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마루프레스 운영자가 [뿌리깊은나무]를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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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수 미술평론가가 쓴 글이다.
한 사람의 유명하고 뛰어난 화가인 박래현 씨는 운보 김기창 씨의 아내이기도 했다. 오광수는 박래현의 생애와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박래현을 검색해봤다.
작가명 박래현 朴崍賢 Park, Re-hyun
최병식 (미술평론가)
우향 박래현은 주지되다시피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잊을 수 없는 큰 별이며 특히 여류로서는 선구자적인 위치에 우뚝 선 분이다. 본디 그의 작업은 수묵 담채와 채색을구사하는 동양화가 주가된다. 일제시대 후반기에 선전(鮮展)에서도 활약하였고 50년대 초반 전쟁을 피해 군산 구암동에 운보와 함께 피난하는 기간에 시작된 실험적경향들은 한국 현대 동양화의 개척자 중 한 분으로 평가된다. 더우기 비교적 폭넓은국제적이고도 다원적인 시각을 구축하면서 창출해 온 한국전통적 미감에 바탕을 둔조형성이나 정신세계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부단히 논의 되어온 동양화의 현대적 위상확립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이번 20주기를 기념하여 열리게 되는 우향 박래현 판화전의 주요 작품들은 그의이와같은 다원적인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개안(開眼)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또 하나의 시도로서 어느면에서 보면 그의 평면회화에 못지 않는 미술사적,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우향의 판화작업은 실제로는 미국 체류 기간인 1969년 부터 1974년까지 약 5년간에 걸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판화라는 쟝르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1964년의 미국, 구라파, 중동 여행과 "67년 중남미와 미국여행에서 시작하게된 서구미술의방법론적인 심취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뉴욕에 체제하는 6년여 동안 봅 블랙번(Bob Blackbunn)연구소와 프렛(Pratt)에서의 판화연구 기간동안 비록 방법론의 습득과정에 있어서는 기법은 현지의 연구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판화의 주된 테마나 소재의 선택 등은 대다수가 위에서 말한 두번의 여행에서 얻게된 인상과 스케치들로 부터 비롯되고 있다.
우향이 남기고간 노트나 스케치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두번에 걸친해외여행의 기록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소재들이나 흥미는 중동, 중남미 여러나라에집중되어 있다. 특히나 원시적 다원시각에 의해 제작된 많은 공예들이나 각지방의 전통문양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일일히 사물들의 특징과 색채, 명칭과 년대 재료들을 명기하는 치밀성까지도 보이고 있다.
제작년대는 다소 차이가 있거나 추정적이지만 "74년 귀국시에 유럽 아프리카 여행에서도 그가 겪은 역사의 흔적들에대한 생생한 체험과 상상의 흥미는 당시의 전반적인 작업속에서 한국적 소재들과 연결되어 표현된다. "이 역사의 증언, 그러나 이속에 영원히 간직되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이러한 추리는 싱겁게도 나에게 흥미를 돋구어 준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상상력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는 이렇게 당시의 기억들을 적고 있다.
이번 시몽화랑의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발표년대를 보면 대개가 1971년 부터1974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작가가 생존시에 많은 작품에 년대와 명제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변화의 년표제작이 체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체가 약 40여점 전후의 수량이 출품된 이번 작품들 상당수가 그간 이미 화집과 한 두차례의 전시를 통해 발표된 바도 있으며 미술사 판화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도 포함이 되어 있다.
우선 대체적인 이번 작품들의 주요 내용과 경향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의모든 작업들이 "64년과 "67년의 여행에서 체득된 고대미술의 소재들과 한국미술의요소를 적절히 조합하여 우향 자신의 세계관으로 조형화시킨 것들이다. 특히 그의대표작으로 꼽히는 「근원(origin)A」 같은 예는 생명과 역사의 근원적인 내용을 독특한 조형언어를 통해 에칭과 메조틴트(포토에칭)기법을 병행하여 제작하고 있으며「삶」이나 「근원B」「회상」 등의 명제나 작품내용 대다수에서 그가 말한 "역사의 증언과 그 비밀"에 대한 미스테리를 찾아나서는 상상력을 유발시키게 된다. 「太古 B」「詩想 A, B」같은 예도 그가 남겨 놓은 인디언 미술에 대한 스케치와 흡사한 언어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 한국적 소재들의 전이나 변용은 「근원 B」의 예에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 「다색동판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사진기법을 병행하는 포토에칭(Photo Etching)이나 소프트 그라운드(Soft ground)기법, 콜라그라프(Collagraph)기법과 메조틴트(Mezzotint)기법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동판화 중에서도 헤이터(Hayter)기법을 주로 많이 사용하여 동일한 판면(版面)에다 세가지 각기 다른 색을구사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이는 원래 「아뜰리에 17」에서 스텐리 헤이터(Stanley w. Hayter)라는 작가가 처음으로 실험하였으며 깊이가 각기 세가지를 다르게 부식, 찍혀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즉 판각면(版刻面)의 종류가 하나는 판각된 홈의 면과 두번째는 아무것도 부식되지 않은 금속판의 볼록면, 셋째는 판면에 보호제를 입히지 않고 부식한 면 등 세종류의 판각면에 다시 경도(硬度)가 서로 다른 종류의 롤러를 사용함으로서 판각면의 깊이를 구분하게 된다.
하드롤러와 소프트롤러의 개념이 여기에 쓰이게 되며 잉크의 서로 다른 점성순서에의해 각기 다른 판면의 원리에 의거하여 겹쳐지는 부분에서 혼함된 색을 찍어나가게 된다. 이때 처음에는 하드롤러를 사용하여 두드러진 부분, 즉 동판의 판면에 잉크를 입히고 소프트롤러는 점성이 낮은 잉크로서 볼록한 두면과 전표면에 색층을입히게 되므로 두번째 작업에서는 혼합이 가능한 것이다.
이와같은 기법적 특수성에 의해 하나의 판(Plate)으로 「회상 A. B. E」「太古 E. F」「魯 B」「삶」등과 같이 여러색상의 작품을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우향판화의 내용, 기법적인 특징 이외에도 특기해야 될 사항는 유작으로 남긴 약 40-50여 점의 전작품이 A. P(Artist proof) 즉 예술가의 시험작품이라는 점이다. 더우기 일반적으로 전체판화 작품의 숫자인 에디션(Adition)의 10%정도를 제작하게 되어있는 이 A. P판의 개념도 거의 오리지널 회화작품과 접근할 정도로 소수 작품만을 제작하여 에디션(Adition)까지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헤이터기법의 난이도도 작용되었겠으나 당시 그의 뉴욕생활 6년에완전히 함몰되었던 판화세계의 강한 실험의지와 순수성의 소산인 것으로도 간주 될수 있다.
그의 판화에서 베어져 있는 원시림의 생명력같은 에너지나 상상력, 치밀하고도 이지적인 독특한 조형적 감도는 회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평소 그의 우미(優美)한 곡선미감과는 또다른 차원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운보의 불타는 예술혼을 홀로두고너무도 아쉽게 57세의 일기로 타계한 우향의 그 슬픔은 사실상 후반기 판화에 쏟은열정이 건강의 악화를 재촉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74년 귀국 할 때 판화보급을 위해 판화제반도구와 기계까지 직접 부쳐 왔을 정도로 후반기의 작업은 판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75년 갑작스럽던 발병으로 야기된 홀연한 타계는 우리미술사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지적(理智的)여류미술인의 예술혼과 선각자적 경지가 이와 같은 중간 조명의 계기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은 물론 더우기 최근에 우리 미술계에서 일고 있는 판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 1 | 1969 ~ 1974 | 도미 후 귀국 |
| 2 | 1966 ~ 1967 | 성신여사대 동양화과 교수 |
| 3 | 1966 | 오월 신인예술상 심사위원 |
| 4 | 1963 ~ 1965 | 성신여사대 강사 |
| 5 | 1962 | 서울시 문화위원회 위원 |
| 6 | 1961 ~ 1975 | 제10, 12, 24회 국전 심사위원 |
| 7 | 1957 ~ 1960 | 서울 문리대 강사 |
| 8 | 1956 ~ 1957 | 숙명여대 강사 |
| 9 | 1956 | 국전 초대작가 |
| 1 | 1974 | 제6회 신사임당상 | 대한주부클럽연합회 |
| 2 | 1972 | 문화 공로상 | 대한여학사회 |
| 3 | 1956 | 제5회 국전 대통령상 | 문교부 |
| 4 | 1956 | 제8회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 | 대한미술인협회 |
| 5 | 1943 | 제22회 선전 특선 | |
| 6 | 1941 | 제20회, 23회 선전 입선 | |
| 7 | 1940 |
선전 최고상 (창덕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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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