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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마루프레스_뿌리깊은나무</title>
      <updated>2010-08-01T17:16:46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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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두드러기 - 간판, 눈의 공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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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12T16:25:19P</published>
      <updated>2009-11-12T16:25:19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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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눈밝은 이에게 두드러졌던 간판문제를 다뤘다. &lt;/p&gt;
&lt;p&gt;간판은 업체의 크기나 활동을 과장한다. 간판의 제기능에만 충실하도록 하고, 과장, 과대, 천박함을 지향하자는 내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간판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미 이때부터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놀랍다.&lt;/p&gt;
&lt;p&gt;도시에서 간판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은 감각이 둔해져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lt;/p&gt;
&lt;p&gt;시골에 살다 모처럼 도시에 나가거나, 외국, 특히 경제적 선진국이라는 유럽에 다녀 온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간판이 몹시 눈에 거슬리고, 건물, 도로, 도시의 미관을 형편없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lt;/p&gt;
&lt;p&gt;간판을 달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간판이 크고 화려할수록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믿는다.&lt;/p&gt;
&lt;p&gt;그것은 아주 촌스럽고 어리석은 1차원의 생각일 뿐이다. 지금도 도시 외곽의 음식점, 모텔 등의 간판은 원색의 화려하고 거대한 간판을 달아 놓고 있다. 간판이 바로 그 업소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홍대 앞의 업소들처럼 간판이 디자인의 일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lt;/p&gt;
&lt;p&gt;간판은 크기에 앞서, 업소의 개성을 살리고, 미학적으로 뛰어나며, 업소의 품격을 높이는 용도로 쓰여야 할 것이다.&lt;/p&gt;
&lt;p&gt;업소 주인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간판은 여전히 &apos;공해&apos;가 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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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term="업소"/>
            <category term="공해"/>
            <category term="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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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홍난파와 안익태</title>
      <id>http://marupress.com/17781</id>
      <published>2009-11-12T16:17:51P</published>
      <updated>2009-11-12T16:17:5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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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이 글은 이상만이 쓴 글이다. 이상만은 한국방송공사의 자료실 실장이며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위원이다. &lt;/p&gt;
&lt;p&gt;이 글은 홍난파와 안익태의 삶과 업적에 대해 쓴 글인데, 그들의 친일 행적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필자의 무지 때문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만 읽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래, 위키백과에서 두 사람의 내용을 가져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홍난파(洪蘭波. 일본식 이름: 森川潤, 1898년 ~ 1941년)는 한국의 작곡가로,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한다.[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생애&amp;nbsp; [편집]&lt;br  /&gt;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였고,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를 거쳐 18세 때 조선 정악전습소 양악부를 졸업하였다. 이어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동경 상야음악학교에 2년간 다녔다. 《최후의 악수》라는 소설을 지어 2막극으로 각색하고 음악과 연출까지 맡았고, 마해송이 여자역으로 출연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귀국 후 1922년에 연악회를 창설하고 음악잡지 《음악세계》를 창간하였다. 후에 미국의 셔우드 음악학교(Sherwood Conservatory of Music)를 2년간 다녔다. 이화여전 강사를 지냈고, 경성중앙방송국 양악부 책임자였다. 한국 최초의 관현악단인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조직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작품&amp;nbsp; [편집]&lt;br  /&gt;23세 때 작곡한 〈봉선화〉와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고향의 봄〉, 〈고향 생각〉 등은 그의 대표 가곡이고, 저서에는 《세계의 음악》, 《조선 가요백곡집》과 단편 소설집 《처녀의 혼》, 《향일초》, 《폭풍우가 지난 후》 등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사후&amp;nbsp; [편집]&lt;br  /&gt;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도 선정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참고 자료&amp;nbsp; [편집]&lt;br  /&gt;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4월 1일). 〈홍난파 : 민족음악개량운동에서 친일음악운동으로 (노동은)〉,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31&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익태(安益泰, 1906년 12월 5일 평양 ~ 1965년 9월 16일 바르셀로나)는 한국의 작곡가, 지휘자로, 대한민국의 국가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한국환상곡이 있다. 일제 치하 시대의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일생&amp;nbsp; [편집]&lt;br  /&gt;안익태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보통학교와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에 일본으로 유학, 세소쿠가쿠엔 고등학교에 음악특기자로 입학하였다. 1926년에는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전공했고, 1930년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했다. 신시내티 음악원과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첼로와 지휘 등을 배웠고 한인 교회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lt;/p&gt;
&lt;p&gt;1936년에 처음 유럽을 방문했고, 이 때 파울 힌데미트와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를 만나 음악 활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때부터 친일 행적을 시작했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1937년에 템플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한 뒤 1938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방송 교향악단을 객원지휘했다. 이후 헝가리에 머물면서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졸탄 코다이와 에르뇌 도흐나니 등에게 작곡을 배웠고, 종전 직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에스파냐 등지에서 지휘 활동을 했다.&lt;/p&gt;
&lt;p&gt;전황이 악화되자 1944년 4월에 파리에서 베토벤 축제 연주회를 마친 직후 중립국인 에스파냐로 피난했으며, 그 해 12월에는 그의 대표작인 한국 환상곡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필 악보를 완성했다. 1946년에는 에스파냐 여성 롤리타 탈라베라와 결혼했고,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스위스,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서 지휘했고, 1955년 3월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lt;/p&gt;
&lt;p&gt;1962-64년까지 3년간 서울에서 국제음악제를 주관했고, 런던 교향악단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했다. 1965년 7월 4일에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 직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9월 16일에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타계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애국가와 표절 의혹&amp;nbsp; [편집]&lt;br  /&gt;안익태의 작품 중 &apos;애국가&apos; 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식 국가로 쓰이고 있지만, 그 작곡 연도와 장소에 대한 이견이 많다. 1964년 제 3회 서울 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 지휘자 페터 니콜로프는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인 &apos;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O! Dobrujanski Krai)&apos; 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안익태의 활동에 대해 독재적이라고 비판하던 국내 음악계의 질시와 맞물려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lt;/p&gt;
&lt;p&gt;그러나 최근에 음악학자 허영한이 애국가는 안익태가 유럽을 방문하기 전인 1935년 11월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작곡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1936년에 베를린에서 작곡되었다는 견해가 수정되기도 했다. 허영한의 연구가 표절이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는 아니지만, 그 동안의 유럽 작곡설을 뒤집었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신빙성이 강화되었다는 주장이 많다.&lt;/p&gt;
&lt;p&gt;애국가 외에도 &apos;강천성악&apos; 에 나오는 선율이 일본의 궁중 음악인 &apos;에텐라쿠&apos; 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최근에 안익태의 유럽 체류 시절 연구에서 발견된 작품인 환상곡 &apos;에텐라쿠&apos; 가 원본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lt;/p&gt;
&lt;p&gt;&amp;nbsp;안익태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amp;nbsp; [편집]&lt;br  /&gt;안익태는 1930년대 후반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밝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1942년경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시기의 안익태 공연 프로그램에 &apos;슈트라우스의 제자&apos; 라는 내용이 실리기 시작했고,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작품인 &apos;일본 축전 음악&apos; 을 지휘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작성해준 추천장이 남아 있다. 안익태는 2차대전 종전 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며, 일본의 옹가쿠노토모샤(음악지우사)에서 슈트라우스의 전기를 출판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친일 행적&amp;nbsp; [편집]&lt;br  /&gt;안익태의 1940년대 유럽 활동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경래와 롤리타 탈라베라의 전기에 기록된 자료로 전해져 왔으나, 최근에 진행된 연구들에서 이들 자료의 잘못된 정보와 왜곡 사례를 지적하고 있어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유럽 체류 시절 안익태가 관변 단체였던 &apos;일본-독일 협회&apos; 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일본의 가가쿠를 주제로 한 &apos;에텐라쿠&apos; 와 일본제국에 의해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세워진 일을 기념한 &apos;만주국 축전곡&apos; 등을 작곡했다는 기록도 발표되었다.&lt;/p&gt;
&lt;p&gt;2000년에는 음악잡지 &apos;객석&apos; 의 베를린 통신원이었던 진화영이 안익태의 베를린 필 지휘 기록이 종전의 1940년이 아닌 1943년이며, 단 한 차례 뿐이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같은 해 발굴되었다는 안익태의 지휘 모습이 담긴 기록 영화가 2006년에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송병욱에 의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실황 녹화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내 음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lt;/p&gt;
&lt;p&gt;2006년 11월 19일에 송병욱의 강연회를 통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기록 영화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되었으며, 2007년에는 음악학자 이경분이 독일과 스위스 등지의 문서 보관소 등에서 찾아낸 자료들로 안익태의 1938-44년 활동상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lt;/p&gt;
&lt;p&gt;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 명단의 군 부문에는 형인 안익조도 포함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작품&amp;nbsp; [편집]&lt;br  /&gt;성악 모음곡 &apos;한국의 생활&apos; (이팔청춘/아리랑 고개/전원/백합화. 1934~1935)&lt;br  /&gt;애국가(1936)&lt;br  /&gt;교향시 &apos;강천성악&apos;(관현악곡, 1936)&lt;br  /&gt;한국환상곡(합창과 관현악, 1936~1937)&lt;br  /&gt;환상곡 &apos;에텐라쿠&apos;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lt;br  /&gt;교향 환상곡 제 2번 &apos;교쿠토(극동)&apos;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lt;br  /&gt;전원곡 (Pastorale.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lt;br  /&gt;만주국 축전곡 (합창과 관현악, 194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lt;br  /&gt;논개(교향시, 1962)&lt;br  /&gt;애국지사 추도곡(관현악곡, 1962)&lt;br  /&gt;흰 백합화(성악과 기악, 1962?)&lt;br  /&gt;한국무곡(관현악곡, 1963)&lt;br  /&gt;교향시 &apos;마요르카&apos; (관현악곡, 1948. 2006년에 자필보 발견)&lt;br  /&gt;교향시 &apos;포르멘토르의 로 피&apos; (관현악곡, 1951. 2006년에 자필보 발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참고 문헌&amp;nbsp; [편집]&lt;br  /&gt;김경래, 《안익태의 영광과 슬픔. 코리아 판타지》, 현암사, 1966.&lt;br  /&gt;롤리타 탈라베라, 《나의 남편 안익태》, 신구문화사, 1974.&lt;br  /&gt;전정임, 《안익태》, 시공사, 1998.&lt;br  /&gt;진화영, 《한국인 최초 베를린 필 지휘,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 월간 객석, 2000.5월호&lt;br  /&gt;이규희, 《울어 버린 애국가》, 밝은미래, 2005.&lt;br  /&gt;송병욱, 《안익태의 알려지지 않은 두 작품》, 월간 객석, 2006.3월호&lt;br  /&gt;송병욱, 《안익태의 민족 정체성-어느 음악가의 정당한 평가를 위하여》, 월간 객석, 2006.4월호&lt;br  /&gt;박정미, 《안익태에 대한 의혹 제기와 그 오류에 대한 단상》, 월간 객석, 2007.1월호&lt;br  /&gt;이경분,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휴머니스트, 2007.&lt;br  /&gt;송병욱, 《안익태 &apos;한국환상곡&apos; 초연 70주년 특별기고 1-더블린 초연 현장을 말한다》, 월간 객석, 2008.2월호&lt;br  /&gt;송병욱, 《안익태 &apos;한국환상곡&apos; 초연 70주년 특별기고 2-헝가리 동영상과 안익태 이해의 새 키워드》, 월간 객석, 2008.3월호&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category term="홍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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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서울의 새 마님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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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10T16:34:12P</published>
      <updated>2009-11-10T16:34:1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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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서영은이 쓴 글이다. 이때 소개 된 서영은은 소설가이며 잡지기자이다. &lt;/p&gt;
&lt;p&gt;인터넷으로 &apos;서영은&apos;을 검색해 찾은 언론 보도는 다음과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영은씨 “문인생활 30년 정리” &lt;br  /&gt;&amp;nbsp;&lt;br  /&gt;소설가 서영은(54)씨가 30년의 작품활동 결과물을 한데 모아 다섯권의 중단편전집(둥지)으로 펴냈다.지난 68년 ‘사상계’ 신인작품모집에 단편소설 ‘橋(교)’가 당선되어 등단한 그는 83년 단편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견작가로 발돋움했고,이후 문단의 흐름과 무관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lt;/p&gt;
&lt;p&gt;각각 ‘사막을 건너는 법’ ‘타인의 우물’‘시인과 촌장’‘먼 그대’‘꿈길에서 꿈길로’등의 제목이 붙은 ‘서영은 중단편전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 36편.발표된 모든 작품을 거의 손대지 않고 연대순으로 묶었다.&lt;/p&gt;
&lt;p&gt;“일목요연해진 내 발자취를 보니 도망치고 싶었어요.그동안 내가 반문명적인 것,인간 본연의 자유를 찾아 끝없이 왔으며,고통속에 나를 단련하려 했음이 작품마다 드러나고 있더군요.” “고통은 인식을 선연하게 만들어 주며,사람은 삶 전체에 몸을 던져 정직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쓰기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나는 글을 통해 사막과 샘,그리고 낙타를 만났다.짐을 얹고 또 얹고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 그 짐을 이기는 영원한 힘을 이끌어낸 不死(불사)의 낙타….” 그 낙타는 바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는 작품은 단편 ‘수화’(86년)와 중편‘사다리가 놓인 창’(89년).과거가 생략된 30대 부부의 풍경을 그려낸 ‘수화’에 대해 그는 “칼을 댄 차원이 다른 작품”으로 설명했다.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까지 인식이 넘어가 있다는 것이다.반면 ‘사다리가 놓인 창’은 작중 인물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한 작품으로,이를 쓰고 나서 그는 “이게 바로 소설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졌다고 밝힌다.자신의 ‘출세작’이랄 수 있는 ‘먼 그대’에 대해서는 의외로 “상당히 정형화된 작품”이라고 자평한다 최근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신화다.그에게 신화는 지나간 역사가 아닌,현대적 삶으로 공존한다.‘시간과 삶의 영원성’에 작가의 시각이 닿을 때 감지되는 삶의 신화성을 그는 일상에서 수없이 발견하고 있다며,“무속에서 고행의 수임자로 전해져오는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오늘의 이야기로 되살리고 싶다”고 말한다.&lt;/p&gt;
&lt;p&gt;80년대 말 이후 작품과 상관없이 그를 세인에게 드러낸 사건은 작가 김동리와의 결혼과 사별.20대의 초년 작가시절에 만나 40대인 87년에 결혼에 이른 이야기를 93년 산문집 ‘한 남자를 사랑했네’에 털어놓았던 그는 ‘시대가 문명화할수록 이해를 못받는 원점에 있었던 사람’으로 김동리를 회고하며 그의 영향력이 앞으로 자신의 작품에 더 확연히 드러나리라고 고백한다.&lt;br  /&gt;이러한 사생활과 연결되며 지적되어 온 것이 그의 작품에 배어있는 ‘숙명적인 여성관’. 이에 대해 그는 “여성이 운명을 수임하는 것은 여성만이 해낼 수 있는 소명이며,여성의 힘은 삶 속에 대지처럼 버티고 주위를 기름지게 바꿔놓는 힘이다.이를 얄팍한 페미니즘의 각도로 재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가 그리는 여성의 힘이 닿는 곳은 ‘사랑’. 그 사랑은 정념이 아닌 큰 사랑으로 향할 때 결국 ‘자유’의 개념과 만나고,이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루는 세계인 것이다. “글과 마주칠 때는 언제나 힘듭니다.그러나 이 일을 통해 生(생)을 관통한다고 생각할 때 가장 기쁩니다.” &amp;lt;李炯叔기자&amp;gt;&lt;br  /&gt;기사 게재 일자 1997-12-25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순수의 작가 서영은을 위하여 &lt;br  /&gt;회갑산문집 &apos;그 꽃의 비밀&apos; / 헌정소설집 &apos;그대에게 꽃을&apos; &lt;br  /&gt;&amp;nbsp;&lt;br  /&gt;&amp;nbsp;2003년 05월 26일 (월)&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  /&gt;&amp;nbsp;&lt;br  /&gt;　강릉 출신 소설가 서영은씨의 회갑을 맞아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 온 이들이 쓴 산문집과 청년작가들이 바치는 소설집 두 권이 동시에 출간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lt;br  /&gt;　1980년대 중편소설 &apos;먼 그대&apos;로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강한 인상을 준 서영은씨는 문단의 거목인 고 김동리씨(1913∼1995)와 30년 나이 차를 뛰어넘어 결혼, 세간의 이목을 끈 작가.&lt;br  /&gt;　올해로 등단 35주년이자 지난 18일로 회갑을 맞은 순수한 열정의 이 작가를 추억하는 회갑 산문집 &apos;그 꽃의 비밀-서영은과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apos;(이룸)과 헌정 소설집 &apos;그대에게 꽃을&apos;(시공사)은 지난한 삶을 살았던 서영은씨를 향한 소박한 사랑이 담겨있다.&lt;br  /&gt;　&apos;그 꽃의 비밀&apos;은 시인, 소설가 등 선후배 동료문인과 화가, 사진작가, 은사 등 50명이 참여해 작가이면서 여성인 서영은의 세월과 사랑, 고통, 환희를 더듬으며 추억하고 있다. &lt;br  /&gt;　반세기의 인연을 이어온 중학교 은사이자 수필가인 김옥남씨부터 70년대 후반 문학사상 주간실에서 처음 만난 문학평론가 강인숙씨, 소설가 최정희의 문하생들로 이뤄진 40년지기 ‘정릉 친구들’의 소설가 양문길 김문수 김지원, 시인 이제하 등과 요즘 왕성하게 활동하는 까마득한 후배작가 김형경, 전경린, 하성란씨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리즘으로 서영은을 보여주고 있다.&lt;br  /&gt;　그런가 하면 청년작가 12명은 &apos;그대에게 꽃을&apos;이라는 소설집을 헌정했다. &lt;br  /&gt;　같은 강원도 출신 소설가 심상대씨의 발의로 묶은 이 소설집은 30∼40대 청년소설가들이 선배 작가 서영은씨의 문학적 삶과 빛나는 소설작품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1&lt;br  /&gt;　&apos;글라디올러스를 안고 롱아일랜드로 오세요&apos;(심상대) &apos;황금의 나날&apos;(성석제) &apos;신라의 푸른 길&apos;(윤대녕)을 비롯 조용호 한창훈 김도연 박청호 김영하 박성원 김 연수 이응준 김종광씨 등 열두명 작가가 직접 선정한 대표작들이 실려있다.&lt;br  /&gt;　서영은은 자전산문 &apos;절대를 찾아가는 순례&apos;를 통해 성장기, 문학에 입문한 과정, 지난했던 삶, 평생 지녀온 운명적 화두 등을 밝히며 이들의 애정에 화답하고 있다.&lt;br  /&gt;　이 책에서 청년작가들은 &apos;우리는 서영은 선생님의 외연을 이루고 있는 회갑의 인생이 아니라, 한 명의 창조자로서 소진한 소설가로서의 역정에 이 책을 바친다.&apos;고 적고 있다.&lt;br  /&gt;　서영은씨는 1968년 &apos;사상계&apos;로 등단해 모두 5권의 중·단편 소설집과 장편소설집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그녀의 여자’ 등을 펴냈으며 이상문학상과 연암문학상을 수상했다. 연내에 2권짜리 전작장편을 펴낼 계획이다.&lt;br  /&gt;　박미현 &lt;a href=&quot;mailto:mihyunpk@kado.net&quot;&gt;mihyunpk@kado.net&lt;/a&gt;&amp;nbsp; &lt;br  /&gt;ⓒ 강원도민일보(&lt;a href=&quot;http://www.kado.net&quot;&gt;http://www.kado.net&lt;/a&gt;) &lt;/p&gt;
&lt;p&gt;--------------------------------------------------------------------&lt;/p&gt;
&lt;p&gt;&lt;br  /&gt;故 김동리선생 미망인 소설가 서영은씨 마이윌에 유언장 공개&lt;/p&gt;
&lt;p&gt;- 오늘 하루 하루의 생활을 유언으로 여긴다 밝혀&lt;/p&gt;
&lt;p&gt;&quot;의식이 없을 때는 절대 병원에 가지 말 것이며, 내가 가진 소유 중 일부는 네 조카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apos;매 맞는 아내를 돌보는 여성단체&apos;에 기증해 달라&quot;&lt;/p&gt;
&lt;p&gt;문단의 거목이셨던 故 김동리 선생의 부인이자 원로작가 서영은씨(이상문학상, 연암문학상 수상)가 인터넷 전문 유언사이트 마이윌(&lt;a href=&quot;http://www.mywill.co.kr&quot;&gt;www.mywill.co.kr&lt;/a&gt;)에 자신의 유언장을 공개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lt;/p&gt;
&lt;p&gt;&apos;긴 여행을 앞두고 사고에 대비하여 유언장을 써두기로 맘 먹었다&apos;로 시작한 서씨는 한 조카의 사업자금으로 1억5천의 은행 빚마저 혼자 짊어지게 되었으나 훗날 조카의 인생이 물질적 재산보다 몇 십배의 가치를 일깨우게 되었다는 구체적인 일화와 함께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진솔하게 써내려갔다.&lt;/p&gt;
&lt;p&gt;&quot;장례는 가족 친지들끼리만 간소하게 치를 것이며, 화장한 재는 산의 아무 밑에 뿌려서 거름이 되게 해주면 좋겠고, 내가가진 소유 중 일부는 &apos;매 맞는 아내를 돌보는 여성단체&apos;에 기증해 달라&quot;며 유언으로 밝힌 서씨의 글은 이시대의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故 김동리 선생처럼 평소의 검소함과 철학을 몸소 느낄 수 있게 한다. &lt;/p&gt;
&lt;p&gt;&quot;마이윌에 유언장을 써보며 새삼 유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나는 오늘 하루 하루의 생활을 유언으로 여기며, 감사와 기쁨, 사랑을 주변사람들과 나누고 있다.&quot;며 말을 맺은 서씨는 1968년 &amp;lt;사상계&amp;gt; 신인작품 모집에 단편 &amp;lt;교(橋)&amp;gt;가 입선하고, 1969년 &amp;lt;월간문학&amp;gt; 신인작품 모집에 &amp;lt;나와 &apos;나&apos;&amp;gt;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수많은 소설과 산문 등을 발표했으며, 이상문학상, 연암문학상등을 수상한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lt;/p&gt;
&lt;p&gt;한편, 이 글이 소개된 마이윌(my will)사이트의 &apos;사과나무&apos; 코너에는 김영춘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탤런트 임현식씨,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등 사회적 공인들의 공개 유언의 글이 매주 소개되고 있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깊은 희망과 감동의 힘을 전해주고 있다.&lt;/p&gt;
&lt;p&gt;현재 암호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세계최초 IT기술을 접목한 유언사이트 &apos;마이윌(my will)&apos;사업팀을 이끌고 있는 ㈜아메릭스 코리아의 대표이사 진용직 사장은 &quot;유언장 작성은 웃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보험이자, 진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만나는 너무나 값진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그저 담담한 일상의 한 영역일 뿐이다&quot;라고 강조하며 &quot;이제는 유언을 해보는 것이 자신의 삶을 좀더 의미 있고 보람되게 하려는 문화이다&quot;며 마이윌 사업의 당찬 취지를 밝혔다.&lt;/p&gt;
&lt;p&gt;2006.2.16&amp;nbsp; 연합뉴스 보도자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영은이 쓴 &apos;서울의 새 마님들&apos;은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 기사이다.&lt;/p&gt;
&lt;p&gt;&apos;유한부인&apos;으로 일컬어지는 돈많은 중년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인데, 돈은 많고, 시간은 남아도는 중년 여성들이 사치와 향락, 도박, 불륜 등 다양한 현상을 취재했다. 결국 이들은 물질로부터 스스로 &apos;소외&apos;당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심각한 폐해 가운데 하나의 현상이다.&lt;/p&gt;
&lt;p&gt;이렇게 모은 돈은, 수 많은 노동자들의 피땀의 결과이며,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형편인데, 그들의 피땀을 착취한 인간들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lt;/p&gt;
&lt;p&gt;이 시기는 전태일 열사가 &apos;근로기준법을 지켜라&apos;고 외치며 산화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았고,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시대였다. 돈많은 유한부인들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배를 불리며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자들은 심각한 범죄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lt;/p&gt;
&lt;p&gt;그들 스스로는 정당하게 돈을 벌었다고 하겠지만, 혼자 돈을 벌 수 없다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번 돈을 더럽게 쓰는 자들, 그들이야말로 기생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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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이미자 타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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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20:38:42P</published>
      <updated>2009-11-04T20:38:4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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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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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소설가 이병주가 쓴 글이다. 이병주는 이때 소설가이자, 국제신보사 논설위원으로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병주가 이미자를 생각하는 글이다. 역설적인 내용인데, 이미자의 음악, 이미자의 존재, 이미자가 계속 인기를 얻고 있는 시대 상황이 오히려 퇴영적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lt;/p&gt;
&lt;p&gt;이병주는 대단한 부잣집 아들이어서 고생을 모르고 세상을 살았으며, 상당한 멋장이였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www.narim.or.kr/&quot;&gt;http://www.narim.or.kr/&lt;/a&gt;&lt;/p&gt;
&lt;p&gt;이병주 문학관에 있는 그의 공식 연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21년 3월 16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아버지 이세식과 어머니 김수조의 사이에서 태어남. 호는 나림(那林) &lt;br  /&gt;&amp;nbsp; &lt;br  /&gt;1931년 북천공립보통학교(7회), 1933년 양보공립보통학교(13회) 졸업 &lt;br  /&gt;&amp;nbsp; &lt;br  /&gt;1944년 와세다 대학 불문과에 재학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소주(蘇州)에서 지냄. &lt;br  /&gt;1948년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 &lt;br  /&gt;&amp;nbsp;&lt;br  /&gt;1954년 문단에 등단하기 이전 이미 &amp;lt;부산일보&amp;gt; 에 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연재 &lt;br  /&gt;1955년 &amp;lt;국제신보&amp;gt;에 입사, 편집국장 및 주필로 언론계에서 활동 &lt;br  /&gt;&amp;nbsp;&lt;br  /&gt;1961년 5·16때 필화사건으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고 복역중 2년 7개월 후에 출감. 외국어대학, 이화여자대학 강사를 역임. &lt;br  /&gt;1965년 중편 「소설․알렉산드리아」를 &amp;lt;세대&amp;gt;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 &lt;br  /&gt;1966년 「매화나무의 인과」를 &amp;lt;신동아&amp;gt;에 발표 &lt;br  /&gt;1968년 「마술사」를 &amp;lt;현대문학&amp;gt;에 발표. 『관부연락선』을 &amp;lt;월간중앙&amp;gt;에 연재(4~1970. 3.) 작품집『마술사』(아폴로사) 간행. &lt;br  /&gt;1969년 「쥘부채」를 &amp;lt;세대&amp;gt;에, 「배신의 강」을 &amp;lt;부산일보&amp;gt;에 발표. &lt;br  /&gt;&amp;nbsp;&lt;br  /&gt;1970년 『망향』을 &amp;lt;새농민&amp;gt;에 연재, 장편『여인의 백야』(문음사) 간행1971년 「패자의 관」(&amp;lt;정경연구&amp;gt;) 등 중단편을 발표하는 한편,『화원의 사상』을 &amp;lt;국제신보&amp;gt;, 『언제나 은하를』을 &amp;lt;주간여성&amp;gt;에 연재 &lt;br  /&gt;1972년 단편「변명」을 &amp;lt;&amp;lt;문학사상&amp;gt;&amp;gt;에, 중편「예낭풍물지」를 &amp;lt;세대&amp;gt;에, 「목격자」를 &amp;lt;신동아&amp;gt;에 발표. 장편『지리산』을 &amp;lt;세대&amp;gt;에 연재. 장편『관부연락선』(신구문화사) 간행. 영문판「예낭풍물지」, 장편『망각의 화원』 간행 &lt;br  /&gt;1973년 수필집『백지의 유혹』(강남출판사) 간행 &lt;br  /&gt;1974년 중편「겨울밤」을 &amp;lt;문학사상&amp;gt;에, 「낙엽」을 &amp;lt;한국문학&amp;gt;에 발표. 작품집『예낭 풍물지』영문판(세대사) 간행. &lt;br  /&gt;1976년 중편「여사록」을 &amp;lt;현대문학&amp;gt;에, 단편「철학적 살인」을, 중편「망명의 늪」을 &amp;lt;한국문학&amp;gt;에 발표, 창작집『철학적 살인』(한국문학), 『망명의 늪』(서음출판사) 간행. &lt;br  /&gt;1977년 중편「낙엽」과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창작집『삐에로와 국화』(일신서적공사), 수필집『성-그 빛과 그늘』(서울물결사), 『바람과 구름과 비』(동아일보사) 간행. &lt;br  /&gt;1978년 중편「계절은 그때 끝났다」, 단편「추풍사」를 &amp;lt;한국문학&amp;gt;에 발표. 『바람과 구름과 비』를 &amp;lt;조선일보&amp;gt;에 연재, 창작집『낙엽』(태창문화사) 간행, 장편『망향』(경미문화사), 『허상과 장미』(범우사), &amp;lt;조선일보&amp;gt;에 연재되었던 『미와 진실의 그림자』(대광출판사), 『바람과 구름과 비』(물결출판사) 간행. 수필집『사랑받는 이브의 초상』(문학예술사), 『허상과 장미』(범우사), 칼럼『1979년』(세운문화사) 간행. &lt;br  /&gt;1979년 장편『황백의 문』을 &amp;lt;신동아&amp;gt;에 연재, 장편『여인의 백야』(문음사), 『배신의 강』(범우사), 『허망과 진실』(기린원) 간행, 수필집『사랑을 위한 독백』(회현사), 『바람소리, 발소리, 목소리』(한진출판사) 간행. &lt;br  /&gt;&amp;nbsp;&lt;br  /&gt;1980년 중편「세우지 않은 비명」, 단편「8월의 사상」을 &amp;lt;한국문학&amp;gt;에 발표. 작품집『서울의 천국』(태창문화사), 소설『코스모스 시첩』(어문각), 『행복어 사전』(&amp;lt;문학사상&amp;gt;사) 간행. &lt;br  /&gt;1981년 단편 「피려다 만 꽃」을 &amp;lt;소설문학&amp;gt;에, 중편「거년의 곡」을 &amp;lt;월간조선&amp;gt;에, 중편「허망의 정열」을 &amp;lt;한국문학&amp;gt;에 발표. 장편『풍설』(문음사), 『서울 버마재비』(집현전), 『당신의 성좌』(주우) 간행. &lt;br  /&gt;1982년 단편「빈영출」을 &amp;lt;현대문학&amp;gt;에 발표.『그해 오월』을 &amp;lt;신동아&amp;gt;에 연재. 작품집『허망의 정열』(문예출판사), 장편『무지개 연구』(두레출판사), 『미완의 극』(소설문학사), 『공산주의의 허상과 실상』(신기원사), 수필집『나 모두 용서하리라』(대덕인쇄사), 『용서합시다』(집현전), 소설『역성의 풍 ․ 화산의 월』(신기원사), 『행복어 사전』(&amp;lt;문학사상&amp;gt;사), 『현대를 살기 위한 사색』(정음사), 강변이야기(국문) 간행. &lt;br  /&gt;1983년 중편「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를 &amp;lt;한국문학&amp;gt;에, 「소설 이용구」와 「우아한 집념」을 &amp;lt;문학사상&amp;gt;에, 「박사상회」를 &amp;lt;현대문학&amp;gt;에 발표, 작품집『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홍성사), 고백록『자아와 세계의 만남』(기린원), 『황백의 문』(동아일보사) 간행. &lt;br  /&gt;1984년 장편『비창』을 문예출판사에서 간행, 한국펜문학상 수상, 장편『그해 오월』(기린원), 『황혼』(기린원), 『여로의 끝』(창작문예사) 간행. &amp;lt;주간조선&amp;gt;에 연재되었던 역사기행『길 따라 발 따라』(행림출판사), 번역집『불모지대』(신원문화사) 간행. &lt;br  /&gt;1985년 장편『니르바나의 꽃』을 &amp;lt;문학사상&amp;gt;에 연재. 장편『강물이 내 가슴을 쳐도』와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무지개 사냥』(심지출판사), 『샘』(청한), 수필집『생각을 가다듬고』(정암), 『지리산』(기린원), 『지오콘다의 미소』(신기원사), 『청사에 얽힌 홍사』(원음사), 『악녀를 위하여』(창작예술사), 『산하』(동아일보사), 『무지개 사냥』(문지사) 간행. &lt;br  /&gt;1986년 「그들의 향연」과 「산무덤」을 &amp;lt;한국문학&amp;gt;에, 「어느 익일」을 &amp;lt;동서문학&amp;gt;에 발표, 『사상의 빛과 그늘』(신기원사) 간행. &lt;br  /&gt;1987년 장편『소설 일본제국』(문학생활사), 『운명의 덫』(문예출판사), 『니르바나의 꽃』(행림출판사), 『남과 여-에로스 문화사』(원음사), 『남로당』(청계), 『소설 장자』(&amp;lt;문학사상&amp;gt;사), 『박사상회』(이조출판사), 『허와 실의 인간학』(중앙문화사) 간행. &lt;br  /&gt;1988년 『유성의 부』(서당) 간행, 대하소설『그해 5월』을 &amp;lt;신동아&amp;gt;에, 역사소설『허균』을 &amp;lt;사담&amp;gt; 에, 『그를 버린 여인』을 &amp;lt;매일경제신문&amp;gt;에, 문화적 자서전『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메모』를 &amp;lt;문학정신&amp;gt;에 연재, 『행복한 이브의 초상』(원음사), 『산을 생각한다』(서당), 『황금의 탑』(기린원) 간행. &lt;br  /&gt;1989년 장편『소설 허균』, 『포은 정몽주』, 『유성의 부』(서당), 장편『내일 없는 그날』(문이당) 간행. &lt;br  /&gt;&amp;nbsp;&lt;br  /&gt;1990년 장편『그를 버린 여인』(서당) 간행, 『꽃이 된 여인의 그늘에서』(서당), 『그대을 위한 종소리』(서당) 간행. &lt;br  /&gt;1991년 인물평전『대통령들의 초상』(서당), 『달빛 서울』(민족과 문학사), 간행, 『삼국지』(금호서관) 간행. &lt;br  /&gt;1992년 『세우지 않는 비명』(서당), 4월 3일 오후 4시 지병으로 타계. &lt;br  /&gt;1993년 『소설 정도전』(큰산), 『타인의 숲』(지성과 사상) 간행. &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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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민중은 어디에 있느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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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20:24:51P</published>
      <updated>2009-11-04T20:24:5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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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김형효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글을 쓰던 1976년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였지만, 그 이후의 삶은 이규호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lt;/p&gt;
&lt;p&gt;그에 관한 기사를 찾아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  /&gt;김형효교수에 대한 학계평가는 &lt;br  /&gt;&amp;nbsp;&lt;br  /&gt;철학연구자로서 김형효 교수에 대한 학계전체의 평가는 반반으로 엇갈린다. 특히 최근의 동·서양철학에 대한 비교연구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서양철학의 시각으로 동양사상을 재단한다는 동양철학계의 문제제기도 간간이 들린다.&lt;/p&gt;
&lt;p&gt;그러나 김교수의 작업에 대한 학계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인용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하다.&lt;/p&gt;
&lt;p&gt;이정우 전서강대교수가 얼마전 격주간‘교수신문’에 기고한 한 프랑스 구조주의 연구서에 대한 서평에서 지난 1989년 나온 김교수의 저서‘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을 들며,“10여년전에 나온 책인데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 지금 나온 책보다 충실한데도 인용조차 되지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lt;/p&gt;
&lt;p&gt;사실 한 철학연구자가 평생동안 연구한 결과로 내놓은 업적이 기껏해야 개설서나 연구논문집 1∼2권에 불과한 국내 학계의 현실에서 김교수의 작업은 높이 평가하고도 남음이 있다.이번에 출간된‘하이데거와 마음의 철학’외에도‘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철학과 여정의 형이상학’‘베르그송의 철학’‘데리다의 해체철학’‘메를로-뽕티와 애매성의 철학’‘노장(老莊)사상의 해체적 독법’‘원효에서 다산까지’등 사유의 깊이와 폭을 일정하게 갖춘 연구서들만해도 10권은 넘는다.&lt;/p&gt;
&lt;p&gt;이밖에도 원효와 율곡,퇴계,다산 등 한국의 철학자들에 대한 공동연구작업의 결과물을 비롯해 최근 5년간 발표한 논문만도 30여편에 이른다.&lt;/p&gt;
&lt;p&gt;이같은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교수는 여전히 국내 철학계에서 변방의 비주류 학자일 뿐이다.그 이유는 뭘까.일단 학문외적인 데서 우리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지난 85년 광주항쟁을 유혈로 진압하고 성립한 전두환(全斗煥)정권아래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12대)으로 참여한 전력이 그의 학자로서의 이미지에 만회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힌 것이다.&lt;/p&gt;
&lt;p&gt;게다가 민정당 국책연구소 이념연구실장이란 타이틀은 정권에 봉사하는 어용 이데올로그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을 뿐이다.이는 김교수의 작업을 인정하는 학자들까지도 정작 그의 성과를 수용하길 꺼리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마찬가지로 김교수가 국책연구기관으로 학계와의 연계가 부족한 정문연에 소속돼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lt;/p&gt;
&lt;p&gt;그러나 이같은 학문외적인 문제를 떠나 이제 그의 작업이 가진 양적·질적 독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사실 김교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는 비교철학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우리 학계의 폐쇄성도 한몫했기 때문이다.&lt;/p&gt;
&lt;p&gt;특히 최근들어 동·서양 철학의 접목에 관심을 갖고 작업중인 이진우 계명대교수와 이정우교수 등은“김교수를 우리 학계에서 다작이면서도 나름대로 사상적 일관성과 일정한 학문적 수준을 갖춘 독특한 성과를 많이 낸 학자로 평가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특히 이정우 교수는 ▲연구를 통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결론의 제시가 없고 ▲아직까지 양적인 성과에 비해 저자 나름의 철학이 명확히 안보이며 ▲다소 고답적인 글쓰기가 아쉽지만“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작업조차 시도한 사람이 드문 현실에서 긍정적으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진우교수는“국내에서 동·서양철학을 김교수만큼 두루 이해하고 있는 학자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김교수의 예를 들며 동양철학계의 민족주의적 분위기와 함께 자신의 전공이나 코드에 맞는 논문만 인용하고 전혀 다른 방식의 독창적인 작업에 대해선 무시해버리는 국내 학계의 행태도 개선돼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들린다.&lt;/p&gt;
&lt;p&gt;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벨기에 루벵대에서 마르셀 연구로 학위를 한 김교수는 서강대교수를 거쳐 82년 정문연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동양철학을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모르는 것이 있으면 동료교수와 후학들에게 민망하고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다”는 한형조 정문연교수의 말은 올해로 회갑을 맞은 김교수가 학문하는 자세를 보여준다.&lt;/p&gt;
&lt;p&gt;&lt;br  /&gt;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0-08-02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대담=한형조 교수)&amp;nbsp; &lt;br  /&gt;&amp;nbsp;&lt;br  /&gt;&amp;nbsp;2009년 07월 24일 (금) 15:00:22 사진ㆍ정리=이강식 기자&amp;nbsp; &lt;a href=&quot;mailto:lks97@ggbn.co.kr&quot;&gt;lks97@ggbn.co.kr&lt;/a&gt;&amp;nbsp; &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뒤 원효사상에 심취해 늦깍이 불자가 된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그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종교로 불교를 꼽았다. 2005년 정년 퇴임하면서 “불교 수행에 매진하겠다”는 말을 남긴 그를 만났다. 편집자&lt;/p&gt;
&lt;p&gt;불교, 山中서 도심으로 내려와야&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  /&gt;◇단 한 번도 청하 스님(입적)을 만난 적이 없지만, 김형효 교수는 청화 스님이 정신적 스승이라고 말했다.&lt;/p&gt;
&lt;p&gt;&lt;br  /&gt;한형조(이하 한) : 2005년에 정년퇴임하셨습니다. 그간 동ㆍ서양의 철학을 섭렵하셨고, 퇴임 때 수행에 매진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기가 있으신가요?&lt;br  /&gt;김형효(이하 김) : 인문학(철학)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어요. 철학이 생경한 학문으로만 남아 도(道, 수행)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생활과 동떨어진 관념이 되고 마는 경우를 여러 번 목도했습니다. &lt;br  /&gt;불교학대회서 느낀 점은 불교가 생활 속에서 깊은 도가 돼야 하는데 그냥 학문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듣는 사람도 재미없어 하죠. 부처님이 경계하신 마른 지혜죂乾慧죃가 된 겁니다. &lt;br  /&gt;은퇴 후 마지막 남은 삶은 학문을 도(道)로 심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수행에 매진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lt;/p&gt;
&lt;p&gt;한 : 매일 수행을 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lt;br  /&gt;김 : 모임에 매일 나가 참선 공부는 하지만 참선은 안 해 봤다고 말합니다. 사찰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하는 수준이죠. 스님들이 화두를 주시는데, 무조건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관심 있는, 자기에게 절실한 문제와 연관된 화두를 들고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교 수행의 요체는 부처되는 길이 무엇이고 대승의 길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죠.&lt;/p&gt;
&lt;p&gt;한 : 불교와 인연 맺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입적하신 청화 스님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lt;br  /&gt;김 : 참 훌륭한 스님이시죠. 제가 업이 많은지 그 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 분이 제 업을 녹여주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방학 때 만나러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만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연이 안 닿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스님의 저서를 사서 읽기도 했죠.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무슨 인연이 있는지, 청화 스님과 인연 있는 사찰인 서울 광륜사에서 청화 스님 관련 원고를 써달라고 해서 스님의 은덕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해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lt;/p&gt;
&lt;p&gt;한 : 선불교의 등장은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교학의 확대로 건혜(乾慧)로 빠지니까 직접 수행을 강조하는 선불교가 일어났죠. 학계를 중심으로 교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lt;br  /&gt;김 : 모든 일에 일희일비가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부처님이 세상을 보는 논리입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은데, 저는 교학이 결여된 선수행 일변도는 많이 공허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空)사상도 색을 배제해 버리면 아무런 내용없이 공허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공사상은 인간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공과 색을 동시에 얘기하면서 또 무와 유를 말씀하신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lt;br  /&gt;승찬 대사는 《신심명》에서 무(無)와 유(有)가 같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교인데, 말씀을 통해서 부처님이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를 익힐 수 있습니다. &lt;/p&gt;
&lt;p&gt;한 : 선의 역사를 보면, 선의 종장(宗長)들은 오랫동안 교학을 공부하고 선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철학이 언제부터 수행을 배제해 왔습니까?&lt;br  /&gt;김 : 동ㆍ서양의 어떤 철학도 수행의 방법이 다를 뿐, 불교적 의미에서 수행을 배제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수행의 방식에 있어서 서양의 기독교 신학이나 동양의 유학은 늘 도덕적 방법을 택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의 수행은 도덕적·윤리적인 의미의 수행이 아닌 존재론적인 의미의 수행입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재의 의미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합니다.&lt;br  /&gt;불교는 삼라만상을 존재론적으로 보는 방식, 즉 관(觀)이 매우 중요한 종교입니다. 그래서 선(善)을 중시하면서 악을 배제하지 않는, 선과 악이 늘 동시에 성립하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보라고 합니다.&lt;br  /&gt;이건 선이다, 이건 악이다’라고 하는 것은 유교의 주자학이나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것이지, 불교에서의 선악은 불이(不二)의 관계입니다. &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  /&gt;한형조(52)&lt;br  /&gt;서울대 철학과 졸업&lt;br  /&gt;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lt;br  /&gt;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교수&lt;br  /&gt;저서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등이 있다. &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  /&gt;김형효(70)&lt;br  /&gt;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박사&lt;br  /&gt;전 공군사관학교, 서강대 교수&lt;br  /&gt;전 루뱅대 연구교수&lt;br  /&gt;12대 국회의원(민정당)&lt;br  /&gt;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lt;/p&gt;
&lt;p&gt;&lt;br  /&gt;한 : 불교의 장점은 무엇이고,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보십니까?&lt;br  /&gt;김 : 불교는 아주 실리적이고 실학적인 종교이자, 세상을 바꾸는 철학입니다. 붓다가 이 세상에 나타난 까닭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고통을 덜 받고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인간이 행복해지고, 불국토가 됩니다.&lt;br  /&gt;붓다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가장 쉽게 중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부처의 길을 가기 위한 방편을 보여주셨죠. 그래서 가장 실용적인 종교라고 하는 겁니다. 불교적 사유, 즉 나의 무의식을 알고 길들여 조용히 잠재우지 않고서는 절대로 무의식의 세계에서 치솟는 번뇌망상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번뇌망상, 갈등, 질투 등에 얽매이면 나 자신도, 이웃도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격정에 휘말리고 있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대단히 필요합니다.&lt;/p&gt;
&lt;p&gt;한 : 원효 사상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원효 스님을 평가하신다면?&lt;br  /&gt;김 : 원효 대사가 왜 파계를 했을까요. 불교의 계는 도덕ㆍ윤리적인 계율을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정(定)에 들기 위해 필요한 겁니다. 정에 들어야 지혜를 얻게 됩니다. 만인의 추앙을 받던 학승 원효는 하루아침에 계를 잃어버림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멸시를 받게 되고, 결국 하심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원효는 고고한 학승이 아니라 전쟁고아, 과부, 상의군인들에게 위안 주는 만인의 보살이 된 것입니다.&lt;/p&gt;
&lt;p&gt;한 : 한국불교의 기본 두 축은 궁극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스님과 절에 가서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중생입니다. 극심한 경쟁 탈피, 인간성 회복 등 시대적 요구에 불교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lt;br  /&gt;김 : 중생과 부처의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심리적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돈, 권력, 지식 등 남이 안 가진 걸 가졌다고 으스대는 사람은 중생의 사고방식을 못 벗어나고, 부처님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lt;br  /&gt;공부하신 스님들은 대중들이 복을 구하는 것을 너무 무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불행하니까 복을 찾기 때문이죠. 스님들은 중생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올바른 길로 안내해 복을 찾는 방법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lt;br  /&gt;어떤 스님이라도 설법을 잘해 주셔야 됩니다. 지금은 대중 시대인데 대중을 외면한 종교는 생명이 끊어집니다. 스님들은 설법을 통해 대중들과 접촉하는데, 선수행만 하신 스님들이 과연 설법을 잘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떤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교학은 공부하지 않고 선수행만 하는 스님들은 대중 만나는 일을 기피한다. 대중법문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으면 대중들은 스님을 외면하게 되고, 스님도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대중들을 외면한다”고요. 가슴에 절절히 와 닿았습니다.&lt;/p&gt;
&lt;p&gt;한 : 평소 재가불자들을 직업을 통한 부처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해 오셨는데, 무슨 의미입니까?&lt;br  /&gt;김 : 나를 벗어나서 남들을 이롭게 해주는 사람은 부처의 길에 이미 들어섰다고 봅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원돈성불론》에서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보광명지를 밝히면, 중생상이 여래상이고, 중생심이 곧 여래심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생이 이루는 정치와 산업과 기술과 예술 등의 공교기예(工巧技藝)가 다 여래의 보광명지를 운영하는 다양한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lt;br  /&gt;좋은 손재주를 갖고 있으면 그건 동시에 내 속에 들어있는 불심의 밝은 지혜가 있다는 거죠. 그걸 통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회에 기여도 하게 됩니다. 직업을 통해 이타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옵니다.&lt;br  /&gt;불성 회복보다는 훨씬 생활 가까이에서 매일 돈벌고 일하는 그 속에서 부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국토의 길입니다.&lt;/p&gt;
&lt;p&gt;한 : 한국불교계에 제언을 해주신다면?&lt;br  /&gt;김 : 사회불교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야 편가르기에 참여하는 불교가 아닙니다.&lt;br  /&gt;불교는 재가자 중에서도 능력 있는 이들을 모아 편안한 국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학자는 말할 나위 없고, 상인도 부처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만인이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능력을 발휘해 부처가 되는 길이 불국토를 이루는 길입니다. 말로만 ‘불국토’를 외치지 말고 부처들이 사는 나라, 현실감이 없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나라가 돼야 합니다.&lt;br  /&gt;또 불교 제도를 이원화해 수행승과 포교승이 일정 기간을 정해 서로 순환하면서 수행하고, 포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불교는 지나치게 산중불교요, 성불불교에요. 부처되기 전에 중생제도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언제 부처돼서 중생을 제도합니까. 혼자 부처되는 길 찾다가 결국 중생제도는 하지 못하고 시간만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산중에서 시중으로 내려와야 할 때입니다. &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사진ㆍ정리=이강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amp;nbsp;&amp;nbsp; &lt;br  /&gt;&amp;nbsp;&lt;br  /&gt;ⓒ 금강신문(&lt;a href=&quot;http://www.ggbn.co.kr&quot;&gt;http://www.ggbn.co.kr&lt;/a&g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lt;br  /&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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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오상원의 우화 - 애꾸눈 호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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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19:13:51P</published>
      <updated>2009-11-04T19:13:5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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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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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lt;오상원의 우화&amp;gt;는 창간호에 없던 것이어서 이번에 처음 시작하는 한 페이지짜리 글이다.&lt;/p&gt;
&lt;p&gt;말 그대로 우화를 쓴 글이다. 오상원은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상원&lt;/p&gt;
&lt;p&gt;1930∼1985. 소설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49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53년 극협의 작품공모에 응모한 장막극 〈녹쓰는 파편(破片)〉이 당선되었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예 猶豫〉가 당선됨으로써 작가 활동이 시작되었다.&lt;/p&gt;
&lt;p&gt;이어 같은 해 〈균열 龜裂〉이 ≪문학예술 文學藝術≫ 8월호에 발표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단편 〈난영 亂影〉(文學藝術, 1959.9.)과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 〈모반 謀反〉, 장편 〈백지의 기록〉(思想界, 1957.5.∼12.), 그리고 중편 〈황선지대 黃線地帶〉(思想界, 1960.4.) 등을 발표하였다.&lt;/p&gt;
&lt;p&gt;이 작가의 문학적 특징은 6·25 전후 세태의 사회적·도덕적 문제를 다루어 전후 세대의 정신적 좌절을 행동주의적 안목으로 주제화한 데 있다. 잘 알려진 단편 〈모반〉은 광복 직후 사회적·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서, 정당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청년 당원들 사이에 자행된 테러를 주요 문제로 다루고 있다.&lt;/p&gt;
&lt;p&gt;이 작품에서 주인공 민이 “위대(?)한 하나의 일의 성공보다는 나는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하나라도 더 소중스러워졌단 말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주인공의 인간주의적 각성이 주제임을 알게 된다.&lt;/p&gt;
&lt;p&gt;이 작가는 프랑스 행동주의문학과 실존주의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한국의 전후 세대의 풍토 속에서 독자적인 작품을 이루어 1950년대의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lt;/p&gt;
&lt;p&gt;그 밖에 〈피리어드〉(知性 夏季號, 1958)·〈내일쯤은〉(思想界, 1958.7.)·〈부동기 浮動期〉(思想界, 1958.12.)·〈보수 報酬〉(思想界, 1959.5.)·〈표정 表情〉(思想界, 1959.8.)·〈현실 現實〉(思想界, 1959.12.) 등이 있다. 미완성의 장편으로는 〈무명기 無明記〉(1961.8.∼11.)가 있다.&lt;/p&gt;
&lt;p&gt;그 밖에 〈훈장 勳章〉(世代, 1964.1.)·〈암류 暗流〉(世代, 1964.9.)·〈거리 距離〉(思想界, 1964.9.)·〈담배〉(思想界, 1965.2.〉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앙드레 말로와 행동주의문학〉(文藝, 1960.6.)이 있다.&lt;/p&gt;
&lt;p&gt;≪참고문헌≫ 傷處받은 世代의 後日譚(廉武雄, 現代韓國文學全集 7, 新丘文化社, 1966)&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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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문화 속의 전통과 창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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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19:01:30P</published>
      <updated>2009-11-04T19:01:30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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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이규호 연세대학교 교수가 쓴 글이다.&lt;/p&gt;
&lt;p&gt;이규호 씨는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연세대학교 철학과&amp;nbsp;교수이자 &apos;뿌리깊은나무&apos;의 편집위원으로 학자의 삶을 살았다.&lt;/p&gt;
&lt;p&gt;저서도 [사람됨의 뜻], [말의 힘] 등 나름대로 학자다운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이후의 삶은 많이 달라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위키피디아의 약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규호(李奎浩, 1926년 6월 19일 경남 진주[1] ~ 2002년 4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교육행정가이다.&lt;/p&gt;
&lt;p&gt;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신군부에 의해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제5공화국 문교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교부 장관 재직중에는 7·30 교육개혁조치를 주도하여, 신군부의 이념을 교육정책을 통해 뒷받침했다.&lt;br  /&gt;&lt;/p&gt;
&lt;p&gt;학력&lt;br  /&gt;1950년 : 한신대학교 졸&lt;br  /&gt;1962년 : 독일 튀빙엔 대학교 철학박사&lt;br  /&gt;1983년 : 미 뉴저지 주 시튼홀 대학교 명예법학박사&lt;/p&gt;
&lt;p&gt;&lt;br  /&gt;약력&lt;br  /&gt;1963년 : 중앙대학교 교수&lt;br  /&gt;1964년 : 연세대학교 교수&lt;br  /&gt;1977년 :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장&lt;br  /&gt;1979년 : 국토통일원 장관&lt;br  /&gt;1980년 : 문교부 장관&lt;br  /&gt;1984년 : 한국교원대 총장&lt;br  /&gt;1984년 : 정신교육중앙협의회 회장&lt;br  /&gt;1985년 : 대통령 비서실장&lt;br  /&gt;1985년 : 주일대사&lt;br  /&gt;1988년 : 외무부 본부대사&lt;br  /&gt;1992년 : 인간개발연구원 회장&lt;br  /&gt;1992년 : 단계학술연구원 원장&lt;br  /&gt;1995년 : 순신대학교 총장&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관료가 되는 과정이 불순하다. 전두환, 노태우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 이규호를 장관으로 앉혔는데, 그 자리가 탐이 났는지, 아니면 총칼이 무서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덜컥 승낙하고 장관이 되었다.&lt;/p&gt;
&lt;p&gt;그 후로는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lt;문화 속의 전통과 창조&amp;gt;라는 글에서 이규호가 하고 싶은 말은, 전통을 지키되, 그 속에서 창조를 찾자는 것이다.&lt;/p&gt;
&lt;p&gt;그의 보수, 수구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글이다. &lt;/p&gt;
&lt;p&gt;전통을 지키고 그 속에서 창조를 하자는 말이 대단히 잘못된 말도 아니고, 또 어떤 면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글이지만, 글의 내용에서 느껴지는 의미는 &apos;혁명&apos;이나 &apos;개혁&apos;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규호는 &apos;새로움&apos;과 &apos;기술의 발달&apos;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apos;다른 사고방식을 따름으로써 전통을 어기면 외톨박이로 여겨지며 공통체와의 연결이 끊어진다&apos;고 두려움을 드러낸다.&lt;/p&gt;
&lt;p&gt;&apos;전통&apos;이라는 단어에는 &apos;민족&apos;, &apos;공동체&apos;, &apos;동질성&apos;, &apos;동일성&apos; 등 뭔가 국수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편협함의 냄새가 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category term="뿌리깊은나무"/>
            <category term="이규호"/>
            <category term="문교부장관"/>
            <category term="전두환"/>
            <category term="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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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돌과 민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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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14:56:18P</published>
      <updated>2009-11-04T14:56:18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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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컬러 화보와 글. 이상일이 글 쓰고, 주명덕이 사진을 찍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돌과 관련된 민속을 찾아 역사성과 내포된 의미를 밝히고 있는데, 돌로 만든 것들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 고인돌, 벅수, 장승, 무덤 앞 석물, 비석, 돌다리, 석탑, 쌓아올린 돌무덤&amp;nbsp;등이 있을 것이다. 돌로 만든 우상들이 민중의 신앙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lt;/p&gt;
&lt;p&gt;바위와 돌은 우리의 민속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매우 중요한 근원이기도 하다. 소위 &apos;과학&apos;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만, 전통으로 이어온 민중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 속에 있는 우리의 정서를 더 많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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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연극 - 쫓겨다니는 연극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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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3T15:51:40P</published>
      <updated>2009-11-03T15:51:40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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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여석기 고려대학교 교수가 쓴 글이다.&lt;/p&gt;
&lt;p&gt;연극을 할 수 있는 무대, 즉 &apos;극장&apos;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글이다.&lt;/p&gt;
&lt;p&gt;명동에 있는 예술극장이 문을 닫고, 충무로의 까페 떼아뜨르가 집주인에게 쫓겨나서 연극인들이 설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장충동에&amp;nbsp;국립극장이 있으나 무대가 너무 크거나 여러 장르의 예술단체에서 사용하고 있어 연극인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국립극장 소극장이 적당하기는 하나 서울 시내에서 멀고,&amp;nbsp; 약 350명 정도를 수용하는 극장이 좀 작다고 말한다.&lt;/p&gt;
&lt;p&gt;그에 대한 대안으로 서울시민회관을 이용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apos;서울시민회관&apos;은 지금 서울시의회 건물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극을 하는 극단은 많지만, 잘 운영되는 극단도 드물고, 연극을 올릴 무대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거의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이 우리나라 연극무대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lt;/p&gt;
&lt;p&gt;연극, 춤, 발레, 연주 같은 마니아 성격이 강한 장르의 예술은 문화의 척도이기도 하다. 스포츠에서도 핸드볼, 하키, 럭비와 같이 극도로 관심이 적은 종목이 스포츠의 척도인 것과 마찬가지다.&lt;/p&gt;
&lt;p&gt;이들 예술과 스포츠의 기반이 잘 다져지는 사회가 바로 문화 예술의 사회이고, 사회 전체가 고루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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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term="명동"/>
            <category term="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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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미술 - 박래현이 남기고 간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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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3T09:27:35P</published>
      <updated>2009-11-03T09:27:35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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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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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오광수 미술평론가가 쓴 글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 사람의 유명하고 뛰어난 화가인 박래현 씨는 운보 김기창 씨의 아내이기도 했다. 오광수는 박래현의 생애와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박래현을 검색해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strong&gt;작가명&lt;/strong&gt; &lt;em&gt;박래현&amp;nbsp; &lt;/em&gt;朴崍賢&amp;nbsp; Park, Re-hyun &lt;/p&gt;
&lt;dd style=&quot;WIDTH: 60%&quot;&gt;&lt;strong&gt;아호명&lt;/strong&gt; 우향 &lt;/dd&gt;
&lt;dd style=&quot;WIDTH: 60%&quot;&gt;&lt;strong&gt;출생년도&lt;/strong&gt; 1920.04.13 &lt;/dd&gt;
&lt;dd style=&quot;WIDTH: 60%&quot;&gt;&lt;strong&gt;사망년도&lt;/strong&gt; 1976.01.02 &lt;/dd&gt;
&lt;dd style=&quot;WIDTH: 60%&quot;&gt;&lt;strong&gt;출생지 평남 진남포&lt;/strong&gt;&lt;/dd&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최병식 (미술평론가)&lt;br  /&gt;&lt;br  /&gt;우향 박래현은 주지되다시피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잊을 수 없는 큰 별이며 특히 여류로서는 선구자적인 위치에 우뚝 선 분이다. 본디 그의 작업은 수묵 담채와 채색을구사하는 동양화가 주가된다. 일제시대 후반기에 선전(鮮展)에서도 활약하였고 50년대 초반 전쟁을 피해 군산 구암동에 운보와 함께 피난하는 기간에 시작된 실험적경향들은 한국 현대 동양화의 개척자 중 한 분으로 평가된다. 더우기 비교적 폭넓은국제적이고도 다원적인 시각을 구축하면서 창출해 온 한국전통적 미감에 바탕을 둔조형성이나 정신세계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부단히 논의 되어온 동양화의 현대적 위상확립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lt;br  /&gt;이번 20주기를 기념하여 열리게 되는 우향 박래현 판화전의 주요 작품들은 그의이와같은 다원적인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개안(開眼)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또 하나의 시도로서 어느면에서 보면 그의 평면회화에 못지 않는 미술사적,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lt;br  /&gt;우향의 판화작업은 실제로는 미국 체류 기간인 1969년 부터 1974년까지 약 5년간에 걸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판화라는 쟝르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1964년의 미국, 구라파, 중동 여행과 &quot;67년 중남미와 미국여행에서 시작하게된 서구미술의방법론적인 심취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뉴욕에 체제하는 6년여 동안 봅 블랙번(Bob Blackbunn)연구소와 프렛(Pratt)에서의 판화연구 기간동안 비록 방법론의 습득과정에 있어서는 기법은 현지의 연구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판화의 주된 테마나 소재의 선택 등은 대다수가 위에서 말한 두번의 여행에서 얻게된 인상과 스케치들로 부터 비롯되고 있다.&lt;br  /&gt;우향이 남기고간 노트나 스케치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두번에 걸친해외여행의 기록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소재들이나 흥미는 중동, 중남미 여러나라에집중되어 있다. 특히나 원시적 다원시각에 의해 제작된 많은 공예들이나 각지방의 전통문양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일일히 사물들의 특징과 색채, 명칭과 년대 재료들을 명기하는 치밀성까지도 보이고 있다.&lt;br  /&gt;제작년대는 다소 차이가 있거나 추정적이지만 &quot;74년 귀국시에 유럽 아프리카 여행에서도 그가 겪은 역사의 흔적들에대한 생생한 체험과 상상의 흥미는 당시의 전반적인 작업속에서 한국적 소재들과 연결되어 표현된다. &quot;이 역사의 증언, 그러나 이속에 영원히 간직되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이러한 추리는 싱겁게도 나에게 흥미를 돋구어 준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상상력은 끝없이 펼쳐진다.&quot; 그는 이렇게 당시의 기억들을 적고 있다.&lt;br  /&gt;이번 시몽화랑의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발표년대를 보면 대개가 1971년 부터1974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작가가 생존시에 많은 작품에 년대와 명제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변화의 년표제작이 체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체가 약 40여점 전후의 수량이 출품된 이번 작품들 상당수가 그간 이미 화집과 한 두차례의 전시를 통해 발표된 바도 있으며 미술사 판화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도 포함이 되어 있다.&lt;br  /&gt;우선 대체적인 이번 작품들의 주요 내용과 경향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의모든 작업들이 &quot;64년과 &quot;67년의 여행에서 체득된 고대미술의 소재들과 한국미술의요소를 적절히 조합하여 우향 자신의 세계관으로 조형화시킨 것들이다. 특히 그의대표작으로 꼽히는 「근원(origin)A」 같은 예는 생명과 역사의 근원적인 내용을 독특한 조형언어를 통해 에칭과 메조틴트(포토에칭)기법을 병행하여 제작하고 있으며「삶」이나 「근원B」「회상」 등의 명제나 작품내용 대다수에서 그가 말한 &quot;역사의 증언과 그 비밀&quot;에 대한 미스테리를 찾아나서는 상상력을 유발시키게 된다. 「太古 B」「詩想 A, B」같은 예도 그가 남겨 놓은 인디언 미술에 대한 스케치와 흡사한 언어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 한국적 소재들의 전이나 변용은 「근원 B」의 예에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lt;br  /&gt;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 「다색동판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사진기법을 병행하는 포토에칭(Photo Etching)이나 소프트 그라운드(Soft ground)기법, 콜라그라프(Collagraph)기법과 메조틴트(Mezzotint)기법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동판화 중에서도 헤이터(Hayter)기법을 주로 많이 사용하여 동일한 판면(版面)에다 세가지 각기 다른 색을구사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lt;br  /&gt;이는 원래 「아뜰리에 17」에서 스텐리 헤이터(Stanley w. Hayter)라는 작가가 처음으로 실험하였으며 깊이가 각기 세가지를 다르게 부식, 찍혀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즉 판각면(版刻面)의 종류가 하나는 판각된 홈의 면과 두번째는 아무것도 부식되지 않은 금속판의 볼록면, 셋째는 판면에 보호제를 입히지 않고 부식한 면 등 세종류의 판각면에 다시 경도(硬度)가 서로 다른 종류의 롤러를 사용함으로서 판각면의 깊이를 구분하게 된다.&lt;br  /&gt;하드롤러와 소프트롤러의 개념이 여기에 쓰이게 되며 잉크의 서로 다른 점성순서에의해 각기 다른 판면의 원리에 의거하여 겹쳐지는 부분에서 혼함된 색을 찍어나가게 된다. 이때 처음에는 하드롤러를 사용하여 두드러진 부분, 즉 동판의 판면에 잉크를 입히고 소프트롤러는 점성이 낮은 잉크로서 볼록한 두면과 전표면에 색층을입히게 되므로 두번째 작업에서는 혼합이 가능한 것이다.&lt;br  /&gt;이와같은 기법적 특수성에 의해 하나의 판(Plate)으로 「회상 A. B. E」「太古 E. F」「魯 B」「삶」등과 같이 여러색상의 작품을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이상과 같은 우향판화의 내용, 기법적인 특징 이외에도 특기해야 될 사항는 유작으로 남긴 약 40-50여 점의 전작품이 A. P(Artist proof) 즉 예술가의 시험작품이라는 점이다. 더우기 일반적으로 전체판화 작품의 숫자인 에디션(Adition)의 10%정도를 제작하게 되어있는 이 A. P판의 개념도 거의 오리지널 회화작품과 접근할 정도로 소수 작품만을 제작하여 에디션(Adition)까지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lt;br  /&gt;여기에는 물론 헤이터기법의 난이도도 작용되었겠으나 당시 그의 뉴욕생활 6년에완전히 함몰되었던 판화세계의 강한 실험의지와 순수성의 소산인 것으로도 간주 될수 있다.&lt;br  /&gt;그의 판화에서 베어져 있는 원시림의 생명력같은 에너지나 상상력, 치밀하고도 이지적인 독특한 조형적 감도는 회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평소 그의 우미(優美)한 곡선미감과는 또다른 차원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운보의 불타는 예술혼을 홀로두고너무도 아쉽게 57세의 일기로 타계한 우향의 그 슬픔은 사실상 후반기 판화에 쏟은열정이 건강의 악화를 재촉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quot;74년 귀국 할 때 판화보급을 위해 판화제반도구와 기계까지 직접 부쳐 왔을 정도로 후반기의 작업은 판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75년 갑작스럽던 발병으로 야기된 홀연한 타계는 우리미술사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lt;br  /&gt;이지적(理智的)여류미술인의 예술혼과 선각자적 경지가 이와 같은 중간 조명의 계기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은 물론 더우기 최근에 우리 미술계에서 일고 있는 판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lass=&quot;public_BBSlist01&quot; summary=&quot;경력사항&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1&lt;/td&gt;
&lt;td&gt;1969 ~ 1974&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도미 후 귀국&lt;/td&gt;&lt;/tr&gt;
&lt;tr&gt;
&lt;td&gt;2&lt;/td&gt;
&lt;td&gt;1966 ~ 1967&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성신여사대 동양화과 교수&lt;/td&gt;&lt;/tr&gt;
&lt;tr&gt;
&lt;td&gt;3&lt;/td&gt;
&lt;td&gt;1966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오월 신인예술상 심사위원&lt;/td&gt;&lt;/tr&gt;
&lt;tr&gt;
&lt;td&gt;4&lt;/td&gt;
&lt;td&gt;1963 ~ 1965&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성신여사대 강사&lt;/td&gt;&lt;/tr&gt;
&lt;tr&gt;
&lt;td&gt;5&lt;/td&gt;
&lt;td&gt;1962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서울시 문화위원회 위원&lt;/td&gt;&lt;/tr&gt;
&lt;tr&gt;
&lt;td&gt;6&lt;/td&gt;
&lt;td&gt;1961 ~ 1975&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10, 12, 24회 국전 심사위원&lt;/td&gt;&lt;/tr&gt;
&lt;tr&gt;
&lt;td&gt;7&lt;/td&gt;
&lt;td&gt;1957 ~ 1960&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서울 문리대 강사&lt;/td&gt;&lt;/tr&gt;
&lt;tr&gt;
&lt;td&gt;8&lt;/td&gt;
&lt;td&gt;1956 ~ 1957&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숙명여대 강사&lt;/td&gt;&lt;/tr&gt;
&lt;tr&gt;
&lt;td&gt;9&lt;/td&gt;
&lt;td&gt;1956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국전 초대작가&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lass=&quot;public_BBSlist01&quot; summary=&quot;상훈사항&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1&lt;/td&gt;
&lt;td&gt;1974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6회 신사임당상&lt;/td&gt;
&lt;td&gt;대한주부클럽연합회&lt;/td&gt;&lt;/tr&gt;
&lt;tr&gt;
&lt;td&gt;2&lt;/td&gt;
&lt;td&gt;1972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문화 공로상&lt;/td&gt;
&lt;td&gt;대한여학사회&lt;/td&gt;&lt;/tr&gt;
&lt;tr&gt;
&lt;td&gt;3&lt;/td&gt;
&lt;td&gt;1956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5회 국전 대통령상&lt;/td&gt;
&lt;td&gt;문교부&lt;/td&gt;&lt;/tr&gt;
&lt;tr&gt;
&lt;td&gt;4&lt;/td&gt;
&lt;td&gt;1956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8회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lt;/td&gt;
&lt;td&gt;대한미술인협회&lt;/td&gt;&lt;/tr&gt;
&lt;tr&gt;
&lt;td&gt;5&lt;/td&gt;
&lt;td&gt;1943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22회 선전 특선&lt;/td&gt;
&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gt;6&lt;/td&gt;
&lt;td&gt;1941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제20회, 23회 선전 입선&lt;/td&gt;
&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gt;7&lt;/td&gt;
&lt;td&gt;1940 &lt;/td&gt;
&lt;td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
&lt;p&gt;선전 최고상 (창덕궁상)&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lt;국립현대미술관&amp;gt; 홈페이지에서 가져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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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문학 - 문인협회의 이사장 자리</title>
      <id>http://marupress.com/17719</id>
      <published>2009-11-03T09:15:24P</published>
      <updated>2009-11-03T09:15:2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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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최종률 중앙일보 문화부장이 쓴 글이다.&lt;/p&gt;
&lt;p&gt;1976년 2월 9일에 있었던 제15차 정기총회를 보고 느낀 점을 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을 했다.&lt;/p&gt;
&lt;p&gt;문인협회 이사장 자리라는 것이 별 것 아님에 틀림없는데도 왜들 그렇게 암투와 시비가 끊이지 않는가를 짚어봤다.&lt;/p&gt;
&lt;p&gt;첫째, 회장을 선거제에서 추대제로 갑작스럽게 바꾼 것에 대한 시비&lt;/p&gt;
&lt;p&gt;둘째, 현 회장인 조연현 씨에 대한 회원 문인들의 반감&lt;/p&gt;
&lt;p&gt;셋째, 문단 정치에 비위가 상한 문인들의 정서&lt;/p&gt;
&lt;p&gt;넷째, 새로운 세대가 밑에서 자라나고 있어, 세대차이로 인한 마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실제로는 문인협회 이사장인 조연현 씨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면 되겠다.&lt;/p&gt;
&lt;p&gt;애당초 글쓰는 사람들은 &apos;문인협회&apos;니 뭐니 하는 &apos;조직&apos;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대개의 조직에 대해 혐오하고 있기 때문에 &apos;한국문인협회&apos;라고는 해도 실제 회원의 활동이라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lt;/p&gt;
&lt;p&gt;앞에서 글쓴이도 지적했지만 &apos;문단 정치&apos;와 관련하여 혹독한 비판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lt;/p&gt;
&lt;p&gt;좋은 글을 쓸 생각은 없고, 파벌이나 짓고, 정부에서 돈이나 타내고, 직위나 자리 등 권력을 좇는 행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어느 곳에나 구더기는 있기 마련인가 보다.&lt;/p&gt;&lt;/div&gt;</content>
                  <category term="문인협회"/>
            <category term="정기총회"/>
            <category term="조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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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무용 - 무용이냐 춤이냐</title>
      <id>http://marupress.com/17712</id>
      <published>2009-11-03T08:23:25P</published>
      <updated>2009-11-03T08:23:25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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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마루프레스</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무용평론가 이병임이 쓴 글이다.&lt;/p&gt;
&lt;p&gt;1976년 3월 21은 우리나라에 &apos;신무용&apos;이 들어온 지 반세기가 되는 날이라고 한다. &apos;신무용&apos;의 기원은 1926년 3월 21일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의 무용가 이시이바쿠가 경성공회당에서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치기 때문이란다.&lt;/p&gt;
&lt;p&gt;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조택원과 최승희가 신무용가로 처음 이름을 날렸다. &lt;/p&gt;
&lt;p&gt;신무용의 역사가 반세기가 되었지만 조택원과 최승희의 역량을 뛰어넘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무용이 갖는 형식미의 미달도 문제거니와, 무용에 담아야 하는 높은 예술성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이 이즈음의 무용 수준이라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도 &apos;무용&apos;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하고 우리 것 같지 않은 거리가 느껴진다. 요즘은 &apos;무용&apos;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apos;춤&apos;이라고 하고, 고전무용은 &apos;발레&apos;, 현대무용은 그냥 &apos;춤&apos;이라고 말하는 걸로 알고 있다.&lt;/p&gt;
&lt;p&gt;또한, 70년대에 고민했던 춤 속의 철학과 사상의 부재에 관해서도 춤을 추는 예술가들이 많이 고민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lt;/p&gt;
&lt;p&gt;그렇더라도, &apos;춤&apos;은 여전히 부르조아 문화에 속해 있고, 일반 서민들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예술임에 틀림없다.&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category term="무용"/>
            <category term="현대무용"/>
            <category term="춤"/>
            <category term="뿌리깊은나무"/>
            <category term="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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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영화 - 원작을 가위질하는 뜻</title>
      <id>http://marupress.com/17710</id>
      <published>2009-11-02T19:10:37P</published>
      <updated>2009-11-02T19:10:37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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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소설가 김승옥이 쓴 글이다.&lt;/p&gt;
&lt;p&gt;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의 문제를 지적한 글인데, 소설가 조해일의 중편 &apos;왕십리&apos;를 영화감독 임권택 씨가 감독한 영화 &apos;왕십리&apos;를 평했다. 원작과 다른 부분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평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승옥이나 조해일 씨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lt;/p&gt;
&lt;p&gt;두 사람 모두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뛰어난 작품으로 문단에서 활동하던 유명작가다.&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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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음악 - 대마초와 가수</title>
      <id>http://marupress.com/17708</id>
      <published>2009-11-02T18:40:49P</published>
      <updated>2009-11-02T18:40:49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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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조선일보 문화부장 정영일이 쓴 글이다.&lt;/p&gt;
&lt;p&gt;1970년 중반부터 이미 대마초(마리화나)가 가수를 중심으로 연예계에 퍼지고 있고, 이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마초의 시작을 미국으로 보고 있고, 1965년 그룹사운드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사이키델릭 음악을 만들면서 대마초가 유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예인 대마초 사건은 특히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낸다.&lt;/p&gt;
&lt;p&gt;1970년대 중반이라면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고, 사회를 더욱 억압하고 있었으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더욱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의 대마초 사건을 공표하고, 언론에서 크게 다룬다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사회현상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보면서 말하는 건, 지성인이 아니다.&lt;/p&gt;
&lt;p&gt;알량한 지식기술자들이 표피적인 재미만을 위해 글을 쓰거나, 정권에 빌붙어 잘먹고 잘살겠다는 &apos;개&apos;의 노릇을&amp;nbsp;하고 있음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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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6/04] 예술비평 - 음악 - 양악기로 찾는 우리 선률</title>
      <id>http://marupress.com/17706</id>
      <published>2009-11-02T18:17:01P</published>
      <updated>2009-11-02T18:17:0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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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음악평론가 김형주가 쓴 글이다.&lt;/p&gt;
&lt;p&gt;1976년 2월 11일, 국립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홍연택 상임지휘자) 제14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는데, 이 날은 특히 &apos;한국 작곡가의 밤&apos;이 주제였다.&lt;/p&gt;
&lt;p&gt;&apos;한국 작곡가의 밤&apos;은 이미 1974년부터 해마다 한 번씩 열려 이번이 세 번째 행사였다.&lt;/p&gt;
&lt;p&gt;이날 작곡 발표를 한 작곡가들은 유 신, 나 인용, 백 병동, 김 성태, 이 연국, 한 성석 등의 작곡가가 작품을 선보였다.&lt;/p&gt;
&lt;p&gt;이 글에 이름이 나온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홍연택&lt;/strong&gt;(洪燕澤, &lt;a title=&quot;1928년&quot; href=&quot;/wiki/1928%EB%85%84&quot;&gt;1928년&lt;/a&gt; &lt;a title=&quot;12월 28일&quot; href=&quot;/wiki/12%EC%9B%94_28%EC%9D%BC&quot;&gt;12월 28일&lt;/a&gt;~&lt;a title=&quot;2001년&quot; href=&quot;/wiki/2001%EB%85%84&quot;&gt;2001년&lt;/a&gt; &lt;a title=&quot;5월 17일&quot; href=&quot;/wiki/5%EC%9B%94_17%EC%9D%BC&quot;&gt;5월 17일&lt;/a&gt;)은 &lt;a title=&quot;대한민국&quot; href=&quot;/wiki/%EB%8C%80%ED%95%9C%EB%AF%BC%EA%B5%AD&quot;&gt;대한민국&lt;/a&gt;의 지휘자 겸 작곡가이다. &lt;a title=&quot;황해도&quot; href=&quot;/wiki/%ED%99%A9%ED%95%B4%EB%8F%84&quot;&gt;황해도&lt;/a&gt; &lt;a class=&quot;mw-redirect&quot; title=&quot;은율&quot; href=&quot;/wiki/%EC%9D%80%EC%9C%A8&quot;&gt;은율&lt;/a&gt;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오스트리아 빈 아카데미 음악원에 유학하여 지휘를 공부하였다. 귀국후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국립교향악단(현 &lt;a title=&quot;KBS 교향악단&quot; href=&quot;/wiki/KBS_%EA%B5%90%ED%96%A5%EC%95%85%EB%8B%A8&quot;&gt;KBS 교향악단&lt;/a&gt;)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여러 오페라, 교향곡, 발레 등을 지휘하는 한편, 국내 창작곡 연주에도 힘썼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1980년부터는 학장도 역임하였다. 1985년에 국내 최초의 민간교향악단인 &lt;a title=&quot;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quot; href=&quot;/wiki/%EC%BD%94%EB%A6%AC%EC%95%88_%EC%8B%AC%ED%8F%AC%EB%8B%88_%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quot;&gt;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lt;/a&gt;를 창단하여 초대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작곡가로서는 오페라 &amp;lt;논개&amp;gt;, &amp;lt;시집가는 날&amp;gt; 등을 발표하였다. &amp;lt;위키피디아&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신 (劉信 1918~ )&lt;br  /&gt;본명은 유신종(劉信鍾). 작곡가. 음악평론가. 전남 진도 출생. 1944년 동양음악학교(현 동경음대의 전신)를 졸업하고 음악교사로 있으면서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한성여대 작곡과 교수가 됐으며, 1968년에 첫 작품발표회를 가졌다. 1970년에 부산시 음악문화상을 수상했다. 논문으로 &amp;lt;한국가곡 90년사&amp;gt;, &amp;lt;부산악단 20년사&amp;gt;, &amp;lt;한국국악 30년사&amp;gt; 등이 있다.&lt;br  /&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lt;/p&gt;
&lt;div style=&quot;MARGIN: 20px 0px 0px 14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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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5&quot;&gt;&lt;b&gt;작품목록&lt;/b&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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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vAlign=&quot;top&quot;&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성악곡&lt;br  /&gt;1. 바다 (이주홍 시, 1957년)&lt;br  /&gt;2. 자장가 (1958년)&lt;br  /&gt;3. 국화 옆에서 (서정주 시, 1960년)&lt;br  /&gt;4. 간 (1964년) &lt;br  /&gt;5. 산딸기 (김태홍 시, 1965년)&lt;br  /&gt;6. 잊을래도 (김태홍 시, 1965년)&lt;br  /&gt;7. 떠나가는 배 (박용철 시, 1967년)&lt;br  /&gt;가곡집 &amp;lt;보리피리&amp;gt;(1968년)에 실린 곡&lt;br  /&gt;8. 갯벌 (1972년)&lt;br  /&gt;9. 석류 (1966년)&lt;br  /&gt;10. 바람결 (1968년)&lt;br  /&gt;11. 사랑은 (1972년)&lt;br  /&gt;12. 바람결&lt;br  /&gt;13. 산도화&lt;br  /&gt;14. 애가 (1968년)&lt;br  /&gt;동요곡집 &amp;lt;꽃댕기&amp;gt;(1975년)에 실린 곡&lt;br  /&gt;15. 금바가지 (방정환 시)&lt;br  /&gt;16. 톡톡 할아버지 (이주홍 시)&lt;br  /&gt;17. 하얀 칠판 (조유로 시)&lt;br  /&gt;18. 잠자리 (서정봉 시)&lt;br  /&gt;19. 꽃댕기 (최계락 시)&lt;br  /&gt;이외 26곡 수록&lt;br  /&gt;꽃노래 연가집 &amp;lt;모란이 피기까지는&amp;gt; (월간음악출판부, 1977년) 20여 편이 수록&lt;br  /&gt;20. 강강수월래 (1971년)&lt;br  /&gt;21. 후제 (1957년)&lt;br  /&gt;22. 보리피리 (1963년)&lt;br  /&gt;23. 작약꽃이 필무렵 (1981년)&lt;br  /&gt;24. 개화(開花) 주제에 의한 변주 (합창곡, 1981년)&lt;br  /&gt;&lt;br  /&gt;기악곡&lt;br  /&gt;1. 피아노4중주를 위한 &amp;lt;산조&amp;gt; (1963년)&lt;br  /&gt;2. 현악4중주를 위한 &amp;lt;산조&amp;gt; (1967년)&lt;br  /&gt;3.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선법의 변용 (1967년)&lt;br  /&gt;4.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 (1970년)&lt;br  /&gt;5. 플룻과 피아노를 위한 &amp;lt;소묘&amp;gt; (1972년)&lt;br  /&gt;6. 목관5중주를 위한 &amp;lt;상(像)&amp;gt; (1981년)&lt;br  /&gt;7.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주자를 위한 &amp;lt;대화&amp;gt; (1981년)&lt;br  /&gt;&lt;br  /&gt;전통악기를 위한 곡&lt;br  /&gt;1. 5개의 악기를 위한 &amp;lt;풍류 3장&amp;gt; (1970년)&lt;br  /&gt;2. 국악합주를 위한 &amp;lt;가락&amp;gt; (1971년경)&lt;br  /&gt;3. 관현악을 위한 &amp;lt;고담&amp;gt; (1970년)&lt;br  /&gt;4. 관현악을 위한 산조 &amp;lt;고운(古韻)&amp;gt; (1975년)&lt;br  /&gt;5. 농악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5년)&lt;br  /&gt;&lt;br  /&gt;작곡집&lt;br  /&gt;1. &amp;lt;보리피리&amp;gt; (1968년)&lt;br  /&gt;2. &amp;lt;갯벌&amp;gt; (월간음악출판부, 1973년)&lt;br  /&gt;3. &amp;lt;화랑가&amp;gt; (월간음악출판부, 1973년)&lt;br  /&gt;4. &amp;lt;꽃댕기&amp;gt; (1975년)&lt;br  /&gt;5. &amp;lt;꽃노래 연가집&amp;gt; (월간음악출판부, 1977년)&lt;br  /&gt;&lt;br  /&gt;저서&lt;br  /&gt;1. &amp;lt;국악통론&amp;gt; (세광출판사, 1983년)&lt;br  /&gt;2. &amp;lt;음예술의 새로운 체험&amp;gt; (삼호출판사, 1987년)&lt;br  /&gt;3. &amp;lt;음악감상론&amp;gt; (삼호출판사, 1988년)&lt;br  /&gt;4. &amp;lt;음악연주론&amp;gt; (음악춘추사, 1989년)&lt;br  /&gt;&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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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나인용 (羅仁容 1936~ )&lt;br  /&gt;&lt;br  /&gt;작곡가. 서울 출생.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음협 이사, 20세기작곡연구회장을 역임했다. I.S.C.M회원과 미래악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amp;lt;관현악을 위한 ‘태(太)’&amp;gt; 등 다수의 관현악곡과 실내악곡, 기악독주곡이 있으며 한국전통음악, 합창곡, 교성곡, 성악곡, 종교곡 등 많은 장르의 작품을 썼다. 1977년 한국 피아노작품집 &lt;landscape&gt;, 1985년 연세대학교 창립 100주년 기념 현대음악작품집 &amp;lt;전설&amp;gt;, 1987년 미래악회 창립 10주년 기념음반 &amp;lt;랑&amp;gt;을 출반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 미네소타대학, 풀브라이트재단 초청교수를 지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 현대음악연구소 객원교수, 동서음악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했다.&lt;br  /&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관현악곡&lt;br  /&gt;1. 교향시곡 &amp;lt;한강의 이야기&amp;gt; (1971년)&lt;br  /&gt;2. 관현악을 위한 &amp;lt;향악의 반향&amp;gt; (1972년)&lt;br  /&gt;3. Sinfonia for Orchestra (1976년)&lt;br  /&gt;4. 교향곡 &amp;lt;슈페리어 호수&amp;gt; (1980년)&lt;br  /&gt;5. 한국 광시곡 (1983년)&lt;br  /&gt;6. 현악합주를 위한 &amp;lt;낙동강&amp;gt; (1981년)&lt;br  /&gt;7. Sinfonietta (1983년)&lt;br  /&gt;8. 가야금과 관현악을 위한 &amp;lt;도약&amp;gt; (1985년)&lt;br  /&gt;9. 관현악을 위한 &amp;lt;태(太)&amp;gt; (1991년)&lt;br  /&gt;10. Prelude for String Orchestra (1989년)&lt;br  /&gt;11. 세종찬가 (1991년)&lt;br  /&gt;&lt;br  /&gt;실내악곡&lt;br  /&gt;1. String Quartet No.1 (1967년)&lt;br  /&gt;2. Sonata for Violin &amp;amp; Piano (1973년)&lt;br  /&gt;3. Piano Trio No.1 (1967년)&lt;br  /&gt;4. 소프라노와 3개의 악기를 위한 &amp;lt;수난과 여명&amp;gt; (1967년)&lt;br  /&gt;5. 7개의 악기를 위한 산조 (1970년)&lt;br  /&gt;6. 타악기와 실내악을 위한 즉흥곡 (1971년)&lt;br  /&gt;7. 전자음악과 Flute를 위한 &amp;lt;십자가와 환상&amp;gt; (1972년)&lt;br  /&gt;8. 소프라노와 실내악을 위한 &amp;lt;사야(邪夜)&amp;gt; (1972년)&lt;br  /&gt;9. 가야금, 대금과 실내악을 위한 영명송(靈瞑頌) (1973년)&lt;br  /&gt;10. Chamber Music for 9 Players (1975년)&lt;br  /&gt;11. 소프라노, 플룻과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amp;lt;혼무가(魂舞歌)&amp;gt; (1976년)&lt;br  /&gt;12. 플룻과 바이올린을 위한 대화 (1976년, 예당출판사, 1992년)&lt;br  /&gt;13. String Quartet No.2 (1976년)&lt;br  /&gt;14. 6인의 인성과 실내악을 위한 &amp;lt;청산별곡&amp;gt; (1977년)&lt;br  /&gt;15. Splash for Children (1977년)&lt;br  /&gt;16. Piano Trio No.2 (1978년)&lt;br  /&gt;17. 인성과 실내악을 위한 &amp;lt;몽(夢)&amp;gt; (1978년)&lt;br  /&gt;18. 풍경과 제3번 (1981년)&lt;br  /&gt;19. 플룻, 바순과 3대의 기타를 위한 실내악 (1983년)&lt;br  /&gt;20. 목관5중주 (1990년)&lt;br  /&gt;21. Honza for Baritone, Violin &amp;amp; Piano (1994년)&lt;br  /&gt;&lt;br  /&gt;기악독주곡&lt;br  /&gt;1. 피아노를 위한 &amp;lt;풍경&amp;gt; (1972년)&lt;br  /&gt;2. 풍경 제2번 (1977년)&lt;br  /&gt;3. 첼로를 위한 환상곡 (1977년)&lt;br  /&gt;4. 오르간을 위한 산조 (1979년)&lt;br  /&gt;5. 피아노를 위한 &amp;lt;전설&amp;gt; (1979년)&lt;br  /&gt;6. 오르간을 위한 &amp;lt;오츠크해의 비가&amp;gt; (1983년)&lt;br  /&gt;7. 플룻 독주를 위한 &amp;lt;랑&amp;gt; (1984년)&lt;br  /&gt;8. 클라리넷을 위한 &amp;lt;독백&amp;gt; (1992년)&lt;br  /&gt;&lt;br  /&gt;전통악기를 위한 곡&lt;br  /&gt;1. 가야금을 위한 &amp;lt;영상(影像)&amp;gt; (1977년)&lt;br  /&gt;2. 갸야금을 위한 &amp;lt;용(容)&amp;gt; (1979년)&lt;br  /&gt;3. 가야금을 위한 &amp;lt;산수도(山水圖)&amp;gt; (1984년)&lt;br  /&gt;4. 국악 관현악을 위한 &amp;lt;설(雪)&amp;gt; (1984년)&lt;br  /&gt;5. 대금을 위한 &amp;lt;낙조(落照)&amp;gt; (1994년)&lt;br  /&gt;&lt;br  /&gt;합창곡&lt;br  /&gt;1. 심판의 날 (정영길 시, 1974년)&lt;br  /&gt;2. 가시리 (1978년)&lt;br  /&gt;3. &amp;lt;흥부와 놀부&amp;gt; (여성3부합창, 1980년)&lt;br  /&gt;4. &amp;lt;설악산&amp;gt; (혼성4부합창, 유경환 시, 1983년)&lt;br  /&gt;5. &amp;lt;고려청자&amp;gt; (혼성4부합창, 유경환 시, 1984년)&lt;br  /&gt;6. &amp;lt;고향&amp;gt; (여성3부합창, 최문자 시, 1987년)&lt;br  /&gt;7. &amp;lt;청산별곡&amp;gt; (혼성4부합창, 1994년)&lt;br  /&gt;&lt;br  /&gt;교성곡&lt;br  /&gt;1. 아세아의 눈부신 아침 (구상 시, 1986년)&lt;br  /&gt;2. 베드로의 고백 (최문자 시)&lt;br  /&gt;&lt;br  /&gt;가곡&lt;br  /&gt;1. 님의 노래 (김소월 시, 1962년)&lt;br  /&gt;2. 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 서서 (박화목 시, 1973년)&lt;br  /&gt;3. 마음 (김광협 시, 1974년)&lt;br  /&gt;4. 임진강의 민들레 (유경환 시, 1981년)&lt;br  /&gt;&lt;br  /&gt;성가&lt;br  /&gt;1. 별들이 반짝이는 곳 (1978년)&lt;br  /&gt;2. 여호와 의지하라 (1978년)&lt;br  /&gt;3. 마음이 가난한 사람 (1979년)&lt;br  /&gt;4. 먼 길 가까이 가겠네 (유경환 시, 1980년)&lt;br  /&gt;5. 호산나 (1980년)&lt;br  /&gt;6. 주의 날 (박설봉 시, 1982년)&lt;br  /&gt;7. 인류는 하나되게 (1983년)&lt;br  /&gt;8. Missa (1984년) &lt;br  /&gt;1) Kyrie, 2) Gloria, 3) Credo, 4) Santus, 5) Agnus Dei&lt;br  /&gt;9. 십자가의 길 (유준경 시, 1985년)&lt;br  /&gt;10. 시편 130편 (1993년)&lt;br  /&gt;&lt;br  /&gt;작곡집&lt;br  /&gt;1. 피아노 작품집 &lt;landscape&gt;(1977년)&lt;br  /&gt;2. 현대음악작품집 &amp;lt;전설&amp;gt; (1985년)&lt;br  /&gt;&lt;br  /&gt;음반목록&lt;br  /&gt;1. 미래악회 창립 10주년 기념음반 &amp;lt;랑&amp;gt; (1987년)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김성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김성태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어릴 때에 서양음악을 교회에서 접했다. 그는 18세(1927, 경신중학교 2년)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일본으로 편입학하여 일본 교토 양양중학교를 졸업했다(1930~1931). 한국으로 돌아와 잠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축구 특기자로 다니면서 현제명과 채동선에게 작곡을 배웠는데 현제명과의 만남은 두 사람이 거의 인생의 동반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성태는 동경고등음악학교(현 구니다치음악대학)에 입학하여 작곡을 공부하였고, 1935년에 졸업했다. 귀국한 그는 경성보육학교 합창단 상임지휘자(1939~1945)와 보성전문학교 음악강사로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만주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하여 당시 영화 &amp;lt;사랑과 원수&amp;gt;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 채동선이 설립한 고려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1945~1946)로 지내면서 현제명이 설립한 경성음악학교에서 가르쳤다. 경성음악학교가 서울대학으로 편입된 1946년부터 정년이 된 1976년까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지냈다. 이 학교에서 그는 장기간 학장직을 맡았다. 1955년부터 1956년의 일 년간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작곡을 공부, 1969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위원(1971), 예술원장(1993), 주식회사 예음 대표이사(1984)를 지냈다. &lt;br  /&gt;김성태는 화려하고 기나긴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매우 적다. 또한 뛰어나거나 대단한 크기의 작품도 없다. 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조성을 바탕으로 한다. 대중적인 &amp;lt;이별의 노래&amp;gt;와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또한 한국 민요를 바탕으로 한 기악곡 역시 기본적 장단조 화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실험적인 가곡에서는 약간의 조심스러운 모험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일정한 작곡 시스템에 이르지 못했다. 김성태는 당대 세대의 작곡가들이 보여준 서양음악의 수용, 한국 전통음악과의 융합, 약간의 현대성을 보여준다. &lt;br  /&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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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1935년 연희전문학교 상과 졸업&lt;br  /&gt;1939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작곡부 졸업&lt;br  /&gt;1946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lt;br  /&gt;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lt;br  /&gt;1956년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 대학원 수학&lt;br  /&gt;1969년 연세대학교 명예문학박사&lt;br  /&gt;1971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위원&lt;br  /&gt;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lt;br  /&gt;1976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lt;br  /&gt;1976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위원&lt;br  /&gt;1983년 주식회사 예음 대표이사 겸 회장&lt;br  /&gt;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lt;br  /&gt;1993년 예음문화재단, 월간&amp;lt;객석&amp;gt; 발행인 겸 편집인&lt;br  /&gt;1997년 예음문화재단 고문&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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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1962년 문화훈장 모란장&lt;br  /&gt;1964년 대한민국예술원상&lt;br  /&gt;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lt;br  /&gt;1981년 3·1 문화상&lt;br  /&gt;1985년 5·16 민족상&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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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5&quot;&gt;&lt;b&gt;저서 및 역서&lt;/b&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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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lt;20세기 화성법&amp;gt;, Ⅴ. 퍼시켓티 외, 김성태 역, 1965&lt;br  /&gt;&amp;lt;화성법&amp;gt;, 김성태, 1971&lt;br  /&gt;&lt;br  /&gt;* 논문&lt;br  /&gt;&amp;lt;한국정신음악 신창악&amp;gt;(1992)&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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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lt;말&amp;gt;(정지용 시, 1937)&lt;br  /&gt;&amp;lt;바다3&amp;gt;(정지용 시, 1937)&lt;br  /&gt;&amp;lt;산너머 저쪽&amp;gt;(정지용 시, 1937)&lt;br  /&gt;&amp;lt;호면(湖面)&amp;gt;(정지용 시, 1937)&lt;br  /&gt;&amp;lt;소곡(小曲)&amp;gt;(양주동 시, 1938)&lt;br  /&gt;&amp;lt;오케스트라를 위한 ‘코리안 카프리치오’&amp;gt;(1944)&lt;br  /&gt;&amp;lt;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조곡&amp;gt;(1955)&lt;br  /&gt;&amp;lt;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amp;gt;(1971)&lt;br  /&gt;&amp;lt;김성태 가곡집&amp;gt;(1991)&lt;br  /&gt;칸타타 &amp;lt;비바람속에&amp;gt;(모윤숙 시, 1958)&lt;br  /&gt;축전 칸타타 &amp;lt;빛나라 내 조국&amp;gt;(이은상 시, 1978) &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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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이연국 (李演國 1931~1993)&lt;br  /&gt;&lt;br  /&gt;작곡가. 서울 출생. 경희대 음대 작곡과를 나와 일본 세족(洗足)학원대학 작곡과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음대 교수를 지냈다. 가곡집으로 &amp;lt;애모&amp;gt;가 있다.&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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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가곡&lt;br  /&gt;가곡집 &amp;lt;애모&amp;gt; (수문당, 1977년)에 실린 곡&lt;br  /&gt;1. 예전에 (김소월 시)&lt;br  /&gt;2. 달맞이 (김소월 시)&lt;br  /&gt;3. 애모 (김소월 시)&lt;br  /&gt;4. 윤사월 (박목월 시)&lt;br  /&gt;5. 산유화 (김소월 시)&lt;br  /&gt;6. 금잔디 (김소월 시)&lt;br  /&gt;7. 못잊어 (김소월 시)&lt;br  /&gt;8. 설음의 덩이 (김소월 시)&lt;br  /&gt;9. 편편화심(片片花心) (조병화 시)&lt;br  /&gt;10. 노래를 불러도 (조병화 시)&lt;br  /&gt;11. 상여 (이보흥 시)&lt;br  /&gt;12. 풀잎 (강은교 시)&lt;br  /&gt;13. 회귀 (강은교 시)&lt;br  /&gt;14. 성모송&lt;br  /&gt;15. 회귀 (합창곡, 1975년)&lt;br  /&gt;&lt;br  /&gt;기악곡&lt;br  /&gt;1. 교향곡 1번 (1969년)&lt;br  /&gt;2. 관과 타악기를 위한 카프리치오 (1970년)&lt;br  /&gt;3.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amp;lt;향시(鄕詩)&amp;gt; (1970년)&lt;br  /&gt;4. 현악4중주 5번 (1970년)&lt;br  /&gt;5.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amp;lt;세 가지 단상&amp;gt; (1971년)&lt;br  /&gt;6. 세악(細樂) 1번 (1972년)&lt;br  /&gt;7. 아홉 악기를 위한 &amp;lt;위상&amp;gt; (1973년, 예당, 1992년)&lt;br  /&gt;8.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대화 (1974년)&lt;br  /&gt;9. 피아노를 위한 &amp;lt;영상 I&amp;gt; (1975년)&lt;br  /&gt;10. 세악(細樂) 5번 (1975년)&lt;br  /&gt;11. 캐논(Canon) (1977년)&lt;br  /&gt;12. 무반주 첼로를 위한 &amp;lt;무언가&amp;gt; (1976년)&lt;br  /&gt;13. 세악(細樂) 6번 (1977년)&lt;br  /&gt;14. 피아노를 위한 &amp;lt;여운 II&amp;gt; (성음, 1982년)&lt;br  /&gt;15. 플룻과 피아노를 위한 &amp;lt;새야 새야&amp;gt; (예당, 1992년)&lt;br  /&gt;16. 3인의 주자를 위한 &amp;lt;음악&amp;gt; (1988년)&lt;br  /&gt;&lt;br  /&gt;작곡집&lt;br  /&gt;1. &amp;lt;애모&amp;gt; (수문당, 1977년)&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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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한성석 (韓聖錫 1928~ )&lt;br  /&gt;&lt;br  /&gt;작곡가. 강원도 춘성군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3년을 수료했고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8ㆍ1959년 문교부 주최 제6ㆍ7회 전국음악경연대회 작곡부문에서 입선하였고, 1969년에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김세형에게 지도받고 1971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춘천에서 은하수 합창단, 서울실내합주단을 조직하고 지휘자로 활약하였고, &amp;lt;자장가&amp;gt;(1959년), &amp;lt;달&amp;gt;ㆍ&amp;lt;동백꽃&amp;gt;(1961년), &amp;lt;산수유&amp;gt;ㆍ&amp;lt;등잔&amp;gt;ㆍ&amp;lt;못잊어&amp;gt;(1967년) 등의 가곡을 작곡했다. 1969년 가곡집 &amp;lt;달과 꽃이야기&amp;gt;를 펴냈다. 1960년 제2회 강원도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음협 강원도지부장을 지냈다. 1970년 &amp;lt;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소나타&amp;gt;, &amp;lt;피아노를 위한 소품&amp;gt;, &amp;lt;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amp;gt;, &amp;lt;현악4중주 제2번&amp;gt;을 발표하였고, 현재 경희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lt;br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String End --&gt;&lt;!-- String Star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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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5&quot;&gt;&lt;b&gt;작품목록&lt;/b&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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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성악곡&lt;br  /&gt;1. 칸타타 &amp;lt;오고사(五高士)&amp;gt; (1958년)&lt;br  /&gt;2. 두 개의 서정 가곡 (1973년)&lt;br  /&gt;3. 합창곡 &amp;lt;오늘&amp;gt; (1975년)&lt;br  /&gt;&lt;br  /&gt;기악곡&lt;br  /&gt;1. 첼로 소나타 (1959년)&lt;br  /&gt;2. Piece Music for Pianoforte (1965년)&lt;br  /&gt;3. 교향곡 제2번 (1970년경)&lt;br  /&gt;4. String Quartet No.2 (1970년)&lt;br  /&gt;5. Sonata for Violin &amp;amp; Piano (1970년)&lt;br  /&gt;6. 현악을 위한 &amp;lt;낭독&amp;gt; (1973년)&lt;br  /&gt;7. &lt;berceuse&gt;for Cello &amp;amp; Orch. (1974년)&lt;br  /&gt;8. 무반주 첼로를 위한 &amp;lt;가락&amp;gt; (수문당출판사, 1974년)&lt;br  /&gt;9. 피아노곡 &amp;lt;표상&amp;gt; (1974년)&lt;br  /&gt;10.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amp;lt;속요(俗謠)&amp;gt; (1975년)&lt;br  /&gt;11.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amp;lt;가락&amp;gt; (수문당출판사, 1976년)&lt;br  /&gt;&lt;br  /&gt;작곡집&lt;br  /&gt;1. &amp;lt;달과 꽃의 이야기&amp;gt; (음악예술사, 1969년)&lt;br  /&gt;2. &amp;lt;표상&amp;gt; (월간음악출판부, 1975년)&lt;br  /&gt;3. &amp;lt;연주회용 합창곡집 I&amp;gt; (편곡집, 1975년)&lt;br  /&gt;4. &amp;lt;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가락’&amp;gt; (수문당, 1976년)&lt;br  /&gt;5. &amp;lt;무반주 첼로를 위한 ‘가락’&amp;gt; (수문당, 1978년)&lt;br  /&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백병동 (白秉東 1936~ )&lt;br  /&gt;&lt;br  /&gt;작곡가. 만주 적봉 출생. 1942년 황해도로 왔고 6ㆍ25때 전북 진안으로 옮겼다. 1955년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 김성태와 정희갑을 사사했으며, 재학 시절이던 1960년 제1회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1961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1962년 &amp;lt;교향적 3장&amp;gt;으로 공보부 주최 ‘제1회 신인예술상’을 수상했다. 196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경동고등학교와 서울여상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1963년과 1966년 두 차례의 개인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amp;lt;피아노를 위한 고전조곡&amp;gt;, &amp;lt;현악4중주 1번&amp;gt;, &amp;lt;첼로 협주곡&amp;gt; 등이 있다. 1969년 독일 하노버국립음대(Staatliche Hochschule fuer Musik Hannover)에서 수학했다. 하노버에서 윤이상을 사사했고, 1971년 귀국했다.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에 재직했고 1979년부터 서울대 음대에 재직했다. 1970년 독일 유학 때 쓰기 시작한 1970년대 ‘운(調)’ 시리즈가 독주악기를 위한 작품들로 1970년대를 장식했고, 총체예술적 관심을 표출한 &amp;lt;실내&amp;gt;(1973), &amp;lt;변용&amp;gt;(1974), &amp;lt;진혼&amp;gt;(1974) 등의 대표작이 이 때 쓰여졌다. 1980년대에 들어 일본, 암스테르담, 러시아, 미국, 헝가리, 독일 등지에서 활발하게 연주되었으며. 관현악을 위한 &amp;lt;산수도&amp;gt;(1983), 피아노를 위한 &amp;lt;소나테 소노르&amp;gt;(1985), &amp;lt;별곡 ’87&amp;gt;(1987), 마림바와 두 타악기 주자를 위한 &amp;lt;콘트라&amp;gt;(1988)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1990년대에 들어 어느 때보다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쉬운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일본음악집단이 위촉하여 1995년 11월 17일에 초연된 일본악기를 위한 &amp;lt;시나위&amp;gt;가 있다. 1975년 월간음악상을, 1977년 &amp;lt;제2현악사중주&amp;gt;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 무용제 음악상(1982), 서울시 문화상(1983), 대한민국 작곡상(1990), 영창음악상(1993) 등을 수상했다.&lt;br  /&gt;&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text_mar10&quot;&gt;관현악과 현악앙상블&lt;br  /&gt;1. 교향곡 3장 (1962년)&lt;br  /&gt;2. &amp;lt;침체된 음향&amp;gt; (1962년)&lt;br  /&gt;3. 목관과 현올 위한 조곡 (1963년)&lt;br  /&gt;4.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amp;lt;진여(眞如)&amp;gt; (1969년)&lt;br  /&gt;5. 관현악을 위한 &amp;lt;정취&amp;gt; (1971년)&lt;br  /&gt;6. 83주자를 위한 &amp;lt;변용&amp;gt; (1974년)&lt;br  /&gt;7. 3개의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amp;lt;진혼&amp;gt; (1974년)&lt;br  /&gt;8. 관현악을 위한 &amp;lt;아비스&amp;gt; (1978년)&lt;br  /&gt;9. 2개의 혼과 현악합주를 위한 &amp;lt;추흥사(秋興詞)&amp;gt; (1981년)&lt;br  /&gt;10. 현악합주를 위한 &amp;lt;여울목&amp;gt; (1982년)&lt;br  /&gt;11. 관현악을 위한 &amp;lt;산수도&amp;gt; (1983년)&lt;br  /&gt;12. 비올라와 캄머앙상블을 위한 &amp;lt;파사칼리아&amp;gt; (1983년)&lt;br  /&gt;13. 관현악을 위한 &amp;lt;포구&amp;gt; (1986년)&lt;br  /&gt;14. 관현악을 위한 &amp;lt;9월에&amp;gt; (1987년)&lt;br  /&gt;15. 관현악을 위한 &amp;lt;진혼&amp;gt; (1992년)&lt;br  /&gt;&lt;br  /&gt;협주곡&lt;br  /&gt;1. 첼로협주곡 ’69 (1969년)&lt;br  /&gt;2. 비올라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2년)&lt;br  /&gt;3.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4년)&lt;br  /&gt;&lt;br  /&gt;실내악&lt;br  /&gt;1. 바이올린 소나타 (1960년)&lt;br  /&gt;2. 피아노 트리오 (1960년)&lt;br  /&gt;3. 첼로 소나타 (1962년)&lt;br  /&gt;4. 현악 4중주 1번 (1963년)&lt;br  /&gt;5. 콘트라스트 (1964년)&lt;br  /&gt;6. 첼로 소나타 2번 (1966년)&lt;br  /&gt;7. 3주자를 위한 &amp;lt;세엽(細葉)&amp;gt; (1971년)&lt;br  /&gt;8. 7주자를 위한 &amp;lt;에스하배&amp;gt; (1972년)&lt;br  /&gt;9. 실내(室內) (1973년)&lt;br  /&gt;10. 목관 5중주곡 (1975년)&lt;br  /&gt;11. 제2 현악4중주 (1977년)&lt;br  /&gt;12. 7악기를 위한 고전조곡 (1977년)&lt;br  /&gt;13.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amp;lt;에피그람&amp;gt; (1978년)&lt;br  /&gt;14. 인성(여성)과 더블베이스를 위한 &amp;lt;프롤로그와 에필로그&amp;gt; (1978년)&lt;br  /&gt;15. 5악기를 위한 &amp;lt;시나위&amp;gt; (1979년)&lt;br  /&gt;16.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amp;lt;파사칼리아&amp;gt; (1979년)&lt;br  /&gt;17. 플루트, 기타, 첼로를 위한 &amp;lt;소리&amp;gt; (1981년)&lt;br  /&gt;18. 피아노 트리오 (1985년)&lt;br  /&gt;19. 플루트, 클라리넷, 기타, 비올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amp;lt;명(莫)&amp;gt; (1987년)&lt;br  /&gt;20.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amp;lt;별곡(別曲) &apos;87&amp;gt; (1987년)&lt;br  /&gt;21. 제2실내협주곡 (1988년)&lt;br  /&gt;&lt;br  /&gt;기악곡&lt;br  /&gt;1. 어린이를 위한 조곡 (1957년)&lt;br  /&gt;2. 송해섭 주제에 의한 7변주곡 (1959년)&lt;br  /&gt;3. 피아노 소나타 (1960년)&lt;br  /&gt;4. 12음과 세 조각의 단상 (1961년)&lt;br  /&gt;5. 피아노를 위한 &amp;lt;세 개의 소묘&amp;gt; (1961년)&lt;br  /&gt;6. 서정 주제에 의한 패러프레이즈 (1963년)&lt;br  /&gt;7. 고전 조곡 (1963년)&lt;br  /&gt;8. 오보에를 위한 &amp;lt;운(題)-I&amp;gt; (1970년)&lt;br  /&gt;9. 피아노를 위한 &amp;lt;운(題)-II&amp;gt; (1972년)&lt;br  /&gt;10. 하프를 위한 &amp;lt;운(銀)-III&amp;gt; (1973년)&lt;br  /&gt;11. 두 대의 하프를 위한 &amp;lt;방황&amp;gt; (1973년)&lt;br  /&gt;12.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바가텔 (1973년)&lt;br  /&gt;13. 무반주 첼로를 위한 4개의 소품 (1975년)&lt;br  /&gt;14. 피아노를 위한 &amp;lt;선에 관한 각서&amp;gt; (1978년)&lt;br  /&gt;15. 피아노를 위한&amp;lt;연계&amp;gt; (1978년)&lt;br  /&gt;16. 바이올린을 위한 &amp;lt;운(題)-IV&amp;gt; (1978년)&lt;br  /&gt;17. 트롬본과 현을 위한 &amp;lt;운(銀)-V&amp;gt; (1979년)&lt;br  /&gt;18. &amp;lt;조그마한 밤의 노래&amp;gt; (1979년)&lt;br  /&gt;19.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amp;lt;운(諸)-VI (1981년)&lt;br  /&gt;20. 4손을 위한 &amp;lt;선에 관한 각서&amp;gt; (1982년)&lt;br  /&gt;21. 1인의 플루트 주자를 위한 &amp;lt;3부작&amp;gt; (1982년)&lt;br  /&gt;22. 2대의 기타를 위한 &amp;lt;기타리아나&amp;gt; (1984년)&lt;br  /&gt;23. &amp;lt;소나테 소노르&amp;gt; (1985년)&lt;br  /&gt;24. &amp;lt;콘트라&amp;gt; (1988년)&lt;br  /&gt;25. 쳄발로를 위한 3개의 바가텔 (1988년)&lt;br  /&gt;26.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5개의 조곡 (1989년)&lt;br  /&gt;27. 기타를 위한 &amp;lt;담즙(淡汁)&amp;gt; (1990년)&lt;br  /&gt;28.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1990년)&lt;br  /&gt;&lt;br  /&gt;가곡&lt;br  /&gt;1. 늪 (조병화 시, 1957년)&lt;br  /&gt;2. 동백꽃 (이수복 시, 1957년)&lt;br  /&gt;3 창 (김신자 시, 1960년)&lt;br  /&gt;4. 푸른 묘비들이여 (주소천 시, 1960년)&lt;br  /&gt;5.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시, 1960년)&lt;br  /&gt;6. 기분 전환 (김소월 시, 1960년)&lt;br  /&gt;7. 연정 (안정현 시, 1960년)&lt;br  /&gt;8. 소라 (조병화 시, 1961년)&lt;br  /&gt;9. 남으로 창을 내겠오 (김상용 시, 1961년)&lt;br  /&gt;10. 자장가 (임종복 시, 1961년)&lt;br  /&gt;11. 빠알간 석류 (나재인 시, 1962년)&lt;br  /&gt;12. 나그네 (박목월 시, 1964년)&lt;br  /&gt;13. 마을 (조지훈 시, 1964년)&lt;br  /&gt;14. 빈약한 올훼의 초상 (1966년)&lt;br  /&gt;15. 삼매 (유태환 시, 1966년)&lt;br  /&gt;16. 화장장에서 (장건모 시, 1968년)&lt;br  /&gt;17. 강강술래 (이동주 시, 1968년)&lt;br  /&gt;18. 어둠과 시간과 (이종학 시, 1968년)&lt;br  /&gt;19. 아리랑 (김기분 시, 1968년)&lt;br  /&gt;20. 진혼가 (천상병 시, 1973년)&lt;br  /&gt;21. 플루트와 소프라노를 위한 아침 (성미혜 시, 1973년)&lt;br  /&gt;22. 곡！ 신동엽 (천상병 시, 1973년)&lt;br  /&gt;23. 3개의 플루트와 소프라노를 위 한 아침 (1975년)&lt;br  /&gt;24. 자주 구름 (김소월 시, 1976년)&lt;br  /&gt;25. 추억 (조병화 시, 1987년)&lt;br  /&gt;26. 삼매 (1987년)&lt;br  /&gt;27. 바다와 나비 (1988년)&lt;br  /&gt;28. 귀천 (1993년)&lt;br  /&gt;29. 물수제비 (1994년)&lt;br  /&gt;&lt;br  /&gt;합창&lt;br  /&gt;1. 대사 더듬기 (1975년)&lt;br  /&gt;2. 밤의 강 (1976년)&lt;br  /&gt;&lt;br  /&gt;전통악기를 위한 곡&lt;br  /&gt;1. 가야금위한 &amp;lt;실내음악&amp;gt; (1965년)&lt;br  /&gt;2. 가야금과 여섯 악기를 위한 &amp;lt;실내음악 2번&amp;gt; (1972년)&lt;br  /&gt;3. 가야금을 위한 &amp;lt;신별곡&amp;gt; (1972년)&lt;br  /&gt;4. &amp;lt;명(冥)&amp;gt; (1975년)&lt;br  /&gt;5. &amp;lt;운락(韻樂)&amp;gt; (1976년)&lt;br  /&gt;6. 국악합주를 위한 &amp;lt;대사(對斜)&amp;gt; (1977년)&lt;br  /&gt;7. 대금과 양금을 위한 &amp;lt;대사－Ⅱ&amp;gt; (1978년)&lt;br  /&gt;8. &amp;lt;사라진 영을 위하여&amp;gt; (1983년)&lt;br  /&gt;9.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amp;lt;가요삼재&amp;gt; (1985)&lt;br  /&gt;10. &amp;lt;환명(還冥)&amp;gt; (1988년)&lt;br  /&gt;11. 가야금 3중주 &amp;lt;담즙(淡汁) &apos;92&amp;gt; (1992년)&lt;br  /&gt;12. 대금 5중주 &amp;lt;사잇소리&amp;gt; (1994년)&lt;br  /&gt;13. 일본악기를 위한 &amp;lt;시나위&amp;gt; (1995년) (쯔다홀 프로 무지카 니폰(Pro Musica Nippon) 140회 기념 위촉 작품, 일본 음악집단 연주)&lt;br  /&gt;&lt;br  /&gt;무용음악&lt;br  /&gt;1. &amp;lt;춘향전&amp;gt; (1972년)&lt;br  /&gt;2. &amp;lt;덫&amp;gt; (1978년)&lt;br  /&gt;3. &amp;lt;창살에 비친 3개의 그림&amp;gt; (1980년)&lt;br  /&gt;4. &amp;lt;징깽맨의 편지&amp;gt; (1981년)&lt;br  /&gt;&lt;br  /&gt;극음악&lt;br  /&gt;1. &amp;lt;노비문서&amp;gt; (1973년)&lt;br  /&gt;2. &amp;lt;이화부부&amp;gt; (1977년)&lt;br  /&gt;3. &amp;lt;신화 1900&amp;gt; (1982년)&lt;br  /&gt;&lt;br  /&gt;오페레타&lt;br  /&gt;1. &amp;lt;석가탑&amp;gt; (1967년)&lt;br  /&gt;&lt;br  /&gt;어린이를 위한 음악극&lt;br  /&gt;1. &amp;lt;파란풍선&amp;gt; (1977년)&lt;br  /&gt;&lt;br  /&gt;교성곡&lt;br  /&gt;1. &amp;lt;산하여! 아침이여!&amp;gt; (1984년)&lt;br  /&gt;2. &amp;lt;육이오&amp;gt; (1990년)&lt;br  /&gt;&lt;br  /&gt;오페라&lt;br  /&gt;1. &amp;lt;이화부부&amp;gt; (1986년)&lt;br  /&gt;&lt;br  /&gt;작품집&lt;br  /&gt;1. &amp;lt;운 2&amp;gt; (1977년)&lt;br  /&gt;2. &amp;lt;제2 현악 4중주곡&amp;gt; (1977년)&lt;br  /&gt;3. &amp;lt;조그마한 밤의 노래&amp;gt; (1981년)&lt;br  /&gt;4. &amp;lt;플루트, 기타, 그리고 첼로를 위한 ‘소리’&amp;gt; (1984년)&lt;br  /&gt;5. &amp;lt;소나타 소노르&amp;gt; (1986년)&lt;br  /&gt;6. &amp;lt;선에 대한 각서&amp;gt; (1986년)&lt;br  /&gt;7. &amp;lt;별곡 87&amp;gt; (1987년)&lt;br  /&gt;8. &amp;lt;두 대의 기타를 위한 ‘기타리아나’&amp;gt; (1988년)&lt;br  /&gt;9. &amp;lt;쳄발로를 위한 ‘세 개의 바가텔’&amp;gt; (1989년)&lt;br  /&gt;10. 피아노 음악 &amp;lt;고전 모음곡&amp;gt;&lt;br  /&gt;11. &amp;lt;송해섭 주제에 의한 7 변주곡&amp;gt;&lt;br  /&gt;12. &amp;lt;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묘&amp;gt;&lt;br  /&gt;13. &amp;lt;연계&amp;gt;&lt;br  /&gt;&lt;br  /&gt;저서&lt;br  /&gt;1. &amp;lt;음악이론&amp;gt; (현대악보사, 1985년)&lt;br  /&gt;2. &amp;lt;교양의 음악&amp;gt; (지학사, 1985년)&lt;br  /&gt;&lt;br  /&gt;출처 :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포털 예술로&lt;/div&gt;&lt;/berceuse&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landscape&gt;&lt;/div&gt;&lt;/landscape&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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