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라 미스트랄 (Gabriela Mistral) 연보
박 채 연
1889년 4월 7일 칠레의 비쿠냐 Vicuña 시에서 태어나 루실라 고도이 알카야가 Lucila Godoy Alcayaga 라는 이름으로 세례.
1905년 15세의 나이로 비쿠냐의 이웃 마을의 라 콤파니아 학교의 보조교사로 일하기 시작.
1914년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가장 권위있는 백일장에서 「죽음의 소네트」 Sonetos de la muerte 로 장원을 하여 명성이 나기 시작.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라는 필명 사용.
1918년 테무꼬 Temuco의 여자중학교 교장. 당시 이 도시에 살던 문학소년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에게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알려줌.
1921년 산티아고 제 6 중학교 초대 교장.
1922년 멕시코의 교육부 장관인 호세 바스콘셀로스 José Vasconcelos의 초청으로 멕시코의 교육개혁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멕시코 방문. 같은 해 뉴욕의 스페인 협회에서 [비탄] Desolación 출판.
1923년 멕시코에서 「여성들을 위한 글」 발표.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비탄]의 재판이 출판.
1924년 개혁작업이 끝나고 귀국하기 전에 유럽여행. 마드리드에서 [부드러움] Ternura 출판.
1925년 중남미로 돌아온 뒤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음. 칠레에 정착.
1926년 칠레정부에 의해 국가연합의 중남미부 대표로 임명. 국가연합의 지식인 협회 총무.
1929년 어머니의 죽음.
1930년 미국 중등교육기관의 초청으로 강연과 강의를 위해 미국 방문.
1931년 중미와 카리브 지역 국가들을 방문하여 강연과 강의.
1932년 이탈리아 나폴리 영사로 외교관 생활 시작. 그러나 반파시스트 입장 표명으로 업무가 불가능하여 다음 해 마드리드 영사로 떠남.
1936년 리스본 영사로 부임.
1938년 잠시 귀국.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르기] Tala 출판. 수익금은 스페인 내전의 고아들을 위해 기부. 니스 영사로 부임.
1940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유럽을 떠나 브라질 니테로이의 영사로 부임.
1941년 브라질 주재 총영사로 임명.
1943년 8월 14일에 수양아들같이 여겼던 조카 후안 미겔이 자살.
1945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46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산타 바르바라의 영사로 부임.
1947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밀스 컬리지에서 명예박사학위 받음.
1948년 멕시코 베라크루스의 영사로 부임.
1950년 아메리카 프란시스코회 역사 아카데미에서 주는 아메리카의 세라 상을 수상. 이탈리아 나폴리 영사로 부임.

