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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마루프레스 운영자가 [뿌리깊은나무]를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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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 병섭

예술에서 외설의 한계를 말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문학과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장면을 두고 정부 당국이 외설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 예로 로오렌스의 작품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이 법정에 갔을 때, 그 판사가 내린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했다.

외설의 여부는 책 전체나 그 가운데 어떤 귀절이 어느 개인 또는 사회의 상당한 부분의 취미를 그르치거나 그 감정을 놀라게 또는 거슬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는 않다. 또한 사회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코늣탄트 차탈레이의 도덕을 승인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지도 않다. ...다만 책이 씌어지고 작가의 주제와 사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나타나는, 작가의 의도의 성실성이야말로 그 작품이 문학적인 가치와 지적인 가치를 가지느냐의 여부를 가름하는 중대한 실마리가 될 따름이다.

판사의 판결은 참으로 상식이다. 문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들만의 잣대로 예술을 재단하는데, 그 잣대는 바로 '통제'와 '억압'이기 쉽상이다.

이 글에서 인용된 작품들은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 <반노>, <장미와 들개>, <마음은 언제나 태양>, <빠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침묵>, <율리시즈>, <이지 라이더>와 같은 작품들이다. 국내 영화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몇 몇 작품은 지금 다시 봐도 감동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