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통신 동호회는 힘이 세다

 

컴퓨터 통신을 하는 인구는 약 70만명 정도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서비스 회사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에이텔 등 크게 네 곳이 있다. 이 가운데 천리안과 하이텔이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고 나우누리가 그 뒤를 무섭게 쫓고 있다. 중고등 학생을 제외한 대학생, 일반 컴퓨터 통신 사용자들은 두 곳 이상의 통신망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통신망에 가입을 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는 목적이 있다.

컴퓨터 통신 서비스는 크게 개인서비스, 공공서비스, 동호회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동호회는 ‘컴퓨터 통신의 꽃’이라고 할 만큼 어느 통신 서비스 회사에서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인정되고 있을 정도이다. 만일 통신망에 동호회가 없다면 컴퓨터 통신의 존재의의가 매우 축소될 것이다. 동호회는 동일한 목적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것으로, 다른 어떤 조직보다 민주주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통신망에 만들어진 동호회는 크게 전문 동호회와 친목 동호회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동호회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회원수가 결정되는데, 통신망의 특성과 사용자층이 비교적 젊다는 면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동호회나 취미․오락 동호회에 회원수가 많다. 통신망에서 성장한 동호회는 회원수가 늘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통신망은 물론 점차 사회적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분야의 동호회는 회원들의 정보력과 구매력 등 많은 인원이 가지는 장점을 활용하여 관련업체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들 동호회의 힘이 과연 얼마나 세고, 그 힘은 올바로 작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하이텔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동호회는 ‘OSC 동호회’이다. 컴퓨터 일반으로 분류되는 ‘OSC 동호회’는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함께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로 시작해서 지금은 회원수가 2만5천명이 넘는 대형 동호회로 성장했다. 지금도 도스, 윈도우즈, OS/2, 넥스트스텝, 리눅스 등 주요한 운영체제에 관한 정보는 모두 ‘OSC 동호회’를 통해 얻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 ‘OSC 동호회’ 회장으로 활동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서성헌 씨는 동호회의 영향력에 관해서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부 영향력 있는 동호회, 예를 들어 ‘OSC 동호회’의 경우 각종 정보와 제품 분석에 있어서 용산의 업체들보다 앞서고 있다고 한다. 용산의 업체들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못하고 취급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달라서 자신이 취급하는 품목 외에는 정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거의 문외한인 경우가 많은데, 통신 동호회는 수 많은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제품을 사용해 보고 분석 기사를 게시판에 올리거나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최신 정보를 게시판에 알림으로써 동호회 회원들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빠른 시간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호회의 영향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구매력에 관한 부분이다. 용산에는 새로운 상품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제품을 모두 알릴 수 없는 상태에서 동호회의 분석기사나 제품소개 등에 관한 게시물은 일반 회원들에게 구매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이른바 고급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일부 회원들은 최신 제품을 직접 구입하거나 테스트를 요청받아 사용한 다음 그 내용을 동호회 게시판에 올려놓으면 조회수만 1천건이 넘는다. 이렇게 알려진 내용은 물론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 것이지만 대중들에게는 호소력을 가지게 되어 있어서 제품의 판매에도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하니 업체들로서는 동호회의 분석기사를 예의 주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현재 ‘OSC 동호회’ 회장인 정선기 씨이다. 정선기 씨는 지금까지 동호회가 동호회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해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순수하게 친목과 정보교환 위주로 나가야 함에도 공동구매 등 부대사업의 비중이 커지는 바람에 동호회의 순수함을 상당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이 각종 제품에 대해 보이는 시각이 무조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한다. 단적인 예로 어떤 제품을 평가할 때, 제품의 신뢰도나 정품, 애프터서비스, 사용자 지원 등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무시하고 오직 값이 싸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정품 제품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주장들이 다수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호회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고 있다. 기업이나 업체에서 홍보하는 각종 제품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역시 동호회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호회에서는 해당 제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직접 사용해 본 결과를 게시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구체적인 자료를 얻을 수가 있다. 컴퓨터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 등산장비, 자동차, 의류 등은 물론 시내 음식점까지도 좋고 나쁜점을 적어 올리는 게시판이 있다.

동호회가 대외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공동구매를 들 수 있는데, 공동구매에 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말한 정선기 씨는 공동구매가 단순히 값만 낮추는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공동구매란 컴퓨터 통신 동호회에서 개발된 독특한 형태의 물건구입 방식이다. 지금도 많은 동호회에서는 공동구매를 기획하고 실시하고 있다. 공동구매를 하면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동호회 사업의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선기 씨는 이러한 공동구매가 오히려 동호회의 본래 목적을 퇴색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앞으로의 공동구매를 통한 동호회의 영향력 행사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선기 씨의 말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업체들이 컴퓨터 통신망에 자체 기업포럼을 개설하여 이용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으니 동호회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순수한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형태로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 ‘OSC 동호회’는 비슷한 성격의 동호회인 ‘윈도우즈 동호회’와 ‘OS/2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이들 동호회와 연대를 가지고 협력한다는 것이 ‘OSC 동호회’의 활동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OSC 동호회’의 활동과는 달리 점차 대외 영향력을 키워 나가려는 동호회가 있다. 천리안의 대표적인 동호회인 ‘아트미디어’ 동호회의 회장인 박수민 씨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 보다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한다. 천리안에서 동호회 활동 내용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아트미디어’ 동호회는 멀티미디어, 윈도우즈, 광고 등 세 가지 분야를 중심에 놓고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로 회원수는 약 1만2천 명이 넘는다. ‘아트미디어’ 동호회의 영향력은 해당 분야의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협찬을 해올 정도로 상당하다. 지금까지는 업체의 협찬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수용을 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칫 동호회 운영진과 업체의 좋지 않은 거래나 뇌물 등 부정적인 면이 다른 동호회를 통해 발생했었고 그런 구설수에 일단 휘말리면 동호회의 순수함이 결정적으로 훼손 당하기 때문이다.

‘아트미디어’ 동호회 역시 업체에서 공동구매나 협찬을 제의하면서 운영진에게 별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언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의견은 단호하게 물리치고 있다고 박수민 씨는 말한다. 다만 업체에서 제공하는 각종 정보나 분석용 소프트웨어들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받아들이고 동호회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업체에 제시하는 분석과 비판의 창구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동호회의 장점이자 영향력이라고 말한다.

동호회의 영향력은 전문 동호회일수록 강하다. 전문인들로 구성된 하이텔의 ‘컴퓨터출판(DTP)’ 동호회는 동호회 운영진과 회원의 상당수가 직장인이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출판, 인쇄, 제작, 편집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전문동호회이다. ‘컴퓨터출판’ 동호회는 국내의 출판문화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전자출판’의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부터 회원들은 순수한 개인의 노력으로 ‘전자출판’의 범위를 넓혀왔다. 지금은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에 각각 동호회를 개설하고 여기서 활동하던 회원들을 중심으로 ‘컴퓨터출판협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컴퓨터출판에 관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각종 컴퓨터그래픽, 시디롬 타이틀 등 멀티미디어 분야까지 출판의 영역으로 확보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이텔의 ‘컴퓨터출판’ 동호회 회장인 서종수 씨는 ‘컴퓨터출판’ 동호회가 전문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개발되는 전자출판용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홍보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마당으로 동호회를 활용할 수 있고 동호회는 순수하게 사용자들의 모임이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분석하고 비판하고 개선해야 할 내용들을 게시판에 적어놓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업체와 동호회는 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컴퓨터출판’ 동호회는 공동구매를 통해 회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서종수 씨는 말한다. 그 예로 레이저프린터와 스캐너의 공동구매를 예로 들었는데, 당시 230만원짜리 레이저프린터를 170만원에 공동구매를 하여 무려 40여대를 구매하는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값만 깎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운영진의 목표는 업체의 이윤폭을 최소화하되 제품의 선정과정과 제품비교를 통해 공동구매를 하는 만큼 일단 공동구매로 선정된 제품은 그 자체로 광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구매가 언제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컴퓨터출판’ 동호회의 경우 지난해 스캐너 공동구매를 하면서 100만원이 넘는 스캐너를 80만원에 공동구매했는데, 용산의 업체에서 반발을 할 정도로 낮은 가격이었으나 공동구매가 끝나자 마자 새로운 제품이 발표되고 공동구매한 제품은 60만원대로 가격이 떨어져 버렸다. 이 일로 일부에서는 운영진과 업체 사이에 혹시 담합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물론 그런 내용은 전혀 없고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서종수 씨의 말이다.

이들 모든 동호회의 운영진들이 말하는 한결같은 의견은 동호회가 대외 영향력이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면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운영진은 업체와 교섭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말이 나오는 것을 의식하고 있고 업체의 지원이나 공동구매 등의 행사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업체에서 운영진에게 각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선물’하는 것을 거의 사양하고 있다. 업체에서 물건을 받아 동호회의 존폐까지 문제가 되었던 일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동호회의 운영자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 동호회 회원의 이익보다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역행위’를 하는 일도 생긴다.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동호회는 저마다 고민을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을 내놓은 곳은 없다. 현재는 운영진의 양심에 맡기는 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임 하이텔 ‘컴퓨터출판’ 동호회의 회장이었던 백우현 씨는 ‘재산등록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운영진으로 등록하는 사람은 임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목록을 공개하고 임기가 끝나면 늘어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목록을 제시하여 그것을 구입하거나 얻게 된 경로를 회원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공직자 재산등록제와 비슷한 내용인데, 이 또한 운영자의 양심이 첫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결국 통신 동호회의 운영자들이 그만큼 업체에게 크고작은 유혹들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호회의 위상이 통신망을 넘어서 사회의 전문분야까지 발전하고 있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컴퓨터 통신망의 동호회는 그 특성이 사람이 만나지 않아도 전국 어디에서나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고 정보의 교류가 매우 빠르며 정보에 대한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회원이 사용자(소비자)로 이루어져 있어 기업으로서는 사용자에 대한 지원과 정보제공, 홍보 등 전략차원에서 접근하게 된다. 시장의 확대를 바라는 기업으로서는 경쟁 업체에 대한 견제를 위해서라도 사용자 집단인 동호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동호회가 어느 기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보거나 그런 인식을 특히 소수 전문가들이 가지게 되면 통신망을 통한 전파력이 빠르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에 동호회의 발언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주로 컴퓨터와 관련된 동호회의 활동이 관련 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컴퓨터 통신 동호회는 수 백개가 넘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통신 동호회원들은 활동하고 있다. 컴퓨터 통신 인구는 앞으로 수직으로 늘어날 것이고 동호회의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다. 사회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컴퓨터 통신과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네티즌’들이 펼치는 힘은 전문분야의 영향력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기업과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민주시민의 역량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