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4
―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을 엮은 세 분 선생님 중 윤구병 선생님을 2007년 10월 5일 ‘문턱 없는 밥집’에서 뵈었다. 공기가 된 듯, 바람에 몸을 맡기신 윤구병 선생님은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최세정 (인문)편집장과 함께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기억, 한창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책을 엮은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보았다. (편집자주)
▶ 안녕하세요. 윤구병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주기를 맞는 해에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세 권의 책을 펴내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글은 인문학적 향기가 흠뻑 배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언어철학의 사유들을 가장 먼저 시작하신 분이라고 봅니다. 역사, 철학,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 글인 듯한데요. 한창기 선생님의 글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글이 깊고 꽤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3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인문학의 향기가 듬뿍 배어 있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 전설이 된 편집자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세 분이 이 글을 엮으셨는데요. 세 분을 각각 소개해 주세요.
▶ 한창기 선생님의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한창기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신 것이지요?
▶ 한창기 선생님에게서 ‘못마땅한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뭐가 있을까요?
▶ 한창기 기념사업회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요?
▶ 뿌리깊은나무와 한창기! 이 둘은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표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해석을 좀 더 밀어붙이면, 근대성을 넘어서려고 하는 탈근대적 시도들이 21세기 들어 시작되었는데, 한창기 선생님 책 안에 그러한 담론이 스며들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도 그러한 생각을 진행했고 실천을 통해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지요. 5, 60대 연배의 선생님들에게서 지금 한국에서 《뿌리깊은나무》의 기획이 이루어져도 아주 훌륭한 잡지가 될 수 있다, 지금도 그 잡지를 뛰어넘는 잡지를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철학 연구자들이 텍스트로 삼아야 할 것이 한창기 선생님의 글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상가로서의 한창기 선생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 뿌리깊은나무를 거쳐 간 분들이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이 있는지요?
▶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윤구병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주기를 맞는 해에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세 권의 책을 펴내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와 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애정을 느끼고 실제로 그것을 보존하고 확산하고자 애쓴 분을 한창기 선생님 외에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마음속에 간직한 것뿐 아니라 실천하신 분을 따로 보지 못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원어민처럼 사용할 만큼 영어에 능통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외국 문화에 경도되지 않고 우리 문화, 우리말에 대해 깊이 천착을 하셨는데, 이는 아마 책을 읽으면 다 드러납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갇힌 곳이 아닌 열린 곳에서 열린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말의 질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분이므로 그 애정은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한 선생님의 글이 읽혔으면 했는데, 이제야 책으로 엮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원어민처럼 사용할 만큼 영어에 능통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외국 문화에 경도되지 않고 우리 문화, 우리말에 대해 깊이 천착을 하셨는데, 이는 아마 책을 읽으면 다 드러납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갇힌 곳이 아닌 열린 곳에서 열린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말의 질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분이므로 그 애정은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한 선생님의 글이 읽혔으면 했는데, 이제야 책으로 엮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글은 인문학적 향기가 흠뻑 배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언어철학의 사유들을 가장 먼저 시작하신 분이라고 봅니다. 역사, 철학,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 글인 듯한데요. 한창기 선생님의 글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한창기 선생님의 고향은 벌교인데, 그곳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두 분에게서 삶의 지혜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깊은 깨우침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이야기, 농경 사회를 감싸고 있는 문화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 한창기 선생님은 미국문화원에 근무했던 곽소진 선생님과 예용해 선생님 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문화의 바른 길을 안내받았다고 봅니다. 우리 문화의 시각을 잡아 주신 분은 예용해 선생님이고, 실제로 판소리 감상회를 매주 금요일 100회 이어오게 한 것은 정병욱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의 개인적인 소양뿐 아니라 이런 분들과의 교류가 선생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 것이라 봅니다.
▶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글이 깊고 꽤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3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인문학의 향기가 듬뿍 배어 있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민중의 언어, 특히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오던 토박이말을 사랑하고, 그 말과 글 속에 담긴 문화를 진정으로 향유하던 사람입니다. 언어의 다양한 쓰임새를 자유자재로 적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문화의 향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부지불식간에 침투해 오는 서양 문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말과 글의 순수성과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고 오염되어 가는지를 누구보다도 세밀하게 집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책상 위, 책 속에서, 그리고 박물관에 진열된 작품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알아 나간 사람들과는 달라요. 삶 속에서 삶이 곧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였던 환경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들의 앎과 지혜를 소유한 분이 한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설이 된 편집자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세 분이 이 글을 엮으셨는데요. 세 분을 각각 소개해 주세요.
저 윤구병은 《배움나무》 편집장이었다가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으로 일했죠. 충북 대학교에서 철학과 선생을 할 때도, 나중에 변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농사를 지을 때도, 또 지금도 한창기는 저에게 ‘선생’입니다.
저를 이어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장으로 일한 분이 김형윤 선생입니다. 《한국의 발견》을 만들 때도 책임 편집자였는데, 한창기의 ‘꼼꼼한 눈’을 높이 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아 좀 멀리 보고 크게 볼 줄도 아시라고 망원경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설호정 선생인데요, 《뿌리깊은나무》 창간 준비를 하면서 저와 김형윤이 설호정 씨 일터로 같이 찾아가서 ‘모셔’ 왔어요. 《뿌리깊은나무》 편집차장을 거쳐 《샘이깊은물》에서 주간으로 일했습니다. 병상의 한창기가 마지막까지 의지한 몇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저를 이어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장으로 일한 분이 김형윤 선생입니다. 《한국의 발견》을 만들 때도 책임 편집자였는데, 한창기의 ‘꼼꼼한 눈’을 높이 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아 좀 멀리 보고 크게 볼 줄도 아시라고 망원경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설호정 선생인데요, 《뿌리깊은나무》 창간 준비를 하면서 저와 김형윤이 설호정 씨 일터로 같이 찾아가서 ‘모셔’ 왔어요. 《뿌리깊은나무》 편집차장을 거쳐 《샘이깊은물》에서 주간으로 일했습니다. 병상의 한창기가 마지막까지 의지한 몇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살아생전에도 책으로 엮자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본인이 극구 말리시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엔 아마 다들 사는 데 바빠서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었다고 봅니다. 그러다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신 것이지요?
철학과 대학원을 나와 강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하숙비와 교통비도 댈 수 없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친구의 친구가 브리태니커사를 소개해주더군요. 자기소개서를 꽤 길게 써오라는 요구를 해왔었죠. 면접을 보는데 별로 후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보아하니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이런 깡패 집단엔 왜 오셨수?” 하기에 “밥 빌어먹으려고 왔습니다.” 했지요. 서로의 문답이 거슬리지 않아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신같이 공부 많이 한 거룩한 사람이 외국 책이나 팔아먹는 사기꾼 집단에 왜 들어왔는가 하는 물음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때는 군사독재 시기로,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졸부들에게 팔아먹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이지요.
▶ 한창기 선생님에게서 ‘못마땅한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뭐가 있을까요?
《배움나무》를 편집하던 시절 디자이너 이상철 씨와 함께 뛰쳐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이 항상 우리 둘을 불러다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둘이 작정을 하고 3일 집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창기 선생님이 장문의 전보를 보내오셨더군요. 말도 없이 허락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노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지요. 저희가 집에서 일을 했다니까 믿지 못하시고 그 벌로 저희 둘을 강등시켰는데, 그때 이상철 씨와 회사를 관두었지요. 이후 바깥에서 1년 동안 일을 하는데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창기 사장만큼 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1년 지나 한창기 선생을 찾아가서 나 쫓겨났으니 밥 먹을 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회사뿐이 없는데, 다시 오지” 하는 거예요. 그때 그 양반도 제가 그리웠던가 봅니다. 이후 제대로 잡지를 만들어 보자고 하더군요. 《뿌리깊은나무》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 한창기 기념사업회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요?
한창기기념사업회는 재단법인으로 예전에 만들어졌지요. 선생님 돌아가신 후 만들어졌고요, 재단법인 ‘뿌리깊은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 뿌리깊은나무와 한창기! 이 둘은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표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현대성에 등 돌린 사람이 가장 현대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한창기 선생은 가장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고, 현대 문명과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이지만, 거기에서 등을 돌리고 전통적이며 전통 가운데에서도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농촌의 삶으로 되돌아간 사람입니다. 복고주의라 볼 수 있지만, 아닙니다! 진정한 현대성은 우리 전통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근대 문명의 인문적인 시간 속에서만 제대로 된 문명이 꽃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판단한 것이라 보셨고, 그래서 생명의 근원에서 문화가 꽃 피어나야지만, 다시 말해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산 우리 조상들이 자연스럽게 꽃피운 문화야말로 가장 현대성을, 진정한 현대성을 지닌 문화라고 보신 거지요.
▶ 해석을 좀 더 밀어붙이면, 근대성을 넘어서려고 하는 탈근대적 시도들이 21세기 들어 시작되었는데, 한창기 선생님 책 안에 그러한 담론이 스며들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도 그러한 생각을 진행했고 실천을 통해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지요. 5, 60대 연배의 선생님들에게서 지금 한국에서 《뿌리깊은나무》의 기획이 이루어져도 아주 훌륭한 잡지가 될 수 있다, 지금도 그 잡지를 뛰어넘는 잡지를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철학 연구자들이 텍스트로 삼아야 할 것이 한창기 선생님의 글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상가로서의 한창기 선생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한창기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한창기 생각 공부 모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창기의 동시대 분들이거나 그와 같이 일하거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말 문법체계가 참 많이도 엉망입니다. 또 우리 나라에는 음성학 연구자가 거의 없는데, 음성학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독일이 통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급속도로 유럽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은 독일어의 특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독일은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 나라였음에도 비스마르크 시대 발음과 문자 정보를 통일함으로써 큰 역사적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현대적인 비교 문명의 시대에서는 꽤 효율적인 것이지요.
한창기 선생님의 경우 그런 것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저 또한 우리말에 관심이 많아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제대로 된 우리말 어원, 용법, 문법 사전, 용례 사전, 발음 사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었지요.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제도권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정리 못합니다. ‘스콜라철학’처럼 공부한 사람들보다는 현장에서 체험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음성학으로 잘 알려진 분이 재야의 몇 분 계셨어요. 음지에서 우리말을 연구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의 연구 성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성과를 잇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음성 정보의 기본 아카이브가 많이 부족합니다. 시골에 살아계신 나이 든 분들의 말을 하루빨리 녹음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합니다. 예전에 구비문학대계가 책으로 나왔는데 그때 녹음한 것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후 먼저 정경혜 선생님의 글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는 것을 첫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경혜 선생의 경우 우리말의 기본형을 ‘-다’로 끝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하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분 호가 ‘하오’입니다. 예를 들어 ‘앉다’의 경우 발음으로는 사람을 안는 것인지 앉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앉으오’로 하면 발음 나는 대로 기본형이 드러난다고 본 것이지요. ‘않다’의 경우 ‘안 하오’ 기본형을 하면 발음으로 뜻을 알 수 있는데, 정확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아쉽게도 이분들은 학벌도 없고 학맥도 없어 잊혀져 버린 것이지요.
현재 우리말 문법체계가 참 많이도 엉망입니다. 또 우리 나라에는 음성학 연구자가 거의 없는데, 음성학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독일이 통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급속도로 유럽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은 독일어의 특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독일은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 나라였음에도 비스마르크 시대 발음과 문자 정보를 통일함으로써 큰 역사적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현대적인 비교 문명의 시대에서는 꽤 효율적인 것이지요.
한창기 선생님의 경우 그런 것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저 또한 우리말에 관심이 많아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제대로 된 우리말 어원, 용법, 문법 사전, 용례 사전, 발음 사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었지요.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제도권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정리 못합니다. ‘스콜라철학’처럼 공부한 사람들보다는 현장에서 체험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음성학으로 잘 알려진 분이 재야의 몇 분 계셨어요. 음지에서 우리말을 연구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의 연구 성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성과를 잇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음성 정보의 기본 아카이브가 많이 부족합니다. 시골에 살아계신 나이 든 분들의 말을 하루빨리 녹음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합니다. 예전에 구비문학대계가 책으로 나왔는데 그때 녹음한 것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후 먼저 정경혜 선생님의 글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는 것을 첫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경혜 선생의 경우 우리말의 기본형을 ‘-다’로 끝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하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분 호가 ‘하오’입니다. 예를 들어 ‘앉다’의 경우 발음으로는 사람을 안는 것인지 앉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앉으오’로 하면 발음 나는 대로 기본형이 드러난다고 본 것이지요. ‘않다’의 경우 ‘안 하오’ 기본형을 하면 발음으로 뜻을 알 수 있는데, 정확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아쉽게도 이분들은 학벌도 없고 학맥도 없어 잊혀져 버린 것이지요.
▶ 뿌리깊은나무를 거쳐 간 분들이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이 있는지요?
대표적으로는 웅진의 윤석금 회장, 문화계의 김명곤, 학계 김용옥 등 무척 많지요. 그분들의 회고담도 엄청나게 재밌을 겁니다. 특히 한창기 선생님은 재주 많은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김용옥 씨와도 인연을 맺으셨었지요. 인터뷰를 해보시면 재미있는 일화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