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컴퓨터 통신망인 하이텔에는 공개토론장이 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늘 수 십 가지의 주제가 개설되어 많은 이용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최근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주제로 공개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 의제를 내놓은 사람은 본지의 컴퓨터란 필자이기도 한 백건우 씨(34세)로 개설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느날 문득, 내가 만일 대통령이었다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겠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다음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해보신 분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도 많지만 고쳐야 할 점과 부조리하고 나쁜 점도 많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병든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생각 하나하나가 모여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이 의제를 내놓았습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곳을 시원하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토론주제는 개설되면서 많은 이용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는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것도 있지만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도 들어있다.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토론자들이 사회의 정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그 가운데는 ‘전두환,노태우 등을 심판한다’ ‘비교육적 교육제도를 다 뜯어고치고 학교비리를 없앤다’ ‘탈세한 놈들 다 사형! 재산 몰수...’ ‘공무원들 대대적 숙청(?) 비리가 있으면 다 짜름’ 등 강경한 주장도 있고 ‘통일이 우선’이라며 ‘통일을 위해서 남북대화에서 양보하겠다’는 통일론도 나오고 있다.
교육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 사용자들은 역시 학생들이다. 학생 토론자들은 ‘시험을 없애겠다’는 주장부터 ‘사방이 꽉 막힌 교실을 열어버리겠다..!!’는 부르짖음까지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학교교육이 얼마나 많이 왜곡되고 청소년을 짓누르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교조 선생님을 무조건 복직시킵니다’는 주장도 있어 교육문제에 전교조의 역할을 강조하는 글도 눈에 띈다.
사회문제는 매우 다양한 의견들이 전개되고 있다. ‘적어도 사인은 한글로 할 것’이라며 사인을 한문이나 영어로 하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에서부터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을 우롱한 짓을 한 전 대통령을 구속하겠다’는 당당한 주장들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언론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들이 쏟아진다. ‘거짓보도하는 언론사 사장,간부 모두 구속!’하겠다는 강경한 발언과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많은 주장들이 우리 사회에서 언로가 얼마나 많이 왜곡되고 편파적인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사회의 갈등과 빈부의 격차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번 지존파 사건에서도 보여주듯이 가진자에 대한 보복성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토론자들은 ‘죄의 질을 구분하여 처리’하여 일반범죄와 윤리도덕 범죄를 구별하여 죄의 형량을 달리하자는 주장과 ‘사형은 반대하며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에 처한다’는 합리적 대안도 나오고 있다. 부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동차에 고율 세금을 물린다’는 주장과 ‘골프장을 없애고’ ‘세금을 바로 걷겠다’는 내용도 보인다.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고 ‘매매춘을 없앨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친일파 문제는 여전히 젊은 층에도 깊은 관심의 대상이어서 ‘친일파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강경론이 나오고 ‘반민족특별법을 제정하겠습니다’라며 구체적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일단 친일파부터 숙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의 문제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친일파 문제와 함께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해외 문화 유산에 귀환에 힘쓴다’, ‘문화재 보존,외국에 있는 문화재 되찾겠다’는 의견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마음으로 보인다.
지금도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고 있는 주장들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과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 ‘군비를 축소하는 것’ ‘양심수를 모두 석방하자’ ‘모든 '핵'을 없애버릴 것’이라는 내용들이다.
이번 정권에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는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해서는 ‘쌀개방 절대 안해!’라며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민감한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환경법을 강화하겠다’며 재벌위주의 환경정책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올바르게 풀지 못하는 행정부의 무능력함을 질타하고 있다.
컴퓨터 통신망에서는 일방적인 주장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양방향 토론과 문제의 제기, 주장과 설득 등을 통해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의견도 숨김없이 드러내어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과 같은 주제와 다양한 의견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억압받고 차별 당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작게는 공공의 질서부터 크게는 민족정기까지 모든 것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