾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4.맺음말

  현덕의 주된 작품 활동 시기(1938-40)는 역사의 암흑기로 넘어가는 일제시대의 한 고비였다. 이 시기는 최근의 문학사 연구에서 특히 주목되는 30년대 말에 해당하는데, 카프는 해체되었고, 파시즘의 위협 앞에 당대의 진보적인 작가들이 역사에 대한 신념을 회의하고 방황할 무렵이다. 카프는 초기의 공식주의에서 막 벗어나와 리얼리즘을 확립하려 할 즈음 일제로부터 된서리를 맞았고, 당대의 폭력 상황은 세계적인 수준의 파시즘을 동반하고 있었기에 리얼리즘 문학정신 자체가 위협받고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순수문학과 모더니즘이 고개를 든 시기가 바로 30년대였고, 후반에 들어서면 전시체제가 확립되어 이름있는 문인들이 현저히 고개를 수그리거나 친일단체에 가입하게 되는 바로 그 시기에 현덕은 작품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현덕은 당시 '신세대 작가'로 분류되었다. 신세대 작가란 주로 30년대 중반 이후 각종 현상모집을 통해 등단한 작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술적 감각은 뛰어나나 사회의식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데에서 당시의 저널리즘과 카프 계열의 평자들이 함께 붙인 이름이다. 20년대 중반 신경향파 문학의 발생 이래, 근 10년에 이르도록 문단의 주도권을 행사한 카프 문인들로서는 새로운 감각의 신세대 작가와 스스로를 구별하는 '구세대'였으나, 자신들도 급변하는 상황과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역사 저편으로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아울러 갖고 있었다. 30년대 후반기는 신구세대 모두 새로운 시대정신과 대응책을 찾지 못해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종의 전환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구세대가 갈등하는 상황이니 신세대에 속하는 현덕 또한 카프와 대립적인 자리에 놓일 것이라 판단한다면, 이는 속단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 소설은 살펴보지 못했지만, 현덕은 파시즘의 폭력이 극단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에서도, 나름의 사회의식을 지켜나가는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었다고 판단된다. 만일에 현덕의 작가적 개성을 별도로 한다면, 그의 소설은 다루는 범위가 좁고 사건의 긴박성이 떨어지는 흠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한계는 그에게 장편 대작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도 짝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 상황 타개의 주동적인 인물이 없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를 순수주의 혹은 자연주의 작가로 폄하하려 드는 시각이 있다면, 이는 다른 문제이다. 이런 경우, 먼저 카프의 일부 오류를 반복하는 논리에 서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하지만, 아동 문학을 포함한 그의 활동 전반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덕은 아주 짧은 기간에 동화와 소년소설, 소설을 두루 창작했으면서도, 각기 겨냥하는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했던 투철한 장인의식과 작가의식의 소유자이다. 현덕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 활동 시기를 눈여겨 봐야 하고, 그의 시대에 작가의 몫을 그는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가, 곧 그가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파악하고 인간의 문제와 예술적 형상에 도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의 소설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리얼하게 파헤친 민중 현실의 비극성 내지 부정성은 30년대 후반기의 점증하는 암흑 상황과 정확히 조응한다. 노마의 아버지는 농민운동에 대한 '전력을 가진 의식자'이나 '현재는 무기력한 존재'이고(「남생이」, 「경칩」, 「두꺼비가 먹은 돈」), 다른 소설 속의 여러 계층들 역시, 가장 특징적인 당대의 한 풍속을 조감하는 데 올곧게 기여하고 있다(「잣을 까는 집」의 실업 노동자, 「골목」의 실업자 지식인, 「녹성좌」의 좌익 문화예술운동가, 「군맹」의 도시 변두리 빈민계층 등등). 또 소설 「남생이」는, 끝내 아버지가 죽고, 노마는 나무 위에 올라,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가 그 앞에 펼쳐지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군맹」에서는, 무허가 토막일망정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산동네의 주민들이 "좀더 자기 앞에 가로막힌 컴컴한 어둠을 자각"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인 이들 작품 사이에서, 소설과 동시에 그가 동화와 소년소설을 통해 노리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요컨대, 작가 현덕에게는 그의 아동 문학이 고난의 암흑기를 이겨나가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시대의 어둠을 거두어 갈 한 줄기 광명의 열린 통로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덕의 아동 문학은, 아동 문학 자체로도 가치가 높지만, 작가 현덕과 그의 소설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현덕의 아동 문학은 치밀히 계산된 작가의식과 더불어, 그의 뛰어난 예술적 기량이 한껏 펼쳐진 세계이다.▣
(이 글은 《민족문학사연구, 6호, 1994》에 실린 글입니다.글쓴이 원종찬님은
우리회 이사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한국글쓰기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아동문학의 여러 문제들을 연구하고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2000년에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창작과 비평사》을 냈습니다.현재 인하대 강사 및 선화여상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각주

 1)『북으로 간 작가선집·9-현덕,송영 편』(을유문화사, 1988), 『집을 나간 소년』(도서출판 산하, 1993). 원본과 비교할 때, 소설집에는 김남천이 쓴 발문이 빠졌고, 소년소설집에는 주요 작품 「고구마」가 빠져있다.

 2)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또 다른 원인이 되었겠으나,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볼 때 현덕은 거의 무시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가령, 그의 가장 친한 벗이었던 김유정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그런 중에도, 일찍이 백철은 그의 『조선신문학사조사-현대편』(백양당, 1949)에서, "현덕은 일언(一言)하면 진실일로(眞實一路)를 걸어간 작가이다. 소재를 체험에까지 끌어 올릴 것, 그 양자간에 간격을 두지 않으려고 현덕만치 노력한 작가가 드물다. (…) 그러나 (…) 그는 이 시기의 사소설, 신변소설이 아니고 근대의 실험소설이 가진 리얼리즘문학의 정통을 존중한 작가"(366-7면)라고 지적하였다. 또, 신경림은 『한국문학대사전』(문원각, 1973)의 현덕 부분에서, 그의 소설이 담고 있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현실성을 주목했고, 그 사실주의적 방법과 완벽한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덕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최근의 성과로, 김재용·이상경·오성호·하정일 공저, 『한국근대민족문학사』(한길사, 1993)에서는, 이근영, 김유정, 현경준과 함께 현덕 소설이 "리얼리즘의 진전"(691면)을 이룩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역시 최근의 문학사 저술인 김윤식·정호웅 공저, 『한국소설사』(예하, 1993)에는 현덕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새로 출판된 현덕 소설집(『북으로 간 작가선집·9』)의 해설을 쓴 임헌영은, 현덕의 소설세계가 농민·빈민들 사이의 갈등구조이기 때문에, 식민지 관료와 이에 결탁한 지주를 악의 갈등구조로 보았던 카프문학과는 상반된 세계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강진호는 「탈이념과 신세대소설의 분화과정」(『민족문학사연구』 4호, 창작과비평사, 1993)에서, 현덕의 소설세계를 "사회현실에 대한 탈이념적 천착"(293면)이라고 분석한다. 한편, 아동문학사에 관한 가장 본격적인 저술인 이재철의 『한국현대아동문학사』(일지사, 1978)에는 현덕의 이름자 정도 말고는 거의 언급이 없었으나, 『한국아동문학작가론』(개문사, 1983)에서는 그의 "프로문학적 요소"(142면)를 강조하는 가운데, "그 작가적 역량을 의심할 만큼 졸렬한 주제의 처리, 흥미를 잃게하는 천편일률적인 구성"(144면)을 보인다고 혹평했다.

 3)이번에 찾아낸 현덕의 동화 작품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창작과비평사에서 현덕동화선집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4)『소년』 제3권 제3호(1939.3), 59면, 참조.

 5)『신천지』 2호, 1946.3, 27면.

 6)『출판대감』(조선출판문화협회 편, 1949.9), 105면. 이 책의 아동도서 출판목록(1945-8)에도 『집을 나간 소년』과 『포도와 구슬』 두 개만 소개되어 있다.

 7)위의 책, 56면.

 8)『광명을 찾아서』란 제목을 굳이 현덕과 관련시켜 본다면, 그의 소설 『녹성좌』에서 '광명을 등진 사람'이라는 제목의 연극대본이 액자소설식으로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광명을 구하는 사람'의 의지를 역설한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 연극대본의 내용은 소년소설의 세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9)김병철,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을유문화사, 1974), 913면.

 10)이선영·김병민·김재용 편, 『현대문학비평자료집-이북편』, 1-8권(태학사, 1993), 참조.

 11)『조선일보50년사』(조선일보사 간행, 1970), 참조.

 12)당시 조선일보 편집부에 근무하면서 아동 문학 관계 업무를 주관했던 윤석중은, "소년 주인공의 단편소설 「남생이」를 읽은 나의 간곡한 권유"로 현덕이 동화와 소년소설을 많이 발표했다고 회고한다.(윤석중, 『어린이와 한 평생』, 범양사, 1985, 168면).

 13)윤석중은 『유년』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다고 회고한다.(같은 책, 169면).

 14)윤재근·박상원 공저, 『북한의 현대문학·2』(고려원, 1990) 참조.

 15)「신진작가 좌담회」(『조광』, 1939.1), 252면.

 16)그의 소설들에는 다양한 계급계층이 등장한다. 소설 「층」과 「두꺼비가 먹은 돈」은 등장인물로만 보면 아동 문학의 세계에 가까울 것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든지 작가의 의도하는 목표가 부분적으로 아동 문학의 세계를 넘어선다. '층'은 신분과 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17)그의 동화 중 처음 등단작품인 「고무신」(1932)은 내용의 일부를 전래동화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삼형제 토끼」(1939)도 그러하다.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의 현실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면서 「고무신」에선 호랑이와 떡 할멈 이야기, 그리고 「삼형제 토끼」에서는 토끼와 늑대 이야기를 각기 중첩 구성하고 있다.

 18)이와 관련하여, 프로 아동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던 송완순(宋完淳)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고할 만하다. "…천사적 아동을 인간적 아동으로 환원시킨 데까지는 좋았으나, 거기서 다시 일보를 내디디어 청년적 아동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방씨(방정환을 가리킴;인용자)등의 아동이 실체를 잃은 유령이었다면, 30년대의 계급적 아동은 수염난 총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구실을 남겨놓았다."(「조선아동문학시론」, 『신세대』 통권2호, 1946.5, 84면)

 19)어린 노마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해학성'은 그의 소설에서 민중의 타락상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그 적의(敵意)를 민중 자신에게로 직접 향하지 않게끔 하는 일종의 완충 장치가 된다. 그러니까 민중 현실의 비극성과 부정성을 명백히 사회 현실에 근원을 둔 것으로 읽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점에서, 임헌영이 지적한 '노동자·민중 사이의 악과 갈등'은 현덕 소설의 본질이라 하기 어렵다. 또한, "동심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자체가 순수성의 한계 때문에 사회와 삶의 근본적인 갈등과 모순에 이르지 못"(앞의 책, 374면)하게 한다는 지적 역시 일면적인 것으로, 현덕 소설의 핵심을 비껴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20)현덕이 자기가 영향받은 작가를 말하는 자리에서, '동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대목도, '노마'라는 인물성격의 창작 의도와 관련하여 한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도스토엡흐스키-는 기실 『백치』의 주인공 무이쉬킨의 성격과 같아서 어린아이처럼 선량하고 천진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어떠한 곤란한 경우에서든 자기의 기쁨을 만들 수 있어 '언제나 살아나갈 준비'를 하는 거기가 또 좋았다."(「내가 영향받은 외국작가-도스토엡흐스키」, 『조광』, 39.3, 263-4면. 강조 필자).

 21)이재철은 현덕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약자에의 동정심 내지는 강자에의 증오"를 들고, 작가에 의해 선택된 소재인 "가난한 소작농이나, 고학생, 접대부 등 (…) 이러한 피지배 내지는 피압박계급의 적은 부유한 권력층으로서 통상 악의 형태로 공식화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은 이른바 계급투쟁을 표방한 일군의 프로문학가들이 가졌던 문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사상"이라고 하였다.(앞의 책, 142면). 요컨대, 프로문학의 공식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저자의 보수적인 문학 인식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