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분제 유감

 

 

 

 

박순백 <소프트 월드>지 컬럼니스트

 

 

PC 통신의 중요성과 우리의 통신 수준

 

드디어 우리 나라도 컴퓨터 이용의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는 PC 통신 시대로 접어들었다. PC 통신(이하 통신)의 꽃이라 불리우는 전자 게시판(BBS:Bulletin Board System)의 수가 89년 12월 초의 집계로 100개를 넘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88년 5월까지 The First와 바이트-네트의 2개의 전자게시판 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89년 6월까지 다중 노드(nod: 회선을 지칭)의 엠팔 게시판을 비롯한 7개의 정도의 숫자로 불어났다가 10월 중에 70여개로, 11월 초에는 90여개로, 그러다가 12월에 이르러 100여개로 다시 늘어난 것이다. 컴퓨터 선진국인 미국이 89년 현재 10,000여개, 일본이 1,000여개의 전자 게시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아직 숫적으로는 적지만 이같은 빠른 발전적 변화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것이다. 작년 말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30,000명 이상이 통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그들의 수는 보기에 따라서 적다고 할 수도 있고, 무척 많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것도 감격할만큼 많은 숫자로 여겨진다. 그래도 컴퓨터에 있어서는 내노라하면서 의견지도자(opinion leader)의 역할을 하던 사람들 일부만 통신의 세계에 뛰어들어 외로움을 느껴오던 바인데, 벌써 30,000명이라니? 이건 기절할만큼 많은 숫자가 아닌가? 아직 컴퓨터의 보급조차 만족할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실정에서 컴퓨터의 의견지도자로 클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그 정도로 많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

작년 11월 초에 일본의 네트워커들이 "한일 PC 통신 세미나"에 참석키 위하여 서울에 왔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네트워커로서 네트워킹 디자인 연구소장인 이주미(A. Izumi) 씨가 필자의 집에 민박을 하게 되어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눌 있었는데, 그의 평가에 이르면 한국의 통신 수준도 가히 세계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통신에 있어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으리라는 선입감을 가지고 이 땅을 밟았는데 실제의 사정은 전혀 다르더라고 했다. 양적인 면에서는 한국이 몇 년전의 일본 수준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질적인 수준에 있어서는 두 나라가 실로 대등한 수준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와 얘기를 하면서 작년 8월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일시 귀국한 유학생이 제닉스(XENIX)를 기반으로 다중 노드로 운영되는 엠팔 게시판을 방문하여 감격스러워 하던 모습도 생각이 났다. 미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다중 노드의 전자 게시판을 보는 것은 물론 거기서 한글 통신이 이루어지리라곤 꿈도 못꿨다는 그는 미국인의 눈으로 한국을 보다가 다시 한국인으로 돌아온 경우였다(미국에서는 대부분 단독 사용자용인 PC-Board와 RBBS-PC 프로그램을 위주로 해서 전자 게시판이 운영되고, 여러 개의 전화회선을 가진 수퍼 노드들도 대부분 랜(LAN)으로 묶여 운용되고 있다. 카이넷(Chinet)이나 XBBS 등의 다중 사용자용 전자 게시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열악성과 내재한 많은 버그들 때문에 이것은 잘 활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전자 게시판을 통한 통신 동이 최초의 상용 PC인 애플 컴퓨터가 나타난지 2년만인 78년도부터 전자 게시판의 원조인 CBBS(Computer BBS)를 필두로 시작되었는데, 이에 비해 우리의 통신 운동은 매우 늦게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퍽 다행스럽고, 그것이 폭발적인 인기리에 증가한 것은 천행으로 여겨진다. 이는 우리가 이제는 컴퓨터 보급초기의 단순이용 단계를 벗어났음을 의미하고 있다. 보통 통신은 단순이용 단계를 벗어나서 보다 나은 지식, 혹은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그리고 그 사에 어느 정도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되었을 때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결국 통신을통한 대화는 나날이 발전하는 컴퓨터 세계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을 급속도로 보편화시키는 매개체의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매체는 온라인 상에서의 질문과 답변은 물론 각종의 사용자 프로그램(utilities)을 신속하게 전파시켜 주기 때문에 필수적인 정보의 확산 속도가 놀랍게 빠르기에 수많은 탁상공론식의 정책만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실로 효과적인 일들을 할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다보면 별 것 아닌 문제로 벽에 부딪히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 문제를 이미 겪고, 해결책을 발견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간단하게 여겨지는 문제라 할지라도 처음으로 그런 문제에 맞닥뜨린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억지로 그것을 해결하고 넘어가면 그와는 수준이 다른 또하나의 벽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일을 많이 겪다보면 상당한 도전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컴퓨터 학습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벽을 넘을 수있는 방법을 가리켜 우리는 컴퓨터 사용의 팁(tip)이라고 한다. 이런 팁들은 어떤 문헌에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혹간 어떤 서적에서, 혹은 컴퓨터 잡지들을 통하여 이런 팁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자신이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팁을 찾아내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서적에 담긴 지식들은 실제로 컴퓨터를 이용하다가 맞닥뜨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거의 무력하다고 하겠다. 전자게시판은 편지와 포럼(forum) 등을 통하여 이런 실제적인 경험상의 지식을 전달하는데 극히 효과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통신은 집안에 처박혀 컴퓨터만 붙들고 지내면서 해커(hacker)화 함으로써 부모나 컴퓨터 과부가 된 배우자의 걱정을 사고, 사회생활의 이단자로 소외되어 가던 컴퓨터쟁이들을 고립화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재인간화 시켜주는 중요한 사회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가 비인간화의 도구라는 말은 단순이용 단계에 이르기 까지는 진실이지만 통신의 단계에 이르면 전혀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어렵게 조성한 분위기

 

89년은 통신의 불이 당겨진 해라는 점에서 우리 나라 PC 통신의 원년이라고 할수 있다. 한글 통신에 관한 관심은 수년전부터 있어왔지만 통신용 프로그램, 모뎀, 컴퓨터, 그리고 통신 마인드(mind)의 보급이라는 4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해는 바로 작년이었던 것이다. 이건 차라리 열기가 아니라 '광기'였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되어 감히 달려들지 못하던 통신의 벽을 우리는 단 한 해만에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한국인의 저력(a potential from nowhere)이 또 한번 발휘된 한 해이기도 했다. 아주 특이한 현상은 그 모든 것이 힘을 가진 관의 주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초(grassroots)의 힘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남의 나라에서는 관이 도와줘도 잘 안되는 일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이루어졌으니 이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 있어서 정말 자연적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저절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한 꺼을 벗겨보면 그 안에 담긴 여러 사람들의 희생적인 노력이 숨어있음을 쉽게 게된다. 통신이 뭔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강연을 하고, 글을 썼던 사람들, 1년내내 통신을 특집으로 다루다시피했던 컴퓨터 잡지의 관계자들, 통신용 프로그램을 애써 만들고 이를 무료로 배포한 사람들, 집에서 쓰는 전화 회선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전자 게시판을 개설한 희생적인 시솝(SYStem OPerator)들, 보다 값싼 모뎀을 만들거나 수입하려고 노력한 업체들 등 많은 사람들의 값비싼 희생이 그 뒤에 있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 외연적인 것만을 보고 안에 숨겨진 과정을 성찰하지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 어렵게 조성한 통신의 분위기를 가볍게 여기고 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바깥 모습은 정보화 사회의 선도자이다. 언제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정보화사회이며, 그것을 운위함으로써 모든 일을 합리화 해 온 공적인 사명을 띤 기관이다. 이들은 국민이 낸 세금의 일부로써 운영되고 있는 기관이다. 바로 한국전기통신공사(Korea Telecommunications Authority)이다.

 

전기통신공사(KTA)가 하는 일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정말 KTA가 정보화 사회의 기수이며, 그들이 기수를자 처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분제 -- 정말 실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전화 요금 시내통화 시분제(이하 시분제)는 이미 KTA가 막대한 비용을 들인매스컴 광고를 통해서 주지시킨대로 90년 이전처럼 일정 요금으로 통화시간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지 않고, 시외 전화 요금이나 공중 전화처럼 제한을 두는것으로서 3분/3분제, 즉, 최초의 기본 시간 3분이 지나면 다시 3분의 일정 시간 간격으로 요금을 25원씩 가산해 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KTA는 시분제를 3단계에 걸쳐서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1단계에 속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마산, 울산 등 9급지 이상의 전국 10대 도시에서는 올 1월 1일부터 이미 실시되고 있으며, 6대 도시는 91년부터, 전국으로의 확대 실시는 92년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분제의 영향을 받게 되는 사용자는 전국 전화 가입자의 60%에 이르는 660만명에 이른다. KTA가 내세우는 주장은 언뜻보면 일리가 있다. 요금 부담의 공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화를 오래 쓴 만큼 요금을 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걸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 부른다. 공평성이란 말이 나왔으니 우린 할 말이 없다. DDD 전화를 걸고 남은 돈을 전화기가 삼키는 것은 KTA식의 "공평성"과 합일하는 것이니 그들의 논리를 당할 사용자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원칙론은 나중에 따지기로 한다.

이 시분제의 실시국은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이태리, 스웨덴 등이 고, 아직 호주와 대만 등은 실시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TA는 선진국들이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가격도 그들의 것에 비하여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국민소득 수준을 GNP를 통해서 고려하고, 그들 화폐의 실질적인 가치를 우리의 것과 비교한다고 할 때도 우리가 내는 금액이 그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 뿐이 아니다. 서비스의 질을 살펴보면 우리의 KTA는 그들의 것과 전혀 대적이 되지 않는다. 한 예로 프랑스의 전기통신공사격인 '프랑스 텔레콤'은 79년에 가정용 전화에 연결하여 정보를 수신하는 장치인 미니텔(MiniTel)을 소개하고, 그 단말기를 무료로 공급하였으며, 이를 83년도부터 상용화하여 프랑스를 정보선진국으로 올려놓았다. 이들은 상용화 6년만에 미니텔 단말기를 무려 4,400,000대나 보급하는 실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프랑스는 과거에만 선진국이 아니라 미래의 정보화 사회에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도 모두 다 시분제를 실시하는 것은 아니며, 선진국의 시분제는 현재 KTA가 시행하고 있는 무건적인, 다시 말해서 PC 통신에 대한 대책을 전혀 갖추지 못한, 시분제가 아니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원래 이 시분제는 최초에 88년 12월 1일을 기해서 시행키로 했다가 89년 7월로 미뤘고, 이를 다시 올해 초로 미룬 것이다. 이 제도를 작년에 실시키로 했다가 연기한 이유는 이 제도가 가진 문제를 보완키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가 상승을 억제키 위해서라고 하니 그 사려깊음에 눈물이 날 지경인데, 이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경제기획원이 작년 7월의 시분제 실시 계획을 앞두고 5월말에 가졌던 체신부와의 물가 대책회의에서 시분제를 실시할 경우 각 가입자당 6,985원에 해당하는 추가 부담을 주게 되고, 국민 전체로 보아서는 연간 460억원의 요금이 더 걷히게 되는데 그 당시로서도 막대한 흑자를 올리는 KTA가 인상의 명분을 찾기 힘들다고 조언한 때문이었다. 위에서 말한 추가 부담의 비율은 약 20% 정도이다(KTA의 계산은 이와는 달리 15%이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일에 대한 계산에서 5%란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하자. 작년 11월 중의 TV 방송 보도에서는 13.5%의 인상 요인이 있으며, 그로 인한 추가 부담액이 850억원이라고 발표된 바도 있다). 봉급자들의 급여

인상율을 가능한 한 한 자리 숫자로 묶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생각한다면 KTA가 공공 요금과 같은 성격의 전화 요금을 무려 20%의 비율로 국민들에게 추가 부담을 안기려는 태도는 과연 무엇인가? KTA는 반 국가기관이란 말인가?

87년도에 KTA에 의하여 실시된 한 조사는 우리 나라 전화 가입자의 평균 통화시간은 3분 이내가 8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대다수가 3분 이내에 통화를 마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KTA는 이를 3분/3분 시분제의 근거로 내세운다. 이건 참으로 우스운 발상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강요를 안해도 그렇게 짧은 시간 밖에는 쓰고 있지 않은데 이걸 굳이 3분/3분 시분제를 신설하여 운영한다는 것은 수익이나 더 올리자는 것 밖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도 뒤에서 부언키로 하겠다).

 

문제는 PC 통신

 

시분제는 그 자체가 문제를 지닌 것이 아니다. 그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려사항이 간과되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미래 사회는 정보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 정보화 사회이다. 과거와 같이 무력이나 전통적인 부의 축적이 나라의 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가 가진 정보의 양이 얼마나 많으며, 그 국민들이 그 정보를 얼마나 잘 활용하여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국가의 흥망이 좌우되는 사회인 것이다. 모든 정보는 대단위의 기억용량을 가진 컴퓨터에 담기게 마련이고, 이런 것은 흔히 DB(데이터 베이스)라 불리운다. 그리고 모든 DB는 터미널 혹은 통신용 소프트웨어와 결합된 PC에 의하여 검색되고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종합정보통신망(ISDN)의 꿈같은 세월이 오기 전까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이들 터미널이 대단위의 DB용 컴퓨터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통신선로로서 가장 보편적인 전화회선을 이용할 수 밖에는 없다. 우리 국민들이 음성정보 통신을 위하여 전화를 사용한 경험은 많지만 전화선을 컴퓨터 통신의 매개체로 이용한 경험은 약간의 팩시밀 이용자와 PC 통신 이용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많은 컴퓨터 통신의 경험을 쌓을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정보화 사회의 근간은 정보 통신기기의 사용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모든 통신 기기가 컴퓨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PC의 대중화 이후에는 이를 통신에 이용하는 것으로부터 정보화 사회에의 접근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택시 미터기의 요금이 올라가듯 분초를 다투는 전화 시스템은 비교적 많은 시간을 요하는 PC 통신에의 접근 자체를 사전에 봉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통신을 해온 사람마저 통신을 중단하겠다고 할 정도인데 새로이 통신의 세계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시분제가 실시되면 이제 겨우 붐을 이루고 있는 PC 통신이 크게 위축되어 통신의 암흑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한겨례 BBS를 비롯한 유수한 전자 게시판들이 시분제를 이유로 폐쇄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가지고 있던 데이터 통신의 대단위 전자 게시판인 PC-Serve는 시분제가 도입된 1월 달 이후에 그 사용자의 수가 1/10 이하로 격감했다. 물론 그 이유에는 데이터 통신이 그간 무료로 제공하던 시스템을 유료로 전환한 것 등도 있지만 사용자들이 그보다 훨씬 못한 기능을 가졌던 과거의 한메일(H-Mail)도 기꺼이 유료로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장 큰 걸림돌은 시분제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 스스로가 여러 전자 게시판 상에서 주고 받은 논의 중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던 것이 시분제였다.

일반 전화 가입자들에게 있어서는 시분제가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KTA의 주요 공격 목표(?)는 비음성 통신 이용자들인 것으로서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들이나 팩시밀(Fax)을 사용하는 사람(업체)들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PC-Serve의 사용자 수가 격감한 것을 보면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통신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대체로 무료 서비스이므로 한 번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보겠다는 기분으로 통신에 뛰어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직 컴퓨터 통신은 장사에 이용될 만큼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서 그 발아기에 있다는 사실을 증빙하고 있다. 현재 G3 팩시밀에서 A4 용지 3장을 전송하는 것은 3분 이내에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전송하든지 동일 내용을 여러 군데 전송해야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팩시밀 사용자는 후자에 속한다. 팩시밀이 보편화되어 이제 가정용을 빙자한(?) 제품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이것은 일부의 사용자들만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이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의 수를 인구 비례로 따지면 일본의 1/40도 안된다. 팩시밀조차도 더 많은 보급과 사용 경험을 필요로 하는 통신 기기인 것이라고 하겠다.

상용의 전자 게시판들은 그 접속시간이 늘어나면 사용료를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사용시간이 무제한이지만 실제로 올바른 통신운동을 위하여 무료 혹은 회원제로 운용되는 전자 게시판들은 적은 전화 회선으로 보다 많은 사용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사용시간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용시간이 1시간 이내로 한정된다. 3분에 25원씩이 더해지면 하루에 한 시간 접속시에 500원의 전화료가 부과된다. 결국 전자 게시판 사용을 위한 전화 요금만 한 달에 15,000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현재 전자 게시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대학생 이하의 학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아가 보통 가정의 한달 전화 요금이 7,000원 내지 8,000원 이하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지는 것이다. 이건 통신료 15,000원의 개념이 아니라 "8,000원+15,000원"의 생활비 추가 부담이라는 개념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따르는 비용이 있다. 회원제의 전자 게시판들은 그 최소한의 유지비 관계로 5,000원 정도의 회비를 받는다(이건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PC-Serve같은 상용 시스템은 접속료, 편지 보관료, DNS 사료 등을 고려해 볼 때 한 달에 사용료만 100,000원 정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금액은 가계부에 큰 압박을 주는 정도의 금액인데 그럴 때 누가 과연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려고 엄두를 내겠는가?

 

위대한 전기통신공사

 

KTA나 데이콤과 같은 공기관들은 어떤 서비스를 개시하기 이전에, 특히 그것이 유료화라든지 요금 인상에 관한 것일 때는 사전에 충분한 상호 토의를 거쳤어야 했다. 한 곳에서 요금 인상을 한다면 또 한 곳에서는 유료화의 시점을 뒤로 미룬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바람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개의 공기관에서 일시에 그같은 정책을 발표해 버리니 그로인한 사용자들의 충격이 배가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뻔한 일이 아닌가? 지난 해 한 차례의 태풍이 와서 큰 피해를 주고 그것을 복구하기도 전에 또 다른 태풍이 몰려와서 사람들의 넋이 나간 적이 있는데 이건 복구할 기력도 없도록 싹쓸이(?) 식의 태풍을 한꺼번에 몰아친 격이 아닌가? KTA가 실제의 통신 사용자가 포함된 공청회 한 번 없이 이런 일을 결정했다는 것은 사용자를 무시한 처사이든지, 아니면 컴퓨터 통신에 대해서는 생각이 못미쳤다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차라리 첫 번째의 이유라면 다행이겠다. 만약 두 번째의 이유 때문이라면 우리 국민들은 그들의 무지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

래 KTA가 시분제를 기획했을 때는 PC 통신이란 것이 꽃피기 전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컴퓨터 통신을 고려치 않은 시분제는 처음부터 문제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경제기획원조차도 여러 가지 문제를 거론하며 시분제의 실시를 2-3년간 미룰 것을 요청했으나 KTA는 각종 통신 연구소에 주는 연구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핑계로 이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전 KTA는 그들의 지원을 받고있는 전자통신연구소와 비슷한 또 하나의 연구소를 KTA 자체에서 세우고자 하여 체신부와도 마찰을 빚고 있는데 그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그들의 막대한 수익을 가지고는 비슷한 일에 이중으로 연구비를 들인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시분제니 낙전 수입 등으로 들어오는 돈을 처리할 데가 없어서 현재의 전자통신연구소를 유명무실하게 할 수도 있는 연구소를 또 하나 세우겠다는 것인지 필자와 같은 범인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KTA는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기관이다. 이 회사는 88년도 당기 순이익이 무려 3,500억원에 이르러 국영 기업체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의 대우는 꽤나 좋은 편이어서 3년전 대학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입사하고 싶은 회사'의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어떻게 그 구성원들에게 보다 나은 대우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를 벌어먹이는 것이 국민이라는 것은 흔히 잊혀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허울좋은 수익자 부담 원칙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의무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고, 자신들을 이러한 위치로 끌어올려준 국민들에게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즉, 서비스 향상 및 사용자 부담의 경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근로 소득세를 과다 징수하여 물의를 빚는 정부의 처사처럼 일단 공공기관, 혹은 독점기관으로서의 특혜만 누리게 되면 왜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등을 돌리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낙전 수입을 직원들의 보너스로 주려고 한다느니, 시분제로 번 돈이 정치자금으로 쓰일 것이라는 등의 쓸 데 없는 헛소문이 돌게 하여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낙전 수입과 시분제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일자 그제서야 그걸 국민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는데 쓰겠다고 그들은 뒤늦은 발뺌을 했다. 그들은 DDD 공중전화를 걸고 남은 돈을 사용자가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새로운 부가장치가 필요하여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돈이 들어도 그들이 자주 말하는 공평성의 원칙에 의한다면 의당 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손해날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으니 국민은 뻔히 보고있으면서 계속 당해 달라는 태도이다. 이것은 독점체제의 횡포이기에 앞서서 기업 윤리, 아니 인간의 도덕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태도가 아닌가?(그에 대한 자구책으로 사용자들은 쓰고 남은 돈이 있는 경우에 전화기를 끊지않고 전화통 위에 올려놓아 다른 사람들이 이를 이용토록 했었다. 그러자 요사이는 일정시간이 지나고도 재통화를 않는 전화를 자동으로 끊기게 하는 교묘한 장치를 KTA에서 해놓았는데 이는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왕 KTA의 정책에 관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것도 한 번 따져보기로 하자. 우린 목적세인 전화세와 방위세가 아직도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큰 의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화를 사용하면서 기본료를 한 달에 3,000씩 물게하고 있는데 그 법적인 근거를 다시 한번 따져볼 때가 되지않았는가? 이 기본료는 너무도 높게 책정된 것이다. 전화 이용률이 낮은 서민의 경우는 기본료가 전체 사용료와 맞먹거나 그보다도 더 적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로 이런 요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런 요금들은 전화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재원 조달 목적으로 도입되었던 것인데 이제 회선이 1,000만대를 넘어서 한 가구 한 전화 시대가 되어 전화적체가 해소된 상태인데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생긴 목적세나 요금이 왜 계속 존속해야 하는가? 외국에서는 기본료에 시내 통화 요금이 포함되는 수도 있는데 그 경우에는 전화 통화료는 사실 상 무료가 되는 것이다. 남들(외국)이 하고 있는 일 중에서 자신의 치부를 감출 수 있는 데이터만을 인용하여 사용자(국민)들을 현혹하려는 자세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KTA는 시분제를 시행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88년 말에 시외 요금을 20.8%, 국제 통화 요금을 17.8%씩 인하하였다. 물론 이것은 그간에 KTA가 얻은 이익의 일부를 보상키 위한 것이었으며, 시분제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국민의 항의를 막기 위한 입막음의 대비책이었지 국민의 부담을 경감해야한다는 뚜렷한 사명감을 가지고 만들어진 대책이 아니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전화와 같은 음성 통신은 기본적인 통신으로서 전화가 출현한 이후에 큰 변화가 없이 외형적인 규모만을 키워온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음성 통신은 점차로 규모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오면서 정보화 사회를 선도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비로소 수요가 늘어가면서 꽃을 피우려는 분야에서 벌써 수익을 생각한다는 것은 야비한 방안인 것이다. 키워서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를 급한 마음에 통째로 삶아먹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제는 KTA가 보다 고차원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통신 서비스를 개발하여 그것을 제공함으로써 거기서 수익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정도의 차원에서 일해야 할만큼 컸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영화를 올 하반기로 앞둔 시점에서는 기존의 태도를 일신하는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고서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만년유아로서 국민의 젖을 먹어야하는 퇴영적인 길 밖에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허울, 이것은 그들이 서울지사의 홍보전단(1월초 신문 구독 가정에 배부)을 통해서 '정보통신 기기인 Fax, 컴퓨터 등의 확산 도모'를 통해서 " 정보화사회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시분제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서비스 개선을 위하여, 또 신규 시설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하여 한번 제정된 요금 체계를 별로 바꾸려하지 않고, 새로운 요금부담을 국민에게 안기는 태도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감이 있다.

여러 매스컴의 시분제 실시 부당성에 대한 보도에 대하여 KTA는 1월달이 지나봐야 시분제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므로 이에 따른 논의를 삼가해 달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하루가 급한 이 시점에서 그 결과가 통계적인 숫자로 밝혀지기 까지는 몇 개월이나 더 걸릴 것임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달아오른 쇠는 곧바로 때려야 벼러지는 법이다. 달아오른 쇠에 찬 물을 끼얹어놓고 세월을 두고 기다리자니 참 기막힌 일이 아닌가? 그 추이는 시분제 실시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쉽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고려치 않고, 무슨 결과를 보자는 말인가? 돈이 덜 걷히면 장삿속이 안채워지니 그 땐 시분제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뜻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해온 일 중의 일부

 

과연 KTA가 컴퓨터 통신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를 500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엠팔 클럽에서 그들의 전자 게시판을 개설했을 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엠팔들은 "KTA에서 전화왔대!"라는 그들 나름의 '전화 시리즈'를 말하며 웃는다. 이것은 엠팔 게시판(EBBS)이 처음 생겼을 때 매스컴이 이를 대서특필했고, 그것을 보고 그런 통신 운동을 격려해줘도 시원찮은 KTA에서 대뜸 전화를 걸어와서 "불법 서비스를 당장에 중지하라!"는 통고를 했었던 때문이다(매우 희극적인 일이다). 물론 이

일은 체신부의 정보통신과에 까지 비화되어 그곳에서도 같은 위협(?)을 가해왔다. 그래서 엠팔 게시판은 개통된지 사흘만에 일주일간 문을 닫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처사에 대한 조직적인 항변들이 줄을 잇게 되었고, 결국은 그들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의 통신악법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같은 (소위) 불법 서비스를 묵인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했던 것이다. 민초의 자발적인 정보화 사회 앞당기기 운동을 그 선두주자가 되어야할 기관에서 막는다는 국민의 지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기사 남의 처지가 되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알 것인가? KTA의 근무자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뎀을 사용해 봤을까? 엠팔 게시판의 불법 서비스 논쟁이 벌어졌을 때 확인한 바로는 그 담당 부서의 고위직 한 명을 제외하고,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뎀을 써본 사람이 없었다(필요하다면 그 부서명도 밝히겠다). 체신부 정보통신과의 담당자도 물론(?) 컴퓨터 통신을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통신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기막히는 현실이 아닌가? 요즘에도 모뎀을 사용하면서 회선 불량으로 접속이 끊기는 일이 잦다. 그래서 KTA에 전화를 해서 잡음 시험을 해달라고 하면 귀로 청취해보고서 아무런 잡음도 없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이를 탓하면 회선 잡음을 측정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는 답이 나온다. 그런 계기를 구입할 대금은 모두 KTA 직원의 보너스로 들어간 것인지? 일제 때 깔아놓은 전화선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는 소문이고 보면 귀로라도 잡음을 청취해 주는 서비스에 어찌 감사해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현재의 전화 선로들은 초당 120자(영문 기준)를 전송하는 속도인 1200bps 모뎀조차도 사용하기 불안한 실정이다. 특히 선로가 기계식 교환기에 물린 것이면 여지없는 잡음의 방해를 받는다. 시분제 실시 이전에도 제각기 특징을 지닌 여러 전자 게시판에 접속키 위하여, 한 달 전화 요금을 약 9,000원 정도 내고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루에 30분만 사용하는 경우에도 예전 요금에 비하여 10배의 전화 요금을 내게 되는데, 그런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화비만 90,000원이란 얘기다(선로의 부실로 중간에 전화가 끊겨서 건 전화비도 많이 포함된다. 접속이 끊겼을 때의 불편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건 학생이 부담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것이니 일반성은 없다고 보자. 어쨌거나 일반인 중에서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라도 잘 키워놔야 우리의 미래 사회가 밝으리라는 것은 명확관야하다. KTA가 모뎀의 규격까지 정해서 합격 불합격 여부를 따져보자고 한 것을 보면 그들도 모뎀의 사용량이 늘어감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시분제 정책의 강행을 보면 우리로 하여금 'KTA의 기구가 커지다보니 각 부서간의 긴밀한 유대와 토의가 없는 비효율적인 기관으로 그들이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사실 그들이 체신부의 의뢰로 모뎀의 규격을 정한다고 하여 값싸고 좋은 모뎀을 양산하여 통신 운동을 불게 했다면 다행인데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몇몇 특정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평판인 것이다. 그들은 대형 기종이나 전용 회선에서나 주로 사용하게 되는 동기(synchronous) 방식을 모뎀의 규격에 넣음으로써 값이 싸나 다이얼 업으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는 모뎀을 모조리 제외하고, 이를 데이터 통신에 이용치 못하게 함으로써 또 한 번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명색은 앞으로의 종합정보 통신망에 대비하여 동기 방식이 필수적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초당 120자를 전송하는 것이 ISDN의 정보화 사회라면 그런 사회가 와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국에선 현재 9600bps의 비동기식 다이얼 업 모뎀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ISDN이라면 최소한 19,200bps 이상이 되어야 화상전달이라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꿈은 야무졌지만 잘못 짚은 경우여서 괜히 특정 기업만 배불리우고, 사용자의 부담을 가중시켜 모뎀 사용 가능자의 수를 줄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나아가 그들은 혹시 5공식의 밀어붙이기에 이골이 나서 민초의 운동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전자 게시판이 뭔지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국민학생들의 학습용 데이터 베이스를 올 3월에 가동한다는 그들이 결국 통신시스템을 통하여 DB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서야 그런 일을 기획이나 하겠는가? 그렇다면 전자 게시판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분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속상하는 일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대화의 단절을 경험하고, 이런 것이 사회문제의 일단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대화의 창구를 마련함으로써 공통적인 이념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자 게시판인 것이다. 전자 게시판은 간단한 통신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의 통신 생활을 미리 예비케 해줄 수 있는 축소판 모의 실험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자 편지를 주고 받고, 화일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전자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토론의 장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DB사용을 생활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미리 사는 사람들, 즉, 미래의 리더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국가에서 이를 위해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하여 이렇게 미래를 예비하는 움직임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의 첨병이라 자처하는 기관이 왜 그것에 제동을 거는가? 이미 여러 개의 사설 전자 게시판들이 폐쇄(비공개화)내지는 폐국 되었다. 개인적으로 빛도 나지 않는 무료 서비스를 통해서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상이라도 준 단체가 있었던가? 상을 준다면 어떤 단체가 이에 앞장서야 했을까? 그 하고 많은 수익 중의 일부를 떼어 그들을 도와준 일이라도 있는가? 법적으로 도와줄 길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일 것이다. 수익이 되는 일이라면 법을 뜯어고쳐서라도 하고자 하고, 밀고 나가는 그들이 몇 개 안되는 사설 전자 게시판을 도와줄 길이 없노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도움은 무슨 도움입니까? 방해만 않으면 일이 잘될텐데..." 불법서비스를 주장하는 체신부나 KTA 관계자들의 자세를 두고 그들 시솝들이 하는 말이다(하기사 민간차원에서도 대기업이 사설 전자 게시판을 위해 도움을 준 일은 없다. 그들을 도운 것은 오히려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의 영세한 점포들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유에스 로보틱스 같은 큰 기업이 전적으로 전자 게시판들을 돕고있다).

KTA의 시내 전화 사업본부장의 말씀은 이 시대의 명언으로 남을 수 있다. "음성통신이나 비음성통신이 교환기에 똑같이 물려 구분이 되지 않는다" "PC 통신이용자도 양질의 정보를 많이 흡수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두 개의 통신 방식을 구분하는 방안을 고려않고 있는 관계자의 자세로 인하여 그말이 명언일 수 있고, KTA 스스로가 제공하는 양질의 정보가 아닌데 오히려 양질의 정보 흐름을 조장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막고, 또 그를 기화로 수익을 올리려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다. 말도 안되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KTA가 독점 사업체로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보니 차라리 이젠 외국의 통신업체들이 우리나라에 진출하여 VAN 서비스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 회선까지 깔고 서비스를 했으면 좋겠다는 막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KTA와 경쟁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잘난 꼴 좀 안봤으면 하는 것이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통신인들의 생각이다. 관주도형의 통신은 이렇듯 민주화된 사에 있어서는 역시 구시대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통신 시장의 독점 금지를 규정한 것이 벌써 오래 전이고, 독점 체제에 있던 AT&T가 결국 그 좋은 시장을 다른 회사와 분할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시외전화 요금은 완전히 자유화되어 있어서, 각 회사에서 경쟁적으로 요금 인하를 하고 있는 것이다. AT&T와 MCI는 같은 지역에서도 약 30%의 요금 차이가 나고, 요즘 Sprint는 이보다도 더 파격적인 요금을 제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한 KTA의 영향하에 있는 데이콤의 자세마저도 문제가 있어서 우리의 민초(grassroots)통신운동이 생긴 것이 작년도의 일이다. H-Mail의 약한 기능, 비싼 사용료가 문제였다. 그들은 PC-Serve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가졌던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쾌거를 올렸다(그들은 막대한 예산으로 그 프로그램의 소스를 일본으로부터 사올 수 있는 재정적 능력도, 또 그 프로그램을 원래의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더 세련되게 한글화 할 수 있는 그런 실력도 갖추고 있었으나 예전에는 단지 의욕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 사설 전자 게시판들의 노력을 보면서 새롭게 각오를 다진 것이다). 그러나 그 서비스가 유료화로 전환되자마자 무료 서비스 기간인 3개월간 축적된 정보의 대부분을 사용자들에게 한 마디의 고지도 없이 삭제했다가 격렬한 항의를 받고 3일만에 그 일부를 복구하였다(데이터통신 때문에 설립된 회사가 기위 축적된 "정보"의 중요성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독점체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요금 체계의 공정성과 전화 서비스의 효율성을 기하는데 더 노력 해야한다. 사용자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입자의 다양한 욕구에 대하여 등을 돌리는 처사는 결코 옳지 않은 것이다. KBS TV의 일방적인 소비자 우롱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청자 거부 운동과 이번 시분제 실시에 따른 가입자들의 부담 증가는 같은 맥락에서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TV는 보면서도 시청료의 납부를 거부할 수 있으나 전화는 당장 회선의 사용이 중지되므로 가입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니 "항상 사고는 관이 치고(?), 사용자들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느냐?"는 볼메인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대안은 없는가?

 

앉아서 당하기는 했지만 우리도 입을 가졌으니 항의를 해보는 것이 인간된 도리(?)이겠다. 그들은 PC 통신에 대한 음성적인 규제로 연결된 시분제를 결국 실시했는데 상식적인 선에서 다음과 같은 대안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 DB 등 특정의 통신 시스템만을 한 군데로 몰아서 전화 번호 앞에 세 자리의 숫자를 추가하는 700 서비스에 주요 전자 게시판의 번호를 모두 수용하고 보이스 휠터(filter)를 다는 문제도 한 번 고려해 보려는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는지? 물론 이것은 비음성 통신에 있어서 시분제 적용을 완화해 주는 일에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타진되고 있던 이 서비스의 성격을 널리 알리고 이에 전자 게시판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발표만했어도 사용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런 특수 서비스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비음성 통신의 진흥을 위하여 모든 전자 게시판의 전화 번호를 등록받아 이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에는 시분제의 원칙을 완화하는 일은 비교적 손쉽지 않았겠는가?

교환기에 음성과 비음성 통신 여부를 가리는 장치를 해서 음성이 아닐 경우, 이를 구분하여 비음성 통신으로 간주하고 요금을 따로 계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방법을 적용하려면 부가장치를 위한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기계식 교환기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는 관계자의 답변이 있다. 그러나 시분할제를 실시키 위하여 전체 전화 교환기의 20%나 차지하고 있으나 불원간 사라질 운명의 기계식 교환기에 부가 장치를 붙이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여기에 들어가는 요금 계산장치 부착을 위한 예산이 236억원이란 막대한 것이었는데 이는 예산 낭비가 아닌가?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이런 데는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화 요금의 광역화도 또 한 방법이다. 한 예로 실상 시분제를 6분/6분제로 바꾸면 사용자의 부담은 1/2로 감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KTA가 국민들이 3분 통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3분제를 실시한다고 변명한 문제의 비타당성은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사용자의 대부분이 3분 통화로 그치기 때문에 그 86.9%를 제외한 나머지 13.1%의 주류를 이루는 비음성 통신 사용자들을 공격 목표로 한 것은 분명한 것이다. KTA는 기계식에 부착된 상쇄과금 장치가 4분 30초 이상을 기록할 수 없어

서 3분제를 채택치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이 왜 4분제를 채택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특히 4분30초/4분 30초제로 시분제를 설정하는 호의를 보였다면 KTA는 사용자의 어려운 여건을 최대한으로 배려하는 공기관으로 인상지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서독의 경우에는 5분으로 시분제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그들의 통화 관습을 고려하여 국회에서 이를 8분제로 확정케 하였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4-6분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뭘 몰라

서 그랬을까?

야간 시간대에 할인을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부분의 컴퓨터 통신 사용자들은 올빼미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회선 점유율을가지고 비음성 통신을 제한하려 했다면 시분제와 관련된 야간 할인제라는 -- 여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인 -- 방식은 얼마든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전화 요금 산정방식을 다양하게(3개) 두고있는 미국의 예를 본딸 수도 있었다. 장시간 이용하는 PC 통신 이용자에게는 비교적 유리한 광역통신 시스템(QATS)을 적용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극히 적은 통화를 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 요금은 한 달에 15불, 인근과 잦은 통화를 하는 사 람을 위한 보통 요금은 23불, 아주 많은 통화를 하는 사람을 위한 특별 요금은 27불로 하고 있다(이 금액 역시 앞서 지적한 대로 상호 GNP를 비교한 후에 이 요금의 실제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기초로 해서 따져봐야 한다). 또한 전화 번호 중에서 지역 번호가 바뀌는 것은 자유 경쟁 요금이어서 선택의 폭이 크고, 할인율도 높은 편이고, 동일 지역에서는 로우컬(지역 단위)로 쳐서 보통 요금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대에 따른 요금의 차등 책정도 눈에 띤다. 이들은 오히려 통신에의 관심을 제고하고, 이들의 활동을 돕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이 정보화 사회를 앞당기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3분마다 일정액이 추가되는 직선식의 시분제인데 이를 통화 시간의 증가에 따라서 단위 요금의 적용을 낮게 하는 블록식 시분제로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30분을 쓰는 사람과 300분을 쓰는 사용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장사꾼이나 단골 고객에게는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상례가 아닌가? 컴퓨터 통신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음성 통신을 제외한 모든 부가가치 통신 시스템에 있어서는 선별적인 요금 정책을 KTA가 제시해야 할 것이다. 팩시밀리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회사 위주로 쓰이고 있으니 이들이 쓰는 것과 PC통신용으로 전화를 쓰는 개인 이용자의 이용 행태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지는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KTA는 시분제를 떳떳하게 생각할 만큼 좋은 서비스만을 그들이 제공해오지 못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통신 선로에 있어서 양질의 회선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그 첫 째 이유이다. KTA는 시분제 실시 이유 중에서 장시간의 통화가 정체 현상을 일으키고, PC, 팩시밀리 등 비음성 통신의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통화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이유는 회선사정이 좋지 않은데 있는데 왜 그 사실을 모른 척 하는가? 1200bps로 전송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불안할 정도로 안 좋은 회선은 생각지 않고 통화 품질의 저하가 비음성 통신의 증가 때문이라고 매도하는 그들의 자세는 참으로 한심하다. 엠팔게시판의 경우 그것이 최초로 설치된 이문동 지역에서는 기계식 교환대에 물려 있어서 1200bps 조차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2400bps는 전혀 사용이 불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회선 사정이 좀 낫다고 하는 마포 지역으로옮겼을 때에도 상황은 좀 나아졌지만 2400bps 모뎀에 들어오는 벌크 노이즈(bulk noise)는 당할 방법이 없어서, 접속이 자동적으로 끊어지는 일이 많

은 실정이라 한다. 게다가 마포 지역이 톤(tone) 방식의 전자식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약 20%정도 남아있는 기계식 교환대를 이용하여 수익 사업을 하려했는지, KTA는 기계식 번호는 기계식 번호하고만 맞바꿀 수 있다는 그들의 원칙을 내세우는 바람에 기계식 교환대를 피해서 갔지만 그 트랩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KTA는 터보제트의 근두운으로 달려도 그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부처의 신통력과 자비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엠팔 게시판의 기계식 전화 번호를 해지하고 새로운 번

호를 재신청을 하기 위해서 전화 한 대 당 8,600원의 수수료를 납부하고서야 전자식 전화를 쓸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린 그 돈이 고생하는 KTA직원들의 봉급에 추가되어 그들이 보다 편한 생활을 하고, 보다 많은 시간을 얻어서 정보화 사회가 뭔지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바랄 뿐이다.

일단 이런 방안들은 사용자들(KTA의 고객들, 그리고 그들을 먹여살리는 고마운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시분제의 실시 이전에 강구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KTA의 관계자들에게는 "모르는 게 약이고 무식은 용기"라는 속설 밖에는 통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믿고 사는 우리 자신이 너무도 불쌍해 진다. 그같은 문제를 사용자와의 대화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결정하고, 이와 함께 대중매체인 TV, 방송, 일간지, 잡지 등을 통해서 세뇌식으로 전체 사용자들을 설득시키려는 시도는 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하여 어떤 개

인이, 혹은 단체가 효과적인 대항 선전을 해보겠는가? 도대체 그 많은 광고비를(수익을 많이 올리는 그들에게는 시쳇말로 껌값에 지나지 않는지 모르겠으나) 왜 들여서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안이 없이 정보통신 역행 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KTA의 책임만이 아니다. 그들의 위에는 체신부가 있고, 결국 그 책임의 큰 부분은 그들의 것이다. 정보화 사회를 선도해야 할 체신부의 입장에서 그러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국가 반역의 대죄를 지고 있는 것이라면 틀릴까?(오히려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민초들이 나서서 하는 걸 보면서 자신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을까 두려워 민초운동을 막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Who knows?) 앞으로의 정보화 사회에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이런 사태를 돌이켜 보면서 이것이 매국 행위로 질타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호언하겠는가?

 

벌어진 일에 대한 사용자의 대처

 

KTA에 대한 요망 사항을 이야기 했으니 이제는 사용자의 측면에서 일단 벌어진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이야기 할 차례인 것 같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말이어서 죄송하지만 사용자는 우선 보다 빠른 모뎀으로 전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뎀의 속도를 두 배로 늘이면 요금이 정확히 1/2로 경감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간이 돈"이란 금언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KTA에 감사드린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200bps에서 2400bps로 전향하면 속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초당 120자의 속도로 자신의 터미널에 쏟아져 들어오는 텍스트를 대충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두 배인 240자의 속도로 들어오는 텍스트를 화면 상에서 읽을 수는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들어오는 정보를 직접 디스크에 저장하는 캡춰(capture)기능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다 받은 후에는 접속을 끊고서 캡춰한 텍스트를 워드 프로세서로 읽어본 후에 답장을 써서 텍스트로 변환시켜 이를 업로드(upload) 할 준비를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나중에 재접속을 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한 달에 15,000원이라는 금액을 물고서라도 하루에 한 시간씩은 무조건 전화를 쓰겠다는 대단한 결심(학생의 경우에는 부모님의 허락을 필해야 하겠지만)을 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대처방안이다. 편지 등의 경우는 답장을 줄이고, 쓰는 양을 줄이면 된다지만 필요한 유틸리티 화일을 전송받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요즘들어 값이 싸진 이미지 스캐너(scanner)를 이용하여 남들이 만든 그림을 전송받는 사치스런 일 등은 이제 자제할 수 밖에 없다. 5"x7" 크기 정도의 사진 하나를 그래픽 화일로 만든 경우 그것은 아무리 압축시킨다고 해도 전송받으려면 20분 이상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림 하나를 받으려고 150원 이상을 투자할 사람도 없으려니와 남에게 피해를 줄(?) 그런 그림을 업로드할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결국 우리 곁으로 다가와야할 그래픽 시대는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우린 이로써 남의 나라에 뒤지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유틸리티 프로그램도 마찬 가지이다. 남을 위해서 쓸 모있는 긴 프로그램을 경제적인 희생을 무릅쓰고 업로드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

또 다른 대안은 통신용 프로그램에 포함된 통신용 언어, 즉 스크립트(script)언어를 이용하여 보다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작성한 후에 통신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이다. 통신 시스템은 보안 등의 많은 문제로 인하여 접속을 하면서 이름과 암호를 쳐넣는 등의 과정이 복잡하고 여기서 소요되는 시간도 적은 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같은 로긴(login) 과정에서부터 전에 읽지 않은 편지 등을 모조리 찾아내어 이것들만을 캡춰받고 일이 다끝나면 자동적으로 접속을 끊는 스크립트 화일을 작성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프로그램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가지면 쉽게 작성할 수 있는데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 발표된 한글 통신용 프로그램 중에는 이처럼 세련된 스크립트 언어를 내장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프로콤(ProComm)이나 텔릭스(Telix) 등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미국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일마저도 필요치 않은 모든 편지를 왜 다 캡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력하며, 새로이 업로드 된 화일을 찾아 이를 다운로드(download) 할 때는 쓸 모가 없게 된다. 또 온라인 상에서 직접 답장을 작성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며, 온라인 채팅(chatting)의 즐거움은 과거의 꿈으로만 아름답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복권이 당첨된 날은 상대의 전화비까지 물기로 하고 채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칼자루를 KTA가 쥐고 있고, 그 놈의 돈이 원수인것을...

어느 잡지사 기자가 시분제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들으러 왔다가 체신부와 KTA에 들리니 "왜 이제서야 지난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며 불쾌해 하더라는 얘길 전했다. '지난 문제라니?' 아니 우리의 뇌리와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아직껏 우리를 아프게하는 이 문제가 지난 문제란 말인가? 이렇듯 그들의 자세는 우리와 전혀 다르다. 세상에 단 칼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있더란 말인가? 잘못된 결정이라면 그것이 고쳐질 때까지는 언제라도 그에 대해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책임있는 행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분제 시행 이전에는 시분제가 통신의 암흑기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성있는 정책이라고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의 심각성에 대하여 크게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실시 이후에 우려하던 결과가 곧바로 눈에 띠니 이를 지적않고 넘어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타난 결과에 경악하고 있는 지금이 사용자들이 그 문제에 관해서 토론해야할 시기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다시말해서 "이제야말로 떠들 때"인 것이다.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이를 강건너 등불보듯했던 많은 컴퓨터 잡지들이 아니라 스포츠 신문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다. 한 스포츠 신문이 이 문제에 대해 대서특필하자 경제지들을 비롯한 다른 일간지들이 들고 나서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방송에서도 이를 보다 심각하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귀 아픈 5공 청산이란 문제만 없었어도, 그같은 과거 집착의 아집만 없었어도, 우리는 미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 상에 있어서의 시행착오가 없도록 중지를 모을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체신부 장관이나 과학기술처 장관 등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몇 분이 나서서 이런 일에 관심을 보였더라면 이런 정책이 국민의 중지도 모으지 않은 채로 생겨났을 것인지 의문시 된다.

 

끝으로

 

정보화 사회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사회를 현재로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가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다고하여 우리나라도 덩달아 정보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정보축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않기 위해서 보다 많은 국민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계몽하고, 또 만들어진 데이터를 전송하고, DB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훈련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게되는 것이다.

KTA는 국민학교의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올해부터 96년까지 교육용 컴퓨터 155,000대를 보급한다는 문교부의 정책에 찬동하여 이를 지원키로 했다고 한다. 컴퓨터 문화의 정립이란 것이 컴퓨터만을 내던져준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거저 주어지는 것보다 자신이 그 필요성을 느끼고 접근해 갈 때 비로소 교육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컴퓨터 전문인들이면 누구라도 그같은 억지 춘향식의 교육이 제대로 성과를 올리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하여 PC 사용의 분위기가 무르익도록 해야 우린 소기의 성과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컴퓨터 마인드의 보편화이다. 그런데 그런 운동을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나서서 막는 공기관이 있으니 우리의 앞 날이 걱정될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애써서 이룩해 온 통신시설 확충, 놀라운 전화 보급, 기초과학 육성 등의 찬란한 업적마저 몰아서 빛을 잃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만약 아직도 민초들의 건설적인 의견에 등을 돌릴 생각이 있다면 이제 KTA는 더 이상 정보화 사회의 기수로서 자처하는 일은 삼가기 바란다.

 

"신이여 이 통신의 암흑기를 벗어날 빛을 우리에게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